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중력을 무시한 쇼트로부터 시작한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카메라가 풍경을 훑어 내려간다. 소년은 꿈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온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첫 장편 영화 '이반의 어린 시절(Ivan's Childhood, 1962)'의 도입부이다. 원래 이 영화는 찍기로 한 감독이 따로 있었다. 러시아 국영 영화사 Mosfilm은 소속 신인 감독 에두아드르 아발로프에게 영화를 배정했다. 그런데 이 감독의 초반 촬영분을 보고서 도저히 그대로 진행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타르코프스키는 대안으로 급조된 감독이었다. 기존의 촬영분은 모두 폐기되었다. 29살의 타르코프스키는 그렇게 자신의 첫 영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이후 그의 영화들에 등장하는 여러 중요한 요소들, 어쩌면 그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단서들이 짜임새있게 배치되어 있다.

  영화의 배경은 2차 대전, 독일과 접전을 벌이는 국경 지대이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교회는 군 주둔지가 되었다. 갈체프 중위는 피폐한 몰골의 소년을 데려왔다는 사병의 보고를 듣는다. 소년은 무조건 본부와의 교신을 요구한다. 갈체프는 곧 이 소년의 이름이 이반 본다레프이며, 정찰 척후병으로 복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돌아온 이반을 본부의 콜린 대위는 후방의 군사학교로 보내려고 하지만, 소년은 그 결정을 거부한다. 독일군에 의해 가족이 희생된 이 소년은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다. 이반은 갈체프와 함께 지내면서 조금씩 마음을 터놓게 된다. 타르코프스키의 '잠입자(Stalker, 1979)'에서 영화를 지배하던 물 떨어지는 소리를 여기서도 들을 수 있다. 이반이 머무는 갈체프의 방에서 끊임없이 들리는 물방울 소리, 그 소리와 함께 관객은 이반이 거울 속에 비친 갈체프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보게 된다. 물 소리, 거울 덕후인 타르코프스키의 시작은 이러했다.

  '물'에 대한 타르코프스키의 사랑은 강박적으로 보일 정도이다. 이반이 꿈을 꾸는 장면에서 보이는 우물가에는 어머니가 서있다. 이 영화 속에서 현실과 꿈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서의 물의 의미는 너무도 다채로워서 어느 하나의 의미로 규정할 수 없다. 이반이 꾸는 또 다른 꿈에는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맞는 이반과 어린 여동생이 나온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보여지는 회상의 장면에서 이반은 얕은 해변가를 여동생과 함께 가로질러 간다. 관객은 이제 이 감독의 '물 사랑'을 그의 전 작품에서 목격하게 될 터였다.

  타르코프스키가 그토록 좋아하는 '그림' 사랑도 엿볼 수 있다. 갈체프는 이반이 심심할까봐 자신이 독일군에게서 압수한 그림책들을 보여준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목판 연작 '요한묵시록'의 그림들이다. 지옥을 연상케 하는 무시무시한 그림들은 이반에게 자신이 겪은 전쟁의 참혹한 기억을 상기시킨다. 폐허가 된 교회의 십자가와 벽에 보이는 이콘(ikon)들은 타르코프스키가 1966년에 만들게 될 '안드레이 류블료프(Andrey Rublyov)'의 예고편처럼 보인다. 이런 그림에 대한 타르코프스키의 애정은 사실 그가 겪은 전쟁의 경험에서 기인했다. 전쟁 시기, 그와 가족은 모스크바의 빈집들을 전전하며 지냈다. 버려진 부유한 주택가에는 엄청나게 많은 화첩들이 있었고, 그 그림들이 타르코프스키의 정신 세계를 채웠다.

  물과 함께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에서 보이는 수직 이미지가 '이반의 어린 시절'에서는 콜린과 간호 장교 마샤의 대화장면에서 등장한다. 빽빽하게 들어찬 자작나무들의 숲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속내를 들여다 본다. 비껴가는 대답들과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사랑의 감정은 쉽게 포착되지 않는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서 명확하게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 감독은 자신이 만드는 영화 안에서 될 수 있는대로 의미를 숨기는 것을 영화 철학으로 삼았다. 그 숨겨진 의미들은 그가 보여주는 이미지들 안에 자리한다. 영화의 이미지로 시를 써내려가는 시인이자 영화 감독의 탄생은 바로 이 영화에서부터이다.

  '이반의 어린 시절'은 전쟁의 참혹함을 그려내고 있음에도 관객은 슬픔의 감정과 함께 기이한 평온함과 마주하게 된다. 아마도 후자의 감정은 전쟁 이전의 이반의 기억들이 펼쳐지는 꿈의 이미지들에서 유래하는 잔향일 것이다. 시인이자 번역가였던 부친의 재능을 물려받은 타르코프스키는 문장이 아닌 이미지의 시들로 자신의 생을 채워나갔다. '이반의 어린 시절'은 그런 그의 예술적 첫 걸음인 동시에 영화사적으로도 매우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업들을 통해 이제 영화는 이미지로 구현되는 정교한 예술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동시대를 비롯해 후대의 많은 영화인들이 그의 영화에서 영감을 받았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반의 어린 시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해변가의 고목은 그가 만들어갈 새로운 영화사적 흐름에 대한 이정표처럼 보인다.   



*사진 출처: zagonka.ru  이반 역의 니콜라이 부를리야예프. 타르코프스키는 1973년의 회고록에서 니콜라이의 연기가 너무 가식적이고 과장되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썼다. 그러나 자신의 첫 영화가 가지는 의미를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사진 출처: levelvan.ru  '이반의 어린 시절' 해변가 촬영 장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