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쿠(ばく).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 '아사코(Asako I & II, 2018)'를 주의깊게 본 관객이라면 이 이름을 기억해낼 것이다. 히가시데 마사히로는 영화 속에서 바쿠와 료헤이로 1인 2역을 연기한다. 애니메이션 영화 'Cryptozoo(2021)'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바로 그 바쿠이다. 미국의 인디 애니메이터가 만든 영화에 일본의 요괴가 주인공이라는 점이 꽤나 흥미롭기는 하다. 중국의 전통 설화에서 유래된 이 요괴는 꿈, 특히 악몽을 먹어버린다. 영화 속에서 바쿠는 귀여운 아기 코끼리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길다란 코로 사람들의 머릿속 생각과 꿈을 빨아들인다.

  마치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 동식물처럼 크립티드는 밀렵꾼들에 의해 사냥되고, 암시장에서 거래된다. 수의학자 로렌 그레이는 바쿠와 같은 신화적 생물 cryptid를 구출하는 데에 전력을 다한다. 군 부대에서 성장한 어린 시절, 로렌은 악몽에 시달릴 때 바쿠가 와서 도와준 기억을 갖고 있다. 이런 로렌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이는 부유한 후원자 조앤이다. 조앤은 거대한 Cryptozoo를 만들어서 로렌이 구해낸 크립티드들을 수용한다. 한편 군에서는 바쿠를 이용해서 좌파 시위대를 진압하려고 한다. 바쿠가 시위대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없앨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로렌은 조앤의 도움으로 고르곤 피비와 함께 군 부대에 잡힌 바쿠의 구출에 나선다.

  이 애니메이션 영화의 기괴한 그림체에 비한다면 내러티브는 그다지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다. 좌파적 상상력을 말살시키기 위해 국가 권력이 상상의 요괴를 잡으러 나선다. 그 반대 지점에서 크립티드의 수호자인 로렌이 맹활약을 펼친다. 'Cryptozoo'에는 온갖 다양한 신화와 하위 문화 속에서 차용한 크립티드들이 등장한다. 중국 신화 속의 용부터 시작해서, 일본의 바쿠, 그리스 신화의 고르곤과 사티리콘, 스폰지밥을 연상케 하는 플리니의 모습까지. 크립티드의 형상은 Dash Shaw의 비주류적 감성과 강렬하게 공명한다.

  'Cryptozoo'는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 1993)'을 떠올리게 만드는 여러 지점을 갖고 있다. 로렌과 조안은 크립티드들의 안전과 복지를 위해서 Cryptozoo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거대하고 복잡한 시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든다. 그런 이유로 크립티드들은 상품화되고 관람객들의 유인에 이용된다. 과연 크립티드들은 그 동물원에 갇혀서 사는 것을 진정으로 원하고 고마워할까? 쥬라기 공원의 공룡들이 자본주의적 욕망의 산물인 것처럼 조안과 로렌의 크립토 동물원 또한 그러한 혐의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이 영화에서 국가 권력이 악의 축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크립티드 사냥꾼 니콜라스는 그 권력의 하수인이다. 그는 바쿠를 잡아들인 것에서 더 나아가 cryptozoo를 파괴시키려고 한다. 마침내 혼돈과 파괴의 아수라장 속에서 크립티드들은 풀려난다. Dash Shaw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억압하는 지배 권력, 그것을 은밀하게 매수하려는 자본주의를 모두 조소한다. 상상력에 자유를! 관객은 그렇게 1960년대 융성했던 히피 문화, 68혁명의 구호들이 울려퍼지고 있음을 확인한다.

  'Cryptozoo'에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없다. 영화가 보여주는 단선적이고 이분법적인 세계관은 철 지난, 구식의 것이다. 녹슬고 삐걱거리는 뼈대 안에서 모든 것이 과잉으로 흘러 넘친다. 성과 폭력을 과도하게 드러내는 그림체는 때로 거북스럽다. 동서양의 신화 서사에서 차용해온 크립티드는 기발하기보다는 진부하다. 그럼에도 이 애니메이션이 옹호하는 반문화적 상상력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 면에서 'Cryptozoo'는 히피 시대를 떠올리게 만드는 95분의 영상 환각제로 기능한다.



*사진 출처: polygon.com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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