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와 1960년대 일본 영화의 주된 경향 가운데 하나는 문예 영화였다. 그 시기에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수준 높은 영화들이 꽤 많이 제작되었다. 주인공들은 대개 여성들, 그 가운데 '게이샤(芸者)'가 자주 등장하는 것이 눈에 띈다. 나루세 미키오의 1956년작 영화 '흐르다(流れる, Flowing, 1956)'도 게이샤가 주인공이다. 원작은 코다 아야(幸田文)가 1955년에 발표한 동명의 소설이다. 카와시마 유조(川島雄三) 감독의 1961년작 '여자는 두 번 태어난다(女は二度生まれる, Women Are Born Twice)'에는 '코엔'이란 이름의 게이샤가 나온다. 토미타 츠네오(富田常雄)가 쓴 '코엔의 일기(小えん日記, 1959)'가 원작이다.

  코엔(와카오 아야코 분)에게 남자란 옷을 갈아입는 것과 같은 일상이다. 말이 좋아 '예인(예술을 아는 사람)'이지 게이샤들은 웃음을 파는 직업이었다. 코엔은 '마마짱'이 배정해주는 손님들을 받는다. 부유한 건축가, 초밥집 요리사, 증권가 브로커... 그곳 손님들의 직업과 연령대도 다양하다. 코엔은 술 마시고 노닥거리다 손님 받고, 그러다 손님들하고 만나 데이트 하고 여행도 간다. 그런 삶을 사는 코엔에게는 괴로움이라던가 심각함이 보이지 않는다.

  게이샤들이 모여서 사는 집에 코엔의 개인 공간이라고 해봐야 손님 받는 방이다. 그런데 코엔은 자신이 애지중지 하는 작은 화분을 그 방이 아니라, 게이샤들이 함께 머무는 거실 쪽에다 둔다. 동료 게이샤가 실수로 화분을 건드려 깨뜨리자 코엔은 살짝 화를 낸다. 그곳에는 사생활이라든가, 오롯한 고요함이 존재하지 않는다. 신사(神社) 근처라서 수시로 신사에서 치는 종소리가 들린다. 그런 곳에 사는 코엔에게 드디어 자신의 집이 생긴다. 중년의 돈 많은 건축가는 코엔을 내연녀로 붙들어 두고 싶어한다.

  코엔이 얻은 셋방에서는 종소리 대신에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스폰서 영감은 코엔이 꾸며 놓은 집을 둘러보며 '하숙방' 같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원하는 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집과 같은 느낌'이라고 말한다. 어떤 면에서 그건 코엔에게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코엔에게 진짜 '집'의 분위기는 낯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다 보니 화류계로 흘러 들어와서 살게 된 삶. 이 천진난만한 게이샤에게는 욕심도, 괴로움도 없다.

  카와시마 유조는 게이샤의 삶을 손바닥의 손금 들여다보듯 훤히 꿰뚫고 있는 느낌을 준다. 유흥비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기도 했던 감독에게 그쪽 세계의 삶을 묘사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남자와 돈이 물처럼 흘러다니는 곳. 그런 세계에 살면서도 코엔에게는 순진한 구석이 있다. 스폰서 영감의 뜻대로 다른 남자와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도 하고, 게이샤로서 본분을 다하기 위해 노래 수업도 열심히 듣는다. 또 한편으로는 사랑과 결혼에 대한 나름의 소망도 있는 듯하다. 하지만 코엔의 주변 남자들은 그 기대에서 모두 벗어난다. 데이트했던 초밥집 요리사는 돈 많은 과부와 결혼하며, 스폰서 영감은 갑작스런 병을 얻어 죽는다. 연모했던 대학생은 회사원이 되어, 외국인 손님 접대를 하러 나타난다.

  기차 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자신만의 온전한 공간에서 코엔은 부서졌던 화분의 식물을 다시 잘 키워낸다. 좀 인색하기는 해도 스폰서 영감은 친절했고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으로 코엔은 다시 '마마짱'의 공간으로 돌아간다. '마마짱(ママちゃん)'은 어린 아이가 부르는 '엄마'라는 뜻도 있지만, 물장사 하는 술집 여주인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코엔은 스폰서 영감을 '파파(パパ, 아빠)'로 불렀었다. 그런가 하면 영화관에서 우연히 알게 되어 친해진 십 대 청소년은 코엔을 '누나(姉さん)'라고 부른다. 코엔에게 그들은 마치 유사가족(類似家族) 같다. 하지만 마마짱은 매상을 위해 코엔이 내켜하지 않는 손님을 강권하는 포주일 뿐이다. 스폰서 영감 파파는 강퍅한 마누라에게 질려서 코엔의 젊음을 값싸게 사들여서 즐겼다. 남동생을 자처했던 녀석은 급기야 코엔을 여자로 보고 달려든다.

  스폰서 영감의 죽음에 상심한 코엔은 게이샤들의 거실에 작은 분향 제단을 세운다. 동료 게이샤는 그런 코엔에게 개인 공간이 아니라며 이죽거리고, 격분한 코엔은 몸싸움을 벌인다. 그렇다. 마마짱과 게이샤들은 코엔의 가족이 아니며, 그들과 함께 사는 곳은 집이라고 할 수 없다. 영화의 마지막, 코엔은 낯선 시골 마을의 역에 서있다. 젊고, 가진 것이라고는 자신의 몸뚱이 하나 뿐인 이 가난한 게이샤의 목적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카와시마 유조는 집을 찾아나서는 코엔의 여정에 쉽사리 희망의 빛을 드리우지 않는다. 코엔이 짓고 있는 희미한 웃음 속에는 막막함이 서려 있다. '여자는 두 번 태어난다'는 그렇게 화류계 여인의 부박하고도 허망한 삶의 단면을 잡아낸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 '흐르다(流れる, Flowing, 1956)'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7/flowing-1956.html

***토요타 시로 감독의 문예 영화 '고양이와 쇼조와 두 여자(猫と庄造と二人のをんな, 1956)'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5/19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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