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비행기에서 한무리의 승객들이 쏟아져 나오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멋진 옷차림을 한 승객들 사이로 초라한 행색의 사람들이 눈에 띈다. 그들은 외모도 다르다. 말쑥한 승객들은 유럽계 백인들이고, 후줄근한 옷차림에 페즈(fez: 챙없는 아랍 남자들의 모자)를 쓴 남자들과 그 일행들은 아랍계 사람들이다. 백인들은 고급 관광 버스에, 아랍인들은 허름한 트럭에 올라탄다. 그들은 이제 막 새로운 땅에 도착했다. 이곳에 오기만 하면 집도 주고 먹고 살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들었다. 정말 이 나라는 그 약속을 지킬까?

  이스라엘의 건국과 함께 인접 아랍국가들에서는 반유대주의의 기운이 커져갔다. 특히 예멘 지역에서 오랫동안 정착해서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심각한 박해의 위협에 놓여 있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른바 '마법의 양탄자 작전(Operation Magic Carpet)'으로 1949년에서 195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약 4만 9천명 가량의 예멘계 유대인들을 이스라엘로 수송한다. 에프라임 키숀(Ephraim Kishon)감독의 1964년작 '살라 샤바티(סאלח שבתי, Sallah Shabati)'는 그렇게 이스라엘 땅을 밟게 된 예멘 유대인의 힘든 정착기를 담아냈다.

  털털거리는 트럭을 타고 살라 샤바티의 가족들이 도착한 곳은 이른바 '임시 캠프(ma’abara)'라고 불리는 곳이다. 겨우 비바람이나 막을 것 같은 판잣집들이 모여있는 판자촌. 그곳에서 6명의 아이들에, 이제 곧 태어날 아이를 가진 부인이 있는 중년의 남자 살라는 오매불망 번듯한 새집이 주어지길 기다린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집단농장 키부츠의 막노동과 허드렛일이다. 일하고 받은 푼돈의 임금으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현실에 살라는 좌절한다. 그는 술집에서 술과 노래, 주사위 놀이로 시간을 때운다. 정치인들이 온갖 공약을 내걸었던 선거에도 기대를 걸었지만, 판잣촌에는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는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주인공 살라 샤바티의 캐릭터는 한마디로 일자무식의, 전형적인 아랍인의 가치관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 보다는 예멘인, 아랍인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살라는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술집에서 사람들과 함께 아랍풍의 민요를 흥겹게 부른다. 그들의 복장 또한 아랍의 전통 일상복이다. 유럽계 백인 유대인들을 지칭하는 '아슈케나짐(Ashkenazim, Ashkenazi Jews)'과 구분되는 '미즈라힘(Mizrahim, Mizrahi Jews)'이 그들을 지칭하는 명칭이다.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그 정착의 과정에서 미즈라힘은 계몽의 대상으로 철저히 관리되고 차별받았다. '살라 샤바티'는 미즈라힘이 겪는 차별의 현실을 보여주지만, 그 묘사는 사실적인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살라가 보여주는 무지와 게으름, 그리고 결혼을 앞둔 딸의 지참금을 남자에게 요구하는 모습은 아랍의 전근대성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살아야할 새로운 나라 이스라엘이 요구하는 시민의 덕목에 어울리지 않는다.


  열악한 환경의 판잣집에서 사는 것을 더이상 견딜 수 없는 살라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주택 사무국 앞에서 시위를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 장면은 결코 심각하게 연출되지 않았다. 다소 코믹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시위 장면에서 알 수 있듯, 에프라임 키숀 감독은 영화를 전반적으로 가볍고 활기차게 이끌어 간다. 깨끗하고 좋은 집에 대한 살라의 소망은 결국 이루어지며, 그의 아들과 딸은 키부츠의 아슈케나지 유대인과 결혼하게 된다. 그러한 결말은 이 영화가 매우 현실타협적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미즈라히 유대인들이 영화 속 살라의 캐릭터를 마음에 들어할 리가 없었다. 또한 이스라엘 당국으로서도 유대계 내부의 현실적 차별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당시 외무부 장관이었던 골다 메이어는 이 영화의 해외 반출을 금지시키기까지 했다. 그러나 영화는 아카데미 영화제와 골든 글로브에 출품되었고,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 이스라엘 영화가 해외에서 거둔 최초의 성공이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단 1대 밖에 없었던 Arriflex를 가지고 찍었던, 신인 감독의 첫 작품이 거둔 성과였다.

  주로 풍자적 칼럼과 소설 작품을 썼던 키숀은 자신의 단편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적인 것에 대한 별다른 이해없이 만든 이 작품에 어떤 미학적 성취나 서사의 완결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살라 샤바티'가 가진 내적 결함, 즉 미즈라히 유대인 캐릭터의 편향적 묘사와 피상적인 현실 인식이 매우 실망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아랍계 유대인들의 이스라엘 정착기의 한 단면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살라 역의 연기로 미국 영화계에 이름을 알린 차임 토폴은 노만 주이슨 감독의 '지붕 위의 바이올린(Fiddler on the Roof, 1971)'의 주연을 맡기도 했다.   



*사진 출처: edb.co.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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