여자 안의 타인(女の中にいる他人, The Stranger Within a Woman, 1966), 나루세 미키오
어두워지기 전에(Juste avant la nuit, Just Before Nightfall, 1971), 클로드 샤브롤


원작 소설: Edward Atiyah, The Thin Line(1951) 



  1966년은 나루세 미키오에게 '스릴러의 해'였다. '여자 안의 타인(The Stranger Within a Woman, 1966)' '뺑소니(Hit and Run, 1966)'는 이전까지의 나루세 미키오와는 전혀 다른 영화적 궤적을 보여준다. '뺑소니'는 스릴러의 틀 안에서 여성의 삶에 대한 성찰을 담아낸다. 이와는 달리 '여자 안의 타인'에서는 주인공이 남성이다. 치정 살인 사건에 연루된 남자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음울한 결말까지 더해져 영화는 무겁기 짝이 없다. 이 영화는 원작이 되는 소설이 있다. 레바논 출신의 작가 Edward Atiyah'The Thin Line(1951)'을 각색한 것으로, 이 소설을 가지고 Claude Chabrol도 영화를 만들었다. '어두워지기 전에(Juste avant la nuit, 1971)'가 그것이다. 전자책으로는 원작 소설이 나온 것이 없어서, 대신 클로드 샤브롤의 영화를 보고 원작의 세부적 내용을 추측해 볼 수 밖에 없었다. 두 영화에는 서로 다른 감독의 스타일이 만들어내는 흥미로운 간극이 존재한다.

  클로드 샤브롤은 남자 주인공 샤를이 불륜 관계에 있는 여자를 죽이게 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변태적 욕망에 휩싸인 남자는 실수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데, 그가 죽인 여자는 친구 프랑수아의 아내이다. 클로드 샤브롤과는 달리 나루세 미키오는 살인 장면을 나중에 플래시백으로 제시한다. '여자 안의 타인'의 도입부 쇼트에는 길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자꾸만 뒤를 쳐다보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나루세 미키오는 도로를 걷는 남자를 사선 구도에 두고 따라간다. 몇 걸음 걷던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꺼내어 피운다. 이 남자 이사오에게 무언가 안좋은 일이 생긴 것은 분명하다. 이 짧은 쇼트가 내뿜는 불길함을 우리는 잘 알려진 미술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절규(The Scream)'이다.

  나루세 미키오는 이러한 사선 구도를 이 영화에서 또 다시 보여준다. 죽은 여자 사유리의 친구는 장례식장에서 이사오를 발견하고 의심을 품는다. 자신이 얼핏 봤던 사유리의 애인이 이사오와 비슷했던 것. 그래서 여자는 사유리의 남편 스기모토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찾아간다. 그런데 스기모토는 이사오가 20년 넘게 알고 지내온 절친인데 그럴 리가 없다며 일축한다. 스기모토가 아내의 친구를 배웅하는 장면에서도 사선 구도에 두 인물이 서있다. 여자는 모자를 쓴 어떤 남자가 옆을 지나가자 흠칫 놀란다. 남자의 외모가 이사오를 떠올리게 했던 것이다. 탁 트인 대로변에서도 사선 구도 속의 인물들은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 느낌을 준다.

  이 영화에서 나루세 미키오는 인물들의 흔들리는 내면을 묘사하기 위해 다양한 회화적 이미지를 차용한다. 경찰의 수사는 난항에 부딪혀 범인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한다. 그러는 동안 주인공 이사오는 점차 자신을 짓누르는 죄책감과 마주하게 된다. 남자는 아내에게 불륜을 고백하기에 이른다. 천둥 번개가 치는 밤, 갑자기 집안의 전등이 나가고 아내는 촛불을 켠다. 그 순간, 이사오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촛불을 든 아내가 놀라움으로 서성일 때, 남자는 어둠 속에 잠겨있다. 이 장면은 촛불의 화가로 불리는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1593-1652)의 그림을 떠올리게 만든다. 

