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영화를 보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Mosfilm 홈페이지가 이제는 꽤 정겹게 느껴진다. 그런데 최근 들어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좋은 러시아 영화인데 막상 보려고 하면 영어 자막이 지원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영화들에는 오직 러시아어 자막만 지원된다. 그럴 때 아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막없이 그냥 영화를 본 다음에 나중에 자막을 따로 구해서 살펴볼 수도 있다. 고맙게도 러시아어로 된 영상물의 자막을 제공하는 사이트가 있다. 이 경우에는 여러 단계의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1. 러시아어 자막 사이트에서 영화 제목을 검색한다. 이것도 러시아어로만 검색이 가능하다.
2. 결과로 뜬 목록에서 정확한 제목을 찾아낸다. 그리고 자막을 다운받는다.
3. 자막을 다운받아서 메모장에서 열면 깨진 문자의 외계어만이 보인다. 그럴 땐 Microsoft word를 연결 프로그램으로 지정한다.
4. Microsoft word에서 키릴 문자로 변환시켜준다.
5.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는다.

  이렇게 쓰다 보니 뭔가 한숨이 나온다. 그동안 나름대로 러시아 영화를 열심히 보았지만, 내가 알아듣는 러시아어는 세 가지이다. 스파시바(고마워요 Thank you), 다(네 Yes), 가꼬이(무엇 what). 아무리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도, 생판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의 영화를 자막없이 보는 것은 고역이다. 그나마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와 일어의 경우는 자막이 없더라도 심한 답답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아주 오래전에도 자막없이 러시아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경험이 있었다.

  홍콩 무협 영화를 열심히 보던 때가 있었다. Shaw Brothers사의 무협 영화들에는 종종 자막이 없는 것들이 있었다. 그래도 그냥 영화를 보았다. 무협 영화의 이야기 구조가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중에는 나 혼자 대사를 만들어 읊어가면서(!) 영화를 보는 경지에 이르렀다. 지금처럼 자막 제공 사이트가 있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어제 '터닝 포인트(Поворот, Turning Point, 1978)'란 소련 시절 영화를 자막 없이 보았다. 나중에 자막을 구해서 대충 무슨 내용인지 이해는 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영화를 제대로 보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오늘은 궁리 끝에 모스 필름 홈페이지를 뒤적거려서 대표 이메일 주소를 찾아냈다. 그리고 메일을 보냈다. 영어 자막이 제공되는 영화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는 편지 글을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빌어서 작성했다. 번역된 러시아어 글을 다시 우리말로 변환해 보니 어색하기 짝이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모스 필름 영화사에 한국어 능통자가 있을 수도 있으니 한글 편지글도 함께 붙여서 썼다. 운이 좋다면, 모스 필름의 영어 자막 제작팀이 열심히 일한 결과물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ru.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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