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S 8부작 미니 시리즈 'Ken Burns: The West(1996)' 2, 3편

2편 "Empire Upon the Trails" (1806–1848)     1시간 24분
3편 "Speck of the Future" (1848–1856)        1시간 25분

 


3. 새로운 제국의 탄생

  영국에서 독립한 신생국 미국은 점차 자신들의 힘을 축적해 나가고 있었다. 미국은 무엇보다 영토 확장에 열을 올렸다. 거대한 루이지애나주를 프랑스에게서 매입한 것을 시작으로 서남부 지역이 새롭게 눈에 띄었다. 그곳은 신생 독립국 멕시코의 땅이었다.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에게서 독립한 이후 푸에블로 인디언들은 멕시코의 영향력 아래 놓인다. 혼란기, 미약한 힘을 지닌 멕시코의 지배하에 그 땅의 실질적 주인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여러 부류의 다양한 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가장 흥미로운 이들은 '마운틴맨(Mountain man)'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비버 가죽과 곰 모피를 거래하며 살았던 사냥꾼들로 인디언과 지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모피 무역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1830년대에 끝물에 접어들었고, 마운틴맨들은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만 했다. 그들은 독보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탐사대와 군인들 무리에 들어간다. 서부의 영웅 키트 카슨(Kit Carson)은 그 시기를 대표하는 마운틴맨이었다.

  푸에블로 인디언 부족들은 버팔로와 땅을 두고 서로 경쟁했다. 특히 그들이 성지로 여기는 'Black Hills'를 둘러싼 싸움은 매우 치열했다. 그러는 사이 텍사스에서는 새로운 주인 자리를 두고 싸움이 일어났다. 1836년, 샘 휴스턴이 이끄는 텍사스군이 산타 아나의 멕시코 정부군을 물리친다. 텍사스 공화국이 수립되고, 이제 미국은 그 지역 인디언들에게 지배력을 행사한다. 서부로, 서부로 새로운 땅을 향해 미국인들이 끊임없이 밀고 내려왔다. 인디언들은 계속 밀려나면서 자신들의 땅을 잃어가고 있었다.

  1847년, 박해받는 신생 종교 몰몬교의 신도들은 서부 솔트레이크에 도착했다. '미국의 모세'라고 일컫는 브리검 영은 몰몬교도들을 이끌고 사막 한가운데에서 자신들의 터전을 일구어 나갔다. 종교적 열정은 서부 개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른바 오리건 트레일(Oregon Trail)을 따라 선교사들이 원주민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고자 몰려들었다. 그들은 새로운 신과 함께 질병도 가져왔다. 백인들의 질병에 면역력이 없었던 인디언들은 죽어나갔고, 그들 사이에 생겨난 적대감이 파국을 불러온다. 1836년에서 1847년에 이르는 기간(Whitman Mission)에 오리건의 Cayouse 인디언들은 질병과 토벌로 거의 절멸 위기에 처하게 된다.

  루이스와 클라크 원정대 이후, 무려 30년 사이에 그 모든 것이 일어났다. 텍사스의 획득, 솔트 레이크의 건설, 오리건 지역의 평정, 그리고 1840년에는 캘리포니아가 정착민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제 그곳의 지배자가 누구인지 명확해졌다. 주인없는 땅 서부는 이제 미국의 것이었다. 그 땅에 곧 엄청난 광풍이 몰아닥칠 참이었다. '금'이 발견된 것이다. 그리고 '골드 러시(Gold Rush)'의 시대가 열린다.


4. 황금광 시대

  1848년, 서터 제재소의 현장 감독이었던 제임스 마샬이 인근 강가에서 금을 발견한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사람들은 숟가락 하나 들고 금 캐기에 나섰다. 도처에서 금이 쏟아져 나왔다. 1849년에 캘리포니아에는 무려 5만 명의 사람들이 금을 찾아 몰려들었다. 골드 러시의 광풍이 미 전역에 휘몰아친다. 'The West'의 3편에서는 미국 서부사의 가장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다룬다. 이 편에서는 골드 러시에 동참했던 윌리엄 스웨인이라는 농부의 편지글을 통해 그 시절을 살펴본다.

