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조지 로메로(George Romero) 감독의 잊혀진 영화가 발견되었다. 'The Amusement Park(1975)'는 그때까지 영화학자들 사이에서 그 존재만 알려졌을 뿐,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펜실베이니아의 루터교 봉사 협회(Lutheran Service Society)는 로메로에게 의뢰한 작품을 받아보고 너무 놀라서 그냥 협회 캐비닛에 넣어버렸다. 협회 관계자들 눈에 그건 노인 학대 방지 캠페인 영화가 아니라 견디기 힘든 공포 영화였다. 16mm 필름으로 촬영된 이 영화는 복원 과정을 거쳐서 2021년에 다시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다.

  공포 영화의 대부로 불리는 로메로와 노인 학대 방지 캠페인이라니, 뭔가 어울리지 않는 이 기묘한 조합은 뜻밖의 결과물로 나왔다. 제목 'The Amusement Park'의 뜻대로 영화는 유원지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배우 링컨 마젤이 자신을 소개한다. 그는 노인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짤막한 설명을 곁들인다. 화면이 바뀌면 온통 하얀색인 방에 흰색 양복을 입은 두 명의 노인(링컨 마젤이 연기함)이 보인다. 한 노인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얼굴에는 상처가 나있고 몰골이 말이 아니다. 또 다른 노인은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다친 노인을 염려스럽게 쳐다 본다. 무언가 도와줄 것이 없냐고 묻자 지친 노인은 손을 내저으며 말을 잇지 못한다. 멀쩡한 노인이 그럼 자신은 밖에 나가보겠다고 하자 그제서야 그 노인은 외친다. "나가지 마! 거긴 아무 것도 없어. 아무 것도 없다구!"

  문이 열리고, 바로 놀이공원이 펼쳐진다. 그곳에서 노인이 앞으로 겪게 될 모험이 영화를 채운다. 사실 모험이라기 보다는 차별과 멸시, 강탈과 몰락의 경험이다. 노인들은 유원지 입장 티켓을 사기 위해 자신들의 소중한 물건을 내다 판다. 매입업자는 말도 안되는 헐값에 물건을 사들인다. 이 놀이공원에서 노인은 결코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다. 노인들은 각가지 금지사항이 적힌 놀이기구 앞에서 입장을 거부당한다. 범퍼카를 탄 노부부의 에피소드에서는 현실의 교통사고 장면을 은유적으로 재현한다. 그들의 범퍼카는 젊은 남자의 범퍼카와 부딪힌다. 경찰이 출동하고, 충돌 장면을 본 노인은 젊은 남자의 과실을 증언하려고 한다. 하지만 노인이 안경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의 증언은 믿을 수 없는 것이 된다. 노년의 신체적 노화는 판단 능력의 손상이라는 편견과 직결된다.

  아이들에게 가까이 가서 말을 걸었다는 이유로 노인은 소아성애자로 몰리기도 한다. 노인들이 유일하게 입장을 환영받는 곳에 가보니 그곳은 재활 치료 센터이다. 사기꾼들과 소매치기는 노인들의 돈을 노린다. 노인은 소매치기를 당하고, 폭주족들에게는 얻어맞으며 유원지에서의 공포 체험을 이어간다. 물론 그곳에서도 부자 노인은 환영받는다. 음식점의 종업원들은 부자 노인의 시중에만 응하며 우리의 흰양복 노인은 무시한다. 노인은 마지막으로 교회에서 위로를 찾고자 한다. 하지만 노인이 도착하자 교회는 입장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모든 수모를 겪으며 깔끔했던 노인의 행색은 노숙자처럼 변해간다.

  기괴한 대머리 고무 마스크를 쓰고 낫을 든 남자의 형상은 분명히 죽음의 사신(Grim Reaper)을 의미한다. 다소 우습고 기괴한 모습의 그 남자는 노인의 주변에 출몰한다. 조지 로메로는 현실의 놀이공원을 배경으로 노년에 마주하게 되는 여러 고통을 묘사한다. 노화, 경제적 궁핍, 사회적 편견, 질병, 인간 관계의 단절...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는 이 영화의 은유는 밋밋하며 참신함과도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평생을 공포 영화에 천착한 이 감독이 동시대의 사회 문제에도 날카로운 감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영화는 저예산 제작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주연 배우인 링컨 마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원 봉사로 참가한 일반인들이 연기했다. 무엇보다 품질의 심각한 손상은 조악한 사운드 녹음에 있다. 러닝타임 54분 동안 지지직거리는 소음이 계속 깔린다. 그런데 그것이 역설적으로 노인이 느끼는 내면의 슬픔과 공포를 직관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세월의 더께를 벗겨내고 만나게 된 영화 'The Amusement Park'는 하나도 무섭지 않다. 어떤 면에서 이 영화의 진정한 공포는 영화가 환기시키는 진실에 있다. 우리 모두는 늙어가고 있으며 결국 죽음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노인에 대한 혐오와 학대를 멈추라'. 루터교 봉사 협회의 제작 의도는 로메로에 의해 완벽하게 구현된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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