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1일, 비버리 힐즈 호텔에 머물고 있던 가수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이 시신으로 발견된다. 사인은 약물 과다 복용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48살, 한 시대를 풍미한 팝의 여제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Nick Broomfield와 Rudi Dolezal의 다큐 'Whitney: Can I Be Me(2017)'는 타고난 재능으로 부와 명성을 거머쥐었으나, 결국 불운한 개인사와 약물 중독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휘트니 휴스턴의 삶을 조망한다. 다큐는 휘트니의 가족과 지인들의 인터뷰, 실황 공연을 비롯해 다양한 비디오 아카이브 자료들이 짜임새 있게 배치되어 있다.

  재능. 스타가 되기 위해서 무엇보다 가장 필요하고 절실한 조건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휘트니 휴스턴은 시작부터 순조로웠다. 휴스턴의 모친 씨시 휴스턴은 잘 알려진 가스펠 가수였다. 두 명의 사촌도 음악계에 몸담고 있었다. Dionne Warwick은 유명한 가수였고, Leontyne Price는 이름있는 소프라노였다. 십 대 시절부터 어머니를 따라 무대에 올랐던 휘트니는 모델 활동도 병행하면서 이름을 알려나갔다. 휘트니의 재능은 얼마 지나지 않아 Arista 레코드사의 수장 클라이브 데이비스의 눈에 띈다. 첫 앨범이 나온 때는 22살, 휘트니의 앞길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신이 주신 목소리'라는 찬사와 함께 휘트니는 단숨에 새로운 별로 떠올랐다.

  휘트니 휴스턴과 계약을 맺은 클라이브 데이비스는 팝 음악계의 거물로 무엇이 돈이 될지를 잘 아는 인물이었다. 그는 휘트니가 가진 흑인 여가수로서의 소울(soul) 감성을 철저히 무시했다. 대신에 휘트니의 노래를 팝 음악 주류 소비자인 백인들의 감성에 맞추었다. 그 결과 휘트니는 잘 나가는 팝 가수가 되었지만, 흑인 음악계에서는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 재능있는 여가수는 자신이 가진 팝 음악적 상품성과 진정으로 하고 싶은 노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느라 애를 썼다. 휘트니가 나중에 음반사와의 힘겨루기 끝에 내놓은 소울 발라드는 큰 인기를 끌었다.

  다큐는 가수로서 놀라운 경력을 쌓아가는 휘트니의 여정 속 주요 인물들을 불러낸다. 로빈 크로포드는 휘트니의 고향 친구로 갑작스런 스타덤에 오른 휘트니를 지탱해주는 정서적인 중심축이었다. 휘트니는 로빈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문제는 로빈이 동성애자라는 데에 있었다. 휘트니의 모친 씨시 휴스턴이 둘의 관계를 반대했음에도, 휘트니는 로빈을 자신의 사업 파트너와 친구로 곁에 머물게 했다. 그런 가운데 한 남자가 등장한다. R&B계의 악동 보비 브라운은 전형적인 '나쁜 남자'였다. 그는 복잡한 여자 관계와 사건 사고로 유명했다. 보비는 곧 휘트니의 남편이 되었고, 자신의 아내 곁에 있는 로빈과 극렬히 대립한다. 다큐의 중반부를 차지하는 1999년의 유럽 투어 실황 공연과 무대 뒷편의 촬영 장면들은 보비와 로빈의 갈등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그 즈음, 휘트니가 십 대 시절부터 접한 마약 문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다. 로빈은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약물과 음주 문제를 가진 보비는 휘트니의 상황을 악화시키며, 경쟁자 로빈이 떠나가도록 만들었다. 조금씩 무너져 내리던 휘트니의 경력은 오랜 친구를 잃으면서 결정타를 맞는다. 실패한 재활 치료, 불화한 남편과의 이혼, 망가진 목소리... 그렇게 휘트니는 대중의 눈에서 멀어졌다. 그 시기에 휘트니는 재정적으로도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 경력의 초창기부터 휘트니의 자산을 관리한 가족들은 돈을 물쓰듯이 써댔다. 이 여가수는 경제 공동체가 된 가족의 수익원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재능있는 여가수는 호텔방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휘트니의 유일한 혈육인 보비 크리스티나는 나중에 22살의 나이로 엄마와 같은 최후를 맞이했다. 여가수는 천부적 재능으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그러나 나쁜 남자를 만났고, 약물 중독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후대의 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는 그런 휘트니 휴스턴의 삶과 판박이처럼 닮아있다. Asif Kapadia의 다큐 'Amy(2015)' 또한 뛰어난 여가수의 비극적 삶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다. 자본이 지배하는 음반 산업, 그리고 그런 시스템에서 탄생하는 인기 가수, 그들을 나락에 빠뜨리는 약물 중독의 문제. 다큐 'Whitney: Can I Be Me(2017)'는 천재 여가수의 고통스러운 삶의 이면을 연민과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 보게 만든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Asif Kapadia의 다큐 'Amy(2015)'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7/kramer-vs-kramer1979-hilary-and.html


***영화 'Set It Off(1996)'리뷰
다큐 속에서 휘트니 휴스턴이 유럽 투어 중에 호텔에서 영화를 보는 장면이 있다. 그 영화는 흑인 여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영화 'Set It Off(1996)'이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5/1996-set-it-off19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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