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특이한 외모에 남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았다고 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피해서 갈 것이다. 경찰은 그 사람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그에게 접근하는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일 것이다. 뉴욕 거리를 친구와 함께 걷던 크리스탈 모젤(Crystal Moselle)이 그랬다. 모젤은 눈길을 사로잡는 한 무리의 청소년들을 보게 된다. 선글라스를 쓰고 눈에 띄는 옷차림을 한 그들은 한 형제들로 신기한 표정으로 거리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모젤과 그 형제들 사이에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었다. '영화'였다. 모젤은 그들과 시간을 두고 연대감을 쌓아갔고, 4년 후에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


  6명의 앙굴로(Angulo) 형제들은 14년 동안 아버지에 의해 감금된 삶을 살았다. 모젤이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 형제들은 그 즈음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고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웃들은 앙굴로 일가의 사람들을 본 적이 없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도 않았고, 오직 집에서 갇혀서 지냈다. 어떻게 대도시 뉴욕의 한 복판에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기이한 삶의 행로를 걷는 이들은 언제나 다큐 제작자들의 관심을 끈다. 다이렉트 시네마의 기수 메이슬스 형제의 'Grey Gardens(1975)'는 온갖 잡동사니 쓰레기로 가득찬 대저택에서 사는 상류층 모녀(재클린 케네디의 고모와 사촌)의 삶을 담았다. 테리 즈위고프의 'Crumb(1994)'은 외설적이고 기괴한 만화를 그려내는 것으로 유명한 만화가 Crumb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프리드먼가 사람들 포착하기(Capturing The Friedmans, 2003)'의 감독 앤드루 재러키는 '광대'라는 직업을 찍으려고 취재하는 도중에 자신의 취재 대상이 아동 성범죄자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다큐에는 범죄 가족의 뒤틀린 삶의 행로가 드러나 있다. 'The Wolfpack'의 감독 모젤도 충분히 논란거리가 될 인물들을 찍었다. 명백히 아동 학대와 유기의 상황에 처해 있었던 형제들의 이야기, 그 형제들이 세상으로 나오면서 겪게 되는 변화를 담아낸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놀랍고 짜릿하지 않은가? 풋내기 영화학도는 인내심을 가지고, 자신과 그 형제들이 다큐를 찍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고 결국 그것을 해냈다.

  다큐는 가족의 과거 홈비디오 자료들과 그들의 현재 삶의 모습이 대비되어 진행된다. 허름한 아파트에는 6명의 형제들, 다큐에는 나오지 않는 1명의 여자 형제가 있다. 그들의 어머니는 백인으로 페루 트레킹 여행을 갔다가 원주민을 만나 결혼했다. 북유럽 국가를 거쳐 뉴욕에 정착한 그들 가족은 뉴욕 시의 주거 프로젝트 혜택을 받아 6개의 방이 있는 아파트에서 살게 된다. 아버지 오스카는 가족들을 마약과 폭력이 있는 현실에서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오직 집에서만 지내도록 강제한다. 바깥 외출은 오스카만이 할 수 있었고, 아이들은 어머니의 홈스쿨링 덕분에 문맹은 피했다. 과대망상과 편집증을 가진 아버지 아래서 숨죽이던 아이들은 첫째 무쿤다가 15살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외출을 감행한다. 그것이 2010년의 일이었다.     

