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시골 사냥꾼들의 담소에서부터 시작된다. 선술집에 둘러앉은 그들은 오래전 이 마을에 살았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렇게 영화의 1부에서 루치아노라는 이름의 광인이 등장한다. 19세기 후반 이탈리아 Tuscia, 마을 의사의 아들 루치아노는 늘 술에 절은채 폐인같은 삶을 살고 있다. 어느 날, 그에게 가난한 양치기의 딸 엠마가 눈에 들어온다. 둘은 사랑에 빠진다. 연인과 새로운 삶을 꿈꾸는 것도 잠시, 반항적인 루치아노는 마을의 절대적 권력자 영주와 충돌한다. 그로 인해 고향땅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그 과정에서 연인 엠마도 목숨을 잃는다.

  1부의 이야기만 놓고 보면 이 영화는 그저 그런 로맨스 영화 같다. 좀 싱겁네, 하고 심드렁해지려는 순간, 갑자기 2부가 시작된다. 이탈리아 시골의 수려한 풍광은 이제 남미 대륙의 최남단, 황량한 Tierra del Fuego로 바뀐다. 루치아노는 사제의 복장을 하고 있다. 그는 숨겨진 황금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이유로 보물 사냥꾼들에게 붙잡히는 신세가 된다. 바뀐 것은 풍경뿐만이 아니다. 장르도 바뀐다. 고통스럽게 끝난 루치아노의 로맨스는 어느새 처절한 서부극으로 이어진다.

  이 하이브리드 장르의 이탈리아 영화는 나름 매력이 있다. 특히 Tierra del Fuego의 원시적 풍광은 압도적이다. 끝없이 이어진 거친 자갈 언덕과 호수, 독특한 화산 지형을 배경으로 황금 사냥꾼들은 욕망과 배신의 서사를 짜나간다. 한마디로 그냥 '풍경'이 다 해 먹는 영화. 조그만 태블릿 PC 화면으로 보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거기에다 여인들의 구음과 민속 악기가 어우러진 배경 음악은 마치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Greek chorus) 같다.

  루치아노 역을 맡은 Gabriele Silli는 미술가로 비전문 배우임에도 좋은 연기를 펼친다. 현지 주민들을 기용해 자연스러운 연출을 보여준 점도 괜찮다. 두 명의 감독은 우연히 시골에 갔다가 농부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거기에서 영화의 구상을 발전시켜나갔다. 1부의 로맨스가 지역 민담에 기초했다면, 2부의 웨스턴은 캐릭터에 살을 붙이는 과정에서의 독특한 탈주였다.

  하지만 두 개의 전혀 다른 장르를 결합하는 과정에서 캐릭터 구축에는 헛점이 생겼다. 광인에 주정뱅이였던 루치아노가 남미의 땅에서 어떻게 물질적 욕망에 자신을 내던지게 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이에 대해 2명의 감독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답했다. 루치아노가 고향에서 경험한 상실의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그는 다른 형태의 보상을 추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59회 NYFF에서 이루어진 두 감독의 인터뷰 참조, 출처 유튜브). 그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The Tale of King Crab'은 설정의 비약과 모호함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실패한 영화인가?


  영화의 마지막, 루치아노는 쓰러지고 구르면서 사력을 다해 산에 오른다. 거친 바람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눈발이 날린다. 이 외롭고 상처입은 남자는 산 정상에 위치한 호수를 발견한다. 호수에는 황금의 위치를 알려준다는 붉은 대게가 헤엄치고 있다. 남자가 찾고 싶은 건 어쩌면 황금이 아니라,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연인 엠마이리라. 금빛 물살을 헤치며 천천히 걸어 들어간 루치아노는 환상 속에서 엠마와 만난다. 그렇게 Alessio Rigo de Righi와 Matteo Zoppis는 민담에서 건져올린 광인 남자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영화가 끝났을 때, 나는 내가 이 어설프고 기이한 전설에 매료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The Tale of King Crab'에서 풍경은 내러티브의 일부분이 아니라 그 자체이며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압도적 '풍경의 서사'가 어떤 것인지 궁금한 관객이라면 이 영화는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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