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화 '묵주알(The Beads of One Rosary, 1979)'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런 쓰레기 집에서 난 더이상 못살아!"

  여자는 이사를 못가겠다는 남편을 향해 쏘아붙인다. '쓰레기 집'이라는 말은 용납할 수 없다며 남편은 화를 낸다. 그들에게는 이사 갈 새집도 있고, 그저 짐 떠싣고 가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남편은 이사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가 내세우는 이유는 이렇다. 함께 살고 있는 집의 주인인 아버지가 이사를 가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상, 자신은 아버지의 뜻에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치 묵주알이 서로 이어진 것처럼, 이 효자 아들은 아버지와 뜻을 같이 하겠다고 아내에게 공언한다. 그들이 사는 집은 새롭게 지어질 주택단지 때문에 철거가 예정되어 있다. 지방 정부와 건축 회사는 거주자들에게 새집을 주어서 이주를 진행시키는데, 오직 이 집의 주인 하브리카만이 이사를 거부하고 있다. 그에게 이 집은 50년 넘게 살아온 삶의 일부분으로 절대로 쉽게 떠날 수 없다. 효자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뜻에 기꺼이 따른다. 며느리로서는 속이 터질 노릇이다.

  '묵주알'은 폴란드의 감독 카지미에시 쿠츠(Kazimierz Kutz)의 1979년도 작품이다. 그는 사회참여적인 작품들을 주로 만들었는데, 이 영화는 철거 예정 단지에서 자신의 집을 지키려는 은퇴 광부의 외로운 투쟁을 그린다. 영화는 실제로 철거되는 광부 주택 단지에서 촬영되었다. 카지미에시 쿠츠는 새롭게 지어지는 아파트 건설 현장과 철거되는 주택 단지의 모습을 다큐처럼 담아낸다. 영화는 사는 집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노인의 의지를 따라가면서, 변화하는 폴란드 사회의 모습을 펼쳐놓는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내세우며 이사를 거부하는 하브리카와 그를 설득하려는 건축 회사 책임자는 설전을 벌인다. 오랫동안 새 아파트 입주를 기다리는 이들을 생각하지 않는 하브리카가 공공의 이익을 무시하는 무정부주의자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이미 이웃집들은 이사를 갔고, 하브리카의 집은 마치 섬처럼 고립된다. 이 은퇴 광부의 집에 대한 애착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브리카는 독불장군에 정신나간 늙은이 취급을 받는다.

  급기야 집안으로 날아온 벽돌에 유리창이 깨지고, 애지중지 키우던 토끼는 누군가에 의해 독살당한다. 며느리는 새 아파트로 이사가버린다. 가부장제의 화신인 시아버지는 아들의 허락없이 나갈 수 없다며 며느리를 막으려 하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다. 하브리카 노인을 둘러싼 세계는 그렇게 흔들리고 조각이 나고 있는 판국이다. 그럴수록 노인은 결전의 의지를 다진다. 전직 광부인 그는 집에 위해를 가하려는 이들에 대항하기 위해 집 둘레에 폭약을 설치한다. 그의 의지를 꺾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와 그의 집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카지미에시 쿠츠는 하브리카의 고독한 투쟁을 통해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정부 당국을 에둘러 비판한다. 당사자가 만족할만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무조건 대의를 위해서 희생을 강요하는 일방적 관행에 하브리카는 저항한다. 참전 용사이며, 광부로서 쌓은 놀라운 업적으로 유공자 칭호를 받은 전형적인 구세대적인 인물이 집단의 가치에 순응하지 않고 개인적 투쟁을 벌이는 점은 흥미롭다. 어떤 면에서 하브리카의 외로운 싸움은 1980년에 일어난 폴란드의 자유노조 파업과도 맞닿아 있다. 오랜 경제적 침체를 야기한 폴란드 공산당 정부는 그 책임을 기습적인 물가인상으로 국민에게 전가하려 했다. 더이상의 경제적 고통을 감내할 수 없었던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섰고, 억눌려 있던 정치적 요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개인이 가진 권리와 자유에 대한 자각이기도 했다.

  하브리카의 집은 결국 철거된다.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건설사는 교외의 고급 주택을 제공한다. 모든 것이 최신식인 그 집은 노부부가 살기에는 너무 넓어서 불편하기까지 하다. 이 새로운 집에서 지독한 가부장주의자였던 하브리카는 아내의 설거지를 돕는가 하면, 아내의 말을 잘 들어주는 남편으로 변모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감당하기 어려운 변화였을까? 그는 갑작스럽게 숨을 거둔다. 노동 영웅으로서 그의 장례식은 장중하게 치뤄진다. 마지막으로 철거된 하브리카의 집, 그리고 그의 죽음과 함께 전통적 가부장제, 국가에 헌신하는 노동자의 신화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후 폴란드는 새로운 역사의 장에 들어선다. 때로 영화는 그렇게 시대를 앞서 예견하는 예언자적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진 출처: slaskiesiemianowice.pl   영화 '묵주알' 촬영현장의 카지미에시 쿠츠 감독(가운데)



*다음 글은 토요일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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