  홈비디오 화면을 통해 보이는 그들 가족의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다. 원주민 분장을 한 아이들의 생일 파티 장면에서 아버지 오스카는 마치 부족장처럼 보인다. 독재적 가부장인 이 남자는 자본주의에 저항한다며 일 하기를 거부하고 오직 정부 보조금으로 살아왔다.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종속되어서 아이들과 함께 고통스런 삶을 감내해야만 했다. 다큐 속 아이들 모친의 모습은 정서적인 문제를 가졌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럼에도 이 엄마는 자식 교육에 최선을 다했다. 아이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취미 생활은 '영화', 형제들은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배워갔다. 다큐는 중간 중간 이 형제들이 재연하는 영화 속 장면들을 보여준다. 가짜 총과 가면을 쓰고 아파트의 한정된 공간 속에서 자신들만의 공연을 하는 형제들의 모습은 기이하며 비현실적인 것처럼 제시된다. '펄프 픽션(Pulp Fiction, 1994)',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 2008)'와 같은 영화를 보며 첫째 무쿤다는 대사를 받아적고 장면을 분석하며 자신만의 영화 공부를 한다.

  다큐의 후반부는 그들 형제의 세상 탐험으로 채워져 있다. 지하철을 타고 뉴욕의 명소 코니 아일랜드 해변에 가보고, 인터넷을 통해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얻기도 한다. 환경 운동 시위에 참여하는 형제의 모습도 있다. 다큐는 세상과 만나면서 달라지는 형제들을 즐겁게 응시한다. 모젤 감독은 자신의 다큐에서 인물들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에 촛점을 두었다고 했다(출처 dissolve.com과의 2015년 인터뷰). 어찌 보면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 기민한 감독은 여러가지 요소들을 통제했다. 터너 증후군(염색체 이상의 유전병)을 앓고 있는 첫째 딸은 화면에서 배제되었고, 아동학대와 유기의 혐의를 가진 아버지의 모습과 대화도 최소한으로 절제했다. 형제들의 외출 장면 또한 나름대로 잘 기획된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The Wolfpack'은 14년 동안 감금되었던 형제들의 나름 성공적인 현실 안착기로 끝난다. 그러나 이 다큐는 여러가지 면에서 다큐멘터리 제작자의 윤리와 관련된 의문들을 남긴다. 모젤 감독이 다큐에서 보여준 촬영 대상자들과의 긴밀한 정서적 유대는 놀라운 것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촬영 당시 미성년자였던 형제들과 그들의 부모에게 전적이고 합의된 동의를 얻었다고 볼 수 있을까? 물론 문서화된 어떤 것이 존재하기는 할 것이다. 엔딩 크레딧을 보면 이 형제들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촬영에도 참여했다. 그들의 모친이 소식이 끊겼던 가족과 전화를 하는 장면은 형제들이 찍어서 감독에게 건넨 것이다. 감독은 형제들과 일정 부분 협업을 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상호 이익을 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2015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이 다큐는 분명 가족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첫째 무쿤다는 광고 제작 분야에서 일하고 있고, 다른 형제들은 요가와 환경 운동, 그 밖의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다큐멘터리가 극영화처럼 내러티브와 재미를 강조하게 되면서, 'The Wolfpack'과 같이 다큐 제작의 윤리 규범을 모호하게 넘나드는 작품들을 보게 된다. abc 뉴스의 대담에 나온 형제들은 1년에 몇 차례 정도는 외출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감옥 같은 생활은 맞지만, 외출 한 번 안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다큐에는 그런 부분에 대한 언급은 없다. 감독이 카메라를 촬영 대상자에게 주면서 이야기가 될 거리를 스스로 찍게 하는 것은 또 어떤가? 변화, 낙관, 희망, 다 좋은 것이다. 그러나 괜찮은 장면, 감동을 주는 결말에 대한 집착은 결국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극영화를 만들어낼 뿐이다. 뉴욕 거리에서 형제를 처음 본 감독의 친구는 그들에게 '어린 늑대 무리(wolfpack)'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어린 늑대들은 다큐를 통해 세상 속에서 사람의 삶을 살게 되었고, 감독은 경력의 반짝거리는 한 줄을 추가했다. 모두가 다 잘 된 이 다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씁쓸하고 안좋은 뒷맛을 남긴다. 
 


*사진 출처: vulture.com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속 캐릭터로 분장한 Angulo 형제들


  

**다음 글은 수요일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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