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대학 시절,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교련 과목에 대한 반대 운동을 하다 당국에 검거되어 자퇴를 강요받았다. 학교를 그만 두고 무얼 할까 생각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극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걸로는 먹고 살 방도가 안될 것 같았다. 영화를 하면 밥은 먹고 살겠지 싶은 마음이 들어서 영화사에 들어갔다. 차근차근 경력을 쌓은 그는 종전 후에는 도호 영화사에서 인정받는 감독이 된다. 그러나 공산당원으로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그는 미군정 하에서 뜻밖의 시련을 겪는다. 도호 제작사는 사회주의 영화인들의 노조와 충돌한다. 이른바 '도호 쟁의'라고 불리는 그 사건으로 영화사를 나와야 했다. 빙수 장사를 했지만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마침 영화사에서 분쟁 보상금으로 받은 돈으로 영화를 한 편 찍는다.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고, 그 돈을 가지고 제작사를 차린다. 감독 야마모토 사츠오의 이야기다. 그에게 제 2의 영화 인생을 열어준 작품은 '폭력의 거리(暴力の街, 1950)'였다.

  영화는 '도조'라는 소도시에서 벌어진 부정부패 사건을 다룬다. 도조로 발령받은 신참 기자 키타는 지역 유지 오니시와 경찰, 검찰 간부의 유착 관계를 알게 된다. 오니시는 직물 공장을 소유하고 있는데, 암거래로 물건을 빼돌려 큰 돈을 벌고 있다. 관공서 뿐만 아니라 야쿠자와도 결탁한 오니시는 도시의 권력자로 군림하며 온갖 횡포를 부린다. 키타가 오니시에 대한 고발 기사를 내자, 앙심을 품은 오니시는 검찰 신청사 개관식에서 키타를 폭행한다. 키타는 굴하지 않고 그에 맞서 신문사의 동료들과 함께 도조 시에서 벌어지는 불의를 기사로 써낸다. 그들의 뜻에 동참한 시민들은 범죄 추방 운동을 벌이기 시작한다. 그러자 오니시와 야쿠자, 부패한 경찰과 관리들은 회유와 협박으로, 나중에는 폭력을 휘두르며 저항한다. 과연 도조 시에 정의는 실현될 수 있을까?

  '폭력의 거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극영화임에도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했다는 점이다. 마치 뉴스 보도 화면처럼 중간 중간 내레이터가 사건의 개요를 설명해 준다. 기자들이 써내는 기사들은 몽타주 기법으로, 야쿠자들이 과거에 저지른 폭력과 범죄 행위는 재연 장면으로 제시된다. 재미있는 장면도 있는데, 신문사 편집장이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이들의 신뢰도를 평가하는 부분이다. 야마모토 사츠오 감독은 등장한 인물들의 얼굴 위에 커다란 흰색의 가위표(믿을 수 없음)와 세모(판단 유보)로 표시해 놓는다. 그런가 하면, 나중에 시민들이 주최한 대규모 집회는 시네마 베리테(Cinema Verite)를 연상케 한다.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에게 직접 마이크를 주면서 의견을 말하게 하는 장면은 영화에 사실성을 더한다(물론 마이크에 대고 말하는 이들은 출연 배우들이다). 이것은 영화의 끝부분에 실제로 도시에서 개최된 마츠리 촬영분을 넣은 것에서 정점을 찍는다.

  이 영화를 '재미'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당시에 어떻게 크게 흥행했는지 그다지 납득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배우들의 연기는 밋밋하고, 서사는 극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재미' 보다 더 강력한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진실'이었다.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1948년에 있었던 '혼조 사건'이 그것이다. 아사히 신문기자가 사이타마 현 혼조 시의 부정부패와 폭력 범죄 사건을 취재하면서 겪은 것을 1949년에 책으로 펴냈다. 그리고 '폭력의 거리'는 사건의 그 도시 혼조에서, 주민들의 협조를 받으면서 촬영되었다. 1950년까지도 혼조의 상황은 안정되지 못한 상태였다. 영화 제작은 야쿠자들의 방해를 받는 가운데에서 강행되었다. 그러니까 영화 속 집회 장면의 사람들은 동원된 엑스트라들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나온 실제 주민들이었다. '폭력의 거리'의 사실성은 그런 상황에서 획득한 것이었다.

  '폭력의 거리'는 종전 후, 공권력 부재의 상황에서 토호와 범죄조직이 결탁한 소도시의 비극을 그려냈다. 미군정 하의 일본 사회의 불안정성을 드러내는 '혼조 사건'은 일본 정부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영화에는 GHQ(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GHQ가 개입하고 나서야 사건이 대강 마무리될 수 있었다.


  이 영화가 상영이 되자, 경찰을 비롯한 관료 조직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겉으로는 영화가 시민들의 공권력 불신을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그 속내는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냈다는 데에 대한 열패감이었을 것이다. 그런 사실은 당시 일본의 공권력과 관료 조직이 진정으로 자정 능력이 있었는가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던진다. 부패한 사업가와 야쿠자들은 자리를 잃지 않았다. 미군정 하에서 좌익 세력과 공산주의자 색출의 선봉에 선 야쿠자들은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포착한다. 영화의 결말에서 시민들이 거둔 승리가 불완전하고 잠정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근절되지 못한 범죄와 폭력의 뿌리는 이후 일본 사회에 단단히 자리잡게 된다.



*사진 출처: 100satsuoyamamoto.com



**다음 글은 월요일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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