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이후의 벵골 분할 시기, 캘커타의 난민촌에 사는 니타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니타의 아버지는 난민촌 학교의 선생이지만 그일은 결코 돈이 되지 않는다. 니타의 큰오빠 샹카르는 엄격한 스승 밑에서 Raga를 익히는 중이다. 여동생 기타와 남동생 만투는 아직 학생이다. 대학원생인 니타는 학생들의 과외수업을 하며 번 돈을 모두 집안 살림에 보탠다. 가족들은 니타만 보면 돈 이야기를 한다. 큰오빠는 이발비를, 여동생은 새옷을, 남동생은 축구화를 사달라고 보챈다. 니타는 너그럽게 형제들의 요구를 들어주지만, 엄마는 쓸데없이 돈을 쓴다며 니타를 닥달한다. 정작 니타는 낡은 샌들을 신고 다니다 끈이 끊어져 맨발로 걸어 집에 들어온다.

  리트윅 가탁(Ritwik Ghatak) 감독의 영화 '구름에 가린 별(The Cloud-Capped Star, 1960)'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영화에서 니타 가족은 벵골 분할 이후 동파키스탄에서 캘커타로 이주해온 힌두교 난민 가족이다. 영국의 식민지 시절, 벵골 지역은 반영 운동의 중심지였다. 영국은 벵골 지역의 분열을 획책하기 위해 1905년에 이른바 벵골 분할령(Partition of Bengal)을 내놓았다. 벵골인들의 극렬한 반대에 분할은 철회되었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것은 1919년의 암리차르 학살(Amritsar massacre)로 이어진다. 영국은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잔혹하게 탄압했다.

  1947년, 마침내 인도는 독립한다. 그러나 그동안 억눌려 있었던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 사이의 갈등이 터져나온다.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파키스탄의 독립에 이어, 동벵골 지역에 파키스탄의 자치주 동파키스탄(나중에 방글라데시로 독립)이 세워졌다. 그렇게 되자, 동벵골 지역의 힌두교도들은 한순간에 고향을 잃고 인도로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 난민들이 가장 많이 정착한 곳이 캘커타였다. 말이 독립국 인도의 국민이었지, 벵골 난민들은 인도 사회에서 극심한 차별과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영화 속에서는 그러한 시대적 배경이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리트윅 가탁은 '구름에 가린 별(1960)'을 시작으로 '사랑스런 간다르(Komal Gandhar, 1961)', '강(Subarnarekha,1962)'으로 이어지는 분할 3부작(Partition Trilogy)'을 만들어냄으로써, 벵골 난민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비록 난민촌에서 어렵게 살고 있지만, 니타 가족의 계층적 배경은 중산층에 해당한다. 니타의 아버지는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니타 또한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재학중이다. 이 가족의 계층적 몰락은 가장인 아버지의 갑작스런 발병에서 시작한다. 실성한 아버지는 곧 집안에서 유령같은 존재가 되고 만다. 그런 상황에서 니타는 가장의 무게를 기꺼이 짊어진다. 학업도 포기하고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한다. 니타의 부양 대상에는 연인 사낫도 포함된다. 박사 학위를 준비하는 가난한 연인은 니타의 도움을 받는다.

  그렇지만 오직 가족만을 생각하는 니타의 순수하고 착한 마음은 결코 보답받지 못한다. 니타의 엄마는 니타에게 끊임없이 돈을 요구하고, 여동생 기타는 언니의 연인을 가로채 결혼한다. 큰오빠는 봄베이에서 유명한 Raga 연주자가 되었지만,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다. 니타의 몸과 마음은 서서히 부서진다. 급기야 니타는 결핵에 걸린다. 그럼에도 사고를 당한 남동생의 병원비를 마련하느라 일을 쉬지도 못한다. 니타는 자신을 착취하는 뻔뻔한 가족 구성원의 행태를 오롯이 감내한다.

  리트윅 가탁은 서서히 망가져가는 니타의 영혼을 보여주기 위해 사운드를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이 영화에서 인도의 전통 음악 Raga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샹카르는 틈만 나면 라가를 부른다. 주로 신과 자연을 찬미하는 라가의 가사는 역설적으로 이 가족이 처한 비참한 현실을 부각시킨다. 그것은 니타가 샹카르에게 기타의 결혼식에서 부를 라가를 가르쳐달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정점을 이룬다. 비감하면서도 아름다운 라가의 선율이 흐르다가 갑자기 날카로운 굉음이 들린다. 클로즈업 되는 니타의 얼굴에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니타가 느끼는 내면의 고통은 그러한 소리에 의해 형상화된다. 

  가탁의 사운드에 대한 실험적 시도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극대화된다. 니타는 샹카르의 품에 안겨 울부짖는다. '나는 살고 싶어요!' 니타의 처절한 외침은 남매가 앉아있는 언덕 너머 사방천지의 산들에 울려퍼진다. 360도로 회전하는 카메라는 산에 반향되는 소리의 궤적을 따라간다. 어찌 보면 진부하기 짝이 없는 가족 멜로 드라마는 이러한 사운드와 음악의 활용으로 독창적인 영화가 되었다.

  샹카르는 요양중인 니타에게 가족의 낡은 집이 멋진 2층 집으로 개축되었다고 알려준다. 몰락했던 피난민 일가는 샹카르의 성공을 통해 세속적 욕망을 채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몸과 마음이 병든 니타에게 그 집은 돌아갈 수 없는 곳이다. 과연 니타에게 닥친 비극은 누구의 잘못 때문일까? 샹카르가 니타를 면회하고 돌아오는 길, 그는 난민촌 입구에서 동네 아가씨와 마주친다. 샹카르는 새삼 니타의 모습을 떠올린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느라 니타의 청춘은 부서져버렸다. 오래전의 니타가 그러했듯, 가난한 아가씨도 걷다가 샌들 끈이 끊어진 것을 발견한다. 아무렇지 않게 끈을 접어넣고 걸어가는 그 뒷모습에는 벵골 난민들의 고단한 삶이 투영되어 있다. 리트윅 가탁은 순수한 영혼을 지닌 니타의 고통 속에 벵골 분할기의 역사를 아로새겨 넣는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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