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멀 그리스(thermal grease)라는 것이 있다. 컴퓨터의 CPU에서는 많은 열이 발생하는데, 그 열을 빼내는 것이 CPU팬이다. CPU의 열이 팬에 잘 전달될수 있도록 접합부에 도포하는 물질이 바로 서멀 그리스이다. 전도성 물질인 알미늄 가루가 주성분인 이것이 없다면, CPU는 넘쳐나는 열로 인해 작동할 수 없게 된다. 서멀 그리스의 가격은 몇 백 원짜리에서부터 몇 만원대까지 다양하다. 기능상에는 그렇게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대다수의 사용자들은 저렴한 것으로 구입해서 쓴다.
며칠 전부터 컴퓨터에서 거슬리는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늘 익숙하게 듣던 소음은 아니었다. 컴퓨터 본체에 먼지라도 좀 쌓였나 싶어서 청소를 하기로 했다. 뜯어서 보니 먼지는 별로 없는데, 작은 플라스틱 조각 2개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것이 부품에서 떨어진 조각이라면 골치아프겠다 싶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CPU팬의 조임새 하나가 깨져 있었다. 그 부분이 들뜨면서 낯선 소음을 만들어냈던 모양이다. 다행히 예전에 사놓은 부품이 있었다. 팬을 떼어내 부품을 끼우고 다시 조립하면서 서멀 그리스도 새로 발라주었다. 나는 서멀 그리스를 쓸 때마다 배우 K가 떠오른다. 그 배우는 컴퓨터에 익숙했던 것인지, 언젠가 인터뷰에서 '서멀 그리스'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인생에서 서멀 그리스 같은 것이 있다면, 좀 더 삶을 견디기가 쉽지 않을까? 그것이 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 좋아하는 취미나 일, 물건일 수도 있다. 오늘 문득, 내 인생의 서멀 그리스는 무엇이었나 떠올려 보게 되었다. 내게는 그것이 '영화'였다. 애정의 존재로서의 영화, 떼어내고 버리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함께 하게 되는 것. 그러나 그 '영화'는 먹고 사는 데에는 사실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얼마 전, 미술 잡지 기사를 읽다가 이런 제목의 글을 보았다. '그 많은 미대 졸업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미술 전공을 살려서 자신의 작품 활동을 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영화의 경우에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비슷한 답을 얻게 될지 모른다.
예전에 영화 잡지에서 기획으로 낸 기사가 있었는데, 세계의 유명 영화 학교 소개에 관한 것이었다. 기사에는 머나먼 이국 땅에서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한국 학생들의 인터뷰가 있었다. 아주 오래 전 기사이므로 그 인터뷰의 학생들은 이제 중년에 접어들었을 것이다. 가끔은 기사에 나온 그들의 이름을 한 번 검색해 본다. 어떤 이들은 영화계로 들어와서 일하고 있었고, 또 어떤 이들은 검색 결과에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럴 땐 마음 속으로 응원하게 된다. 꼭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들이 행복하게 잘 살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어떤 방식으로든 젊음의 시간을 영화에 바친 이들이 너무 힘들거나 괴롭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이다.
가끔, 인생의 가정법, 그러니까 시간을 되돌려 내가 했던 선택들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때가 있다. 영화를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던 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그 선택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아주 오랫동안 나는 그 순간을 후회했었다. 그러나 이제 이렇게 세월이 흘러서 돌이켜 보니, 내가 그 때로 여러 번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영화를 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물론 영화는 먹고 살 방편으로는 아무런 효용성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것은 삶을 견딜 수 있게 해주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배우 K는 아직 서멀 그리스 같은 이를 만나지 못한 모양이다. 나는 TV에서 K의 얼굴을 볼 때면 K가 자신의 바램대로 그런 이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때론 스스로를 태워 삼켜버릴 수 있는 삶의 어려움 속에서 서멀 그리스 같은 무엇이 그 열기를 어디론가 빼버릴 수 있다면, 조금은 삶이 서늘해지고 가벼워질 것이다. 영화와 글쓰기, 지금의 나에겐 그 두 가지 서멀 그리스가 있다. 오늘, CPU팬에 서멀 그리스를 펴바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