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미족의 잊혀진 진실과 슬픔, Sami Blood(2016)

  사미족(The Sámi)은 스칸디나비아 북부 대륙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원주민들을 일컫는다. Amanda Kernell의 2016년작 'Sami Blood(스웨덴어 제목 Sameblod)'는 바로 그 사미족 소녀의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는 노년의 엘라 마리아가 여동생의 장례식을 위해 사미족 마을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의 환대에 친근감을 느끼고 머무르고 싶어하는 아들과는 달리 엘라 마리아는 내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다. 급기야 엘라 마리아는 근처 호텔에 머물겠다며 마을을 떠난다. 젊은이들로 가득찬 클럽에 우연히 들어가게 된 엘라 마리아는 화려한 불빛 속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때는 1930년대, 스웨덴 북부 사미족 거주지에 사는 어린 자매 엘라 마리아와 은제나는 어머니 곁을 떠나야만 한다. 스웨덴 정부의 사미족 동화 정책에 따라 강제로 기숙 학교에 들어가게 된 것. 그곳에는 자매와 같은 처지의 사미족 아이들이 모여있다. 외딴 산골에 위치한 학교에는 강압적인 여교사가 아이들을 혹독하게 훈육한다. 아이들은 사미족 언어로 말하면 회초리를 맞는다. 언니 엘라 마리아는 스웨덴어를 열심히 배우며 웁살라에 가는 꿈을 품는다. 그와는 달리 동생 은제나는 사미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소중히 여긴다. 조금씩 멀어지는 언니와 동생. 과연 이 자매 앞에는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사미족 동화 정책은 19세기에서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서 북부 유럽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시행되었다. 영화 속에서 스웨덴 정부 연구소 사람들은 아이들을 발가벗겨서 신체를 계측하고 사진을 찍는다. 그 장면은 '동화 정책'이 인종주의와 우생학에 기반한 열등 민족 관리의 일환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교사는 웁살라의 학교에 가서 더 공부하고 싶다는 엘라 마리아의 바람을 비웃는다. 이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 교사는 사미족의 머리는 좋지 않으며, 순록 목축이 사미족의 운명이라고 일러준다.

  학교 근처에 사는 주민들은 사미족 아이들이 지나갈 때마다 모욕적인 언사와 욕설을 퍼붓는다. 그 말에 항의하는 엘라 마리아는 청년들에게 붙잡혀 귀의 일부분이 잘리는 상처를 입는다. 그들은 엘라 마리아가 가지고 있는 작은 칼을 빼앗아서 그런 무도한 짓을 저지른다. 그 칼은 사미족이 소유의 표식으로 순록의 귀에 흔적을 남길 때 쓰는 도구이다. 그렇게 엘라 마리아의 귀에는 지워지지 않는 흉터가 남는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국가가 사미족에게 저지른 학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영화는 스웨덴인이 되려는 엘라 마리아의 치열한 몸부림을 따라간다. 엘라 마리아는 학교에서 도망쳐 웁살라로 향한다. 스웨덴 청년과의 연애, 그곳 여학교에서의 생활,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 가족을 찾기까지의 여정. 영화의 내러티브와 전반적인 만듦새가 좋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Sami Blood'에는 잊혀진 진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영화는 여러 세대에 걸쳐 사미족 아이들이 언어와 전통을 포기하도록 강요받으며, 구조적인 차별 속에 살았음을 그 자체로 증명한다. 사미족의 정체성 대신 스웨덴인으로 살아온 엘라 마리아의 삶이 행복했었는지 영화는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언니는 사미족 전통 의상을 입고 관 속에 누워있는 동생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용서해 달라'고 말할 뿐이다. 용서를 청해야하는 주체는 엘라 마리아가 아니라, 폭압적 인종 동화 정책을 편 국가 권력이라는 점을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깨닫는다.   


2. 사회주의 쿠바 영화의 전형적 풍경, The Last Supper(1976)

  오늘 영화 글의 여정은 북부 유럽에서 이제 쿠바로 향한다. 바깥의 영화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고 멀게 느껴지는 나라를 영화로 만나는 여정이다. 이 영화의 감독 Tomás Gutiérrez Alea는 이탈리아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그는 당시 이탈리아 영화계의 네오리얼리즘(Neorealism)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고국 쿠바의 사회주의 혁명과 맞물려 그의 영화 작업은 당연히 국가 주도의 영화 산업과 긴밀한 연관을 맺었다. 1959년, 쿠바 혁명 정부는 'Instituto Cubano del Arte e Industria Cinematográficos(ICAIC)'을 설립했다. ICAIC는 쿠바 영화의 제작과 배급을 총괄하는 단체로 이곳의 역사가 쿠바 영화사이기도 하다. 영화 'The Last Supper(La última cena, 1976)'는 ICAIC에서 제작한 작품이다.