  아직까지 남편은 아내에게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신경쇠약에 걸린 이사오는 온천장에서 잠시 머무르고, 마사코는 남편을 보러 간다. 부부가 온천 근처를 산책할 때 이사오는 계곡에 떨어져 죽은 남자의 시신을 발견한다. 그 죽음의 선명한 이미지가 이사오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곳을 지나쳐온 부부가 터널 안으로 들어섰을 때, 마침내 이사오는 숨겨왔던 자신의 일탈적 욕망과 범죄에 대해 아내에게 털어놓는다. 역시 사선 구도로 찍힌 터널 시퀀스에서 부부를 감싸는 어둠은 그들이 마주하게된 진실의 무서운 심연처럼 보인다. 평범한 주부로 살아온 마사코의 삶은 이제 그 심연 속으로 사라질 터였다.

  이 낯선 스릴러 영화는 나루세 미키오에게 무언가 잘 맞지 않는 옷처럼 보인다. 살인을 저지른 이사오의 내적 갈등이 심화되는 과정 또한 썩 그리 매끄럽지 않다. 클로드 샤브롤의 영화는 나루세 미키오가 주춤거린 그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샤브롤은 인물들을 부유한 중산층으로 설정하고, 촬영 세트 또한 화려한 고급 주택을 배경으로 찍었다. '어두워지기 전에'는 부르주아의 도덕적인 타락과 그것을 철저히 은폐하려는 계층적 욕망을 묘사한다. 주인공 샤를은 친구 프랑수아에게 자신의 범죄를 고백한다. 하지만 프랑수아는 자신의 아내를 죽인 샤를에게 놀라운 평정심과 관대함을 보인다. '여자 안의 타인'에서 스기모토가 이사오의 고백을 듣고 뺨을 후려치는 것과는 대조되는 부분이다. 물론 스기모토도 나중에는 이사오를 용서하기는 한다.

  클로드 샤브롤은 죄책감을 계급 의식과 긴밀히 결합시킨다. 샤를이 운영하는 광고 회사에서 일어난 범죄는 그것을 좀 더 명확히 드러낸다. 10년 넘게 일해온 늙은 회계 담당자는 거액의 회사 돈을 챙겨 달아난다. 그 남자가 횡령을 저지른 이유는 젊은 여자 때문이었다. 샤를은 결국 경찰에 잡힌 직원에게 왜 그런 일을 저질렀냐고 묻는다. 그러자 남자는 샤를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다. 늙은 직원의 추악한 모습은 샤를에게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그 남자가 욕망과 범죄를 솔직하게 드러낸 것과는 달리 샤를을 둘러싼 견고한 계급적 세계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친구 프랑수아와 샤를의 아내는 샤를에게 모든 것을 잊으라며 안온한 부르주아의 세계에 머물 것을 요청한다.

  원작 소설의 제목 'The Thin Line'은 영화의 주인공 이사오에게는 넘지 말아야 될 선(線), 즉 범죄에의 유혹을 의미한다. 그 선을 넘은 남자는 결국 아내의 손에 의해 영원한 잠에 빠진다. 어떤 면에서 나루세 미키오에게 '여자 안의 타인'은 자신의 영화적 경계를 넘어서는 작업이었다. 그것을 넘어선 노감독은 특이하게 구부러진 길을 만들어 낸다. 이 영화를 짓누르는 죽음과 불안의 기운은 감독 자신의 내면과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듬해 '흐트러진 구름(Scattered Clouds, 1967)'은 그의 유작이 되었다. 그로부터 2년 뒤에 나루세 미키오는 암으로 세상을 떴다. 63세의 나이였다.


*사진 출처: eiga-pop.com



**그림 출처: wikipedia.org

Georges de La Tour의 그림
Magdalene with the Smoking Flame


The Newborn Christ



Edvard Munch의 그림
The Scream



***나루세 미키오 영화 '뺑소니(Hit and Run, 1966)'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8/hit-and-run-19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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