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러닝화를 세탁하고 보니 옆부분이 밑창과 분리되어 있었다. 좀 이상했다. 이 러닝화는 겨우 3개월 신었을 뿐이다. 그런데 벌써 이렇게 떨어지다니...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런데 찬찬히 생각해 보니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이 러닝화는 그러니까 7년 전인가 8년 전 쯤에 브랜드가 철수하기 전, 막판 정리 세일할 때 사놓은 것이다. 좋은 러닝화라서 아낀다고 한 것이 그렇게 시간이 흐른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신발장에 고이 모셔둔 그 러닝화를 올해 봄이 되서야 신었다. 그동안 신고 버린 러닝화가 여러 켤레인데도, 이건 어쨌든 신는 것이 아까웠다.
러닝화는 마치 맞춤 신발처럼 그 어떤 물집도 잡히지 않았고, 발도 아프지도 않았다. 정말 좋은 거네,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신은지 3개월 만에 그 러닝화 옆구리가 다 터지고 갈라지고 있었다. 그랬다. 이 러닝화는 땅 위에서 보내야할 시간 동안 신발장에서 삭고 있었다. 순간접착제를 손가락에 묻혀가며 겨우 붙여놓기는 했다. 그러나 접착된 부분이 얼마나 붙어있을지도 모르고, 이미 러닝화는 내구연한을 지나버린 상태였다. 올해까지는 신을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가끔 등산 관련 글에서 보게 되는 일화가 있다. 비싼 등산화를 사놓고 아끼다가 오랜만에 산에 신고 갔는데, 갑자기 밑창이 벌어지는 바람에 곤욕을 치루었다는 경험담. 신발의 접착제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므로, 시간이 지나면 경화되어서 갑피와 창이 분리될 수 있다. 남이 겪은 곤란에 대한 글은 무심히 읽다가, 그것이 나의 일이 되면 갑자기 뜨거운 물에 손을 덴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나는 일개 공산품인 러닝화의 수명에 대해 대단한 신뢰를 갖고 있었던 것일까? 물론 신발은 살아 숨쉬는 생물이 아니므로 썩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 이 러닝화는 신발장에서 비가역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문득 아주 오래전에 들었던 아동학 강의를 떠올렸다. 할머니 교수의 1학기 강의를 요약하면 이랬다.
- 유전 대 환경(Nature vs. Nurture)의 논의는 이제 무의미하다. 유전이 거의 모든 것(99.9999.....%)을 결정한다.
- Time is everything! 영유아의 발달에서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의 존재는 시간의 중요성을 입증한다. 그 시기를 놓치면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시간이 중요한 것은 아동의 발달에 있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순간접착제가 들러붙은 손가락으로 러닝화 접착 부분을 꾹꾹 눌러주면서, 이 지상의 모든 것들을 지배하는 '시간'의 의미를 생각해야만 했다. 조각이 나서 떨어지고 있는 러닝화 로고가 눈에 띄어서 그것도 함께 붙여 주었다. 그렇게 러닝화 자가 수선을 끝냈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신발장에는 그렇게 사놓은 러닝화가 두 켤레 더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