  일확천금에 대한 기대가 사람들을 서부로 불러모았다. 27살의 농부였던 스웨인도 그 소식을 듣는다. 그는 무식하고 가난한 농부가 아니었다. 중산층으로 학식있는 사람이었던 그는 아내가 선생님이었다. 그런 그조차 금을 찾아 떠났다. 스웨인은 자신이 보고 들은 여정의 모든 것을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 적었다. 황금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고되고 위험했다. 인디언의 습격은 위협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그보다 무서운 것은 익사와 총기사고, 이질과 콜레라였다. 금을 찾기도 전에 사람들이 길에서 죽어나갔다.

  그렇게 도착한 이들이 본 것은 금이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금을 캐고 있었고, 거기에는 가난과 질병이 창궐했다. 돈을 버는 이들은 그들을 상대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었다. 가장 유명했던 이는 몰몬교도로 캘리포니아에서 채굴 기구와 생필품을 팔았던 샘 브래넌이라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청바지의 아버지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는 질긴 텐트천으로 채굴용 바지를 만들어 팔았다. 그곳에는 거의 사기에 가까운 상술이 판을 쳤고, 금을 찾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웠다. 범죄자를 비롯해 오만 부류의 인간들이 모이는 곳에서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했다. 약속의 땅 서부에서 술집, 도박, 매춘이 성행했다.

  골드 러시의 광풍이 캘리포니아를 휩쓸 무렵, 인디언들에게는 어려운 시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샤이엔(Cheyenne) 부족은 콜레라로 황폐해졌고, 블랙 힐스의 소유권을 두고 라코타족과 샤이엔족은 대립했다. 그 와중에 미국 정부와 인디언들 사이에 첫 번째 포트 라라미 조약(The Treaty of Fort Laramie)이 맺어졌다. 미국은 서부에서 수(Sioux)족(라코타족은 수족의 한 분파이다)과의 경계선을 명확히 해두고, 그들을 이전보다 축소된 거주지로 내몰았다. 잠정적으로 찾아온 평화는 1854년, 몰몬교도의 마차를 인디언이 습격하면서 깨어진다. 미국은 그것을 기회로 인디언들의 대대적 토벌에 나섰다.

  황금광 시대에 고통을 받은 것은 인디언들 뿐만이 아니었다. 금을 찾기 위해 멕시칸들과 중국인들도 몰려들었는데, 그들 또한 박해와 핍박의 대상이었다. 특히 중국인들을 상대로 이루어진 차별은 가혹한 세금 부과, 구타와 채찍질, 방화에 이르기까지 참혹했다. 1852년에 중국 남부의 기근을 피해 미국 서부에 도착한 중국인들은 성실함으로 생존해 나갔다. 미국인들이 마다하는 세탁부와 밑바닥 일을 도맡아 했고, 후에 내륙 철도 건설에도 참여했다. 1882년, 그렇게 몰려오는 중국인들에게 캘리포니아 의회는 중국인 이민 금지법으로 대응했다.

  미국인들의 타자에 대한 적대감은 그 시기 인디언들에 대한 무참한 학살로 귀결되었다.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인디언들에 대한 학살을 지원하기까지 했다. 인디언의 머리 하나에 매겨진 현상금은 5달러였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인디언들은 노예로 팔렸다. 1870년까지 3만 명에 이르는 인디언들이 죽임을 당했다. 그것은 절멸에 이르는 대학살극이나 마찬가지였다.

  금을 찾아 떠난 농부 스웨인은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빈손이었지만, 돌아갈 고향과 가족이 있었다. 젊은 농부 스웨인은 집으로 돌아가서 평온하고 좋은 인생을 보냈다. 그렇게 황금광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 시기를 통해 미국인들은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해 나갔다. 모험과 도전, 성공에 대한 열망이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서부를 차지하고 있던 인디언들은 제거되었고, 미국의 앞길을 막는 장애물은 서부에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사진 출처: pbs.org


**키트 카슨 전기 '피와 천둥의 시대' 리뷰

https://blog.aladin.co.kr/sirius7/12625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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