  어떤 영화가 정치적 선전인 프로파간다(propaganda)의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다고 해서 미학적 성취와 배치(背馳)되지는 않는다. 나치 시절에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이 만들어낸 '의지의 승리(Triumph of the Will, 1935)''올림피아(Olympia, 1938)'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영화 'The Last Supper'는 그와는 거리가 멀다. 영화는 시종일관 거칠고 직설적이며, 무엇보다 매우 지루하다. 잘 모르는 사람과 밥을 먹게 되었는데, 거의 2시간 동안 설교조의 웅변을 듣는다고 생각해 보라. 참으로 괴로울 것이다.

  1790년대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쿠바. 거대한 사탕수수 농장을 소유한 스페인 귀족 백작은 성삼일(聖三日,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에 이르는 성주간의 목 금 토요일)을 맞이해 특별한 행사를 기획한다. 바로 자신의 농장 노예 12명을 뽑아, 예수의 최후 만찬을 재현하고자 하는 것. 농장 감독 돈 마누엘은 백작의 명에 따라 무작위로 만찬에 초대받을 노예 12명을 뽑는다. 도망쳤다는 이유로 마누엘에 의해 귀가 잘린 반항적 노예 세바스찬도 만찬 식탁에 초대받는다. 예수의 성삼일 전례를 따라하려는 백작은 노예들의 발을 씻기고 입을 맞춘다. 백작은 온갖 음식들이 차려진 식탁 중앙에 자리잡고 좌우의 노예들을 둘러보며 설교를 시작한다. 노예들이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동안, 세바스찬은 백작에게 침을 뱉는다. 늙은 노예는 자신을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켜 달라고 애원한다. 예수 흉내 내기에 심취한 백작은 그 모든 상황에서 관대함을 보여주는데...

  무려 48분에 이르는 백작과 노예들의 만찬 시퀀스는 관객에게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백작은 노예들에게 자신이 믿는 성서의 가르침을 설파한다. 그런데 백작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것이 성서의 본질적 가르침과는 동떨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더 많은 고난을 받을수록 천국에 가깝다는 말을, 백작은 노예들의 삶에 빗댄다. 죽도록 일하고 고통스러운 노예들의 삶이야말로 그리스도가 말하는 행복한 삶이라고 우겨댄다. 백작이 보여주는 종교적 위선과 기만적 행태는 역겨움을 불러일으킨다. 토마스 구티에레즈 알레아는 스페인 식민 시대를 배경으로 오늘날의 착취적 자본주의와 종교의 허위의식을 맹공격한다. 영화는 만찬 식탁의 노예들로 대변되는 피지배 계층의 가난과 고통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성 금요일에 노예들에게 일을 시키지 않겠다는 백작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노예들은 반란을 일으킨다. 결국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죽임을 당하는 비극적 결말은 수탈자인 백작의 잔혹함을 부각시킨다. 아마도 누군가는 이 영화가 말하는 날것 그대로의 선전 선동에 진력을 낼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구조적 빈곤과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무자비함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쿠바 정부는 영화를 체제 유지를 위한 대중 커뮤니케이션의 강력한 도구로 인식했다. 과연 당시의 쿠바 사람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어떤 면에서 백작이 성서의 가르침을 자신의 수탈을 정당화하는 데에 써먹었던 것처럼, 영화도 사회주의의 충실한 메신저였을 수 있다. 'The Last Supper'는 영화라는 매체가 시대, 정치 체제와 이념, 국가의 영향력 아래 놓인 종속적 산물임을 상기하게 만든다.  


*사진 출처: revistacinecubano.icaic.cu    영화 'The Last Supper' 촬영 현장의 감독 토마스 구티에레즈 알레아(사진 오른쪽) 



**사진 출처: themovedb.org   영화에서 엘라 마리아 역을 맡은 Lene Cecilia Sparrok은 사미족 출신의 배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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