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현관문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길래 나가봤더니 광고 전단지가 붙어있었다. 보통 전단지를 붙이는 이들은 평일 오후에 일을 하는 것 같은데, 오늘은 일요일 오전이었다. 일요일 아침부터 붙여야 했던 전단지는 새로 생긴 전자 제품 판매점 광고였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는 문앞에 붙어있는 전단지가 그리 많지 않았었다. 유례없는 전염병 시대에 판매업과 서비스 업종도 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주말을 앞두고 배달음식 전단지들은 끊이지 않고 붙여졌다. 놀랍게도 2군데의 헬스장과 요가 학원이 개업해서 열심히 광고를 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전단지 광고에 매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분리수거를 위해 스카치테이프를 떼어내면서 테이프의 길이를 보니 2cm정도였다. 나는 테이프 길이를 보면서 전단지 붙이는 이들의 경력을 가늠해 보곤 한다. 언젠가는 손가락 길이만큼 붙어진 테이프를 떼낸 적이 있다. 아마도 그 사람은 전단지 붙이는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오래된, 대단한 고수는 단 1cm정도의 테이프로 전단지를 붙이기도 한다. 종이가 떨어지지 않을만큼, 그리고 아주 경제적으로 테이프를 썼다. 스카치테이프 같은 소모품도 돈이 드는 것이니 최대한으로 아껴 쓰려고 그리한 것이다.

  그들은 대개 발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지나다닌다. 입주민의 눈에 띄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할 것이다. 한번은 밖을 나가려고 문을 열었는데, 이제 막 앞집 문앞에 전단지를 붙이고 있던 사람과 마주쳤다. 그는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남자로 비쩍 마른 몸에 아주 무거워 보이는 배낭을 메고 있었다. 낡은 청바지와 빛 바랜 흰색의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다. 남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그가 자신의 할 일을 하고 편히 지나갈 수 있도록 조용히 문을 닫았다. 어느 날은 키 작은 중년의 여자가 전단지를 붙이고 계단을 올라가는 것도 보았다. 그들을 직접 본 것은 단 두 번 뿐이었지만, 그 일이 젊은 사람들이 하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꼭 그런 건 아닌듯 했다. 자주 다니던 사이트 게시판에 전단지 붙이는 일을 하는 이의 경험담이 올라왔었다. 이십 대인 그는 그 일을 부업이 아니라 본업으로 하고 있었다. 원래는 다른 일을 하면서 부업으로 했었는데,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전단지 붙이는 일에 주력하게 되었다고 했다. 전단지 일감이 주어지는 경로, 일당, 자신이 하루종일 일하면서 걷는 거리 등, 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글로만 보아도 그 노동의 정도와 힘듦이 팍팍하게 전해졌다. 댓글에는 건강을 챙겨가면서 무리하지 말라는 격려의 글들이 이어졌다. 그런데 어떤 이는 댓글에서 과외하는 알바도 세금을 납부하는데, 이런 이들이 받은 수입에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적었다. 나는 내가 잘 모르는 직업의 또 다른 세계와 그 삶의 고단함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누군가는 세금과 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단 한 사람만 그런 댓글을 쓴 것이 아니었다.

  마침내 현직 변호사가 정리하는 댓글을 달아주었다. 엄밀히 말하면 세금이 부과되는 것이 맞지만, 아직까지 자신이 일하면서 이런 경우를 문제 삼는 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자신도 법리를 따지는 일로 먹고 살고 있기는 하지만, 힘든 여건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연민과 공감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썼다. 나도 솔직히 세금 운운하는 댓글에 적잖이 뜨악한 기분이 들었다. 그 세금 댓글에 놀라고 실망했던지, 글을 썼던 이는 얼마 안가 자신의 글을 삭제하고 사이트를 탈퇴해 버렸다.      

  국회방송에서 내가 챙겨서 보는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는 '세계의 극한 직업'이다. 주로 제 3세계 빈국들의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엊그제는 방글라데시 편이 나왔다. 그 나라에서는 혼수물품으로 금 장신구를 해가는 전통 때문에 금 세공업이 발달했다. 금 세공업 거리의 극한 직업은 이런 것이었다. 세공업자들이 화장실 갈 때마다 미세한 금가루가 떨어지는데, 그곳 하수구의 오물들을 걸러서 그 금가루를 모으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하수구에 모인 오물들을 큰통으로 퍼서 작업장으로 가져와 거른다. 마침내 남은 금속 찌꺼기들에서 금가루를 채취하는데, 여기에는 유독 물질인 수은과 세정제가 사용된다. 3명의 작업자가 일해서 얻은 금의 양은 말그대로 작은 팥알만 했다. 예전에 경기가 호황이었을 때는 그 일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단다. 지금은 세공 산업이 많이 위축되다 보니, 나오는 금의 양도 적어서 입에 풀칠이나 겨우 한다고 했다. 집에서 그는 아내와 딸이 하는 쇼핑백 조립일을 도왔다. 딸은 학교를 다니다 그만 두었다. 아직 어린 아들 둘은 학교에 보내서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어제 밤늦게 TV를 틀었더니, 'AI 시대와 새로운 직업'이라는 강연이 나오고 있었다. 외국의 전문가가 AI를 이용한 공유 경제가 새로운 직업들을 창출할 수 있다고 역설하는 참이었다. 나는 강연을 좀 듣다가 껐다. 나의 세대들은 AI와 공존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세대들을 바라보면서 늙어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인공지능이라는 변수는 직업의 세계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집 근처 스포츠 센터의 주차장에는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주차료를 징수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지금은 요금이 자동으로 결제되는 주차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언젠가 전단지를 붙이는 이들의 일감도 떨어질지 모른다. 종이의 형태가 아닌 다른 방식의 광고가 그들의 일을 대체하게 된다면, 그들은 더 힘들고 열악한 노동 여건의 일용직으로 밀려나게될 가능성이 크다.

  전문직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법과 의료 분야에서도 AI는 점점 더 어렵고 까다로운 일들을 수행해 나가고 있다. 예술 영역도 마찬가지다. AI가 써낸 시들과 시인이 쓴 시들을 구분해 보라는 과제들에서 많은 이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글을 쓰는 작가, 비평가들이 AI와 경쟁하게 될 날은 그리 멀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그런 미래는 우리의 발밑까지는 다가오지 않았다. 오늘도 전단지를 붙이는 이들의 일감은 남아있고,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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