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도 유통기한이라는 것이 있을까? 우리가 '명화'라고 부르는 영화들은 아마도 유통기한이라는 것이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매번 새롭게 갱신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명화와는 반대로 잊혀지는 영화도 있다. 작품성이 없어서 그런 것도 있고, 원래 가진 가치보다 저평가된 경우도 있다. 때론 세월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관객들과 평론가들에게 잊혀지는 영화들을 보면서 그 유통기한을 가늠해 보곤 한다.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1992년작 '막을 올려라(Noises Off)'도 어쩌면 그렇게 잊혀지는 영화인지 모르겠다. 1982년에 영국의 작가 마이클 프레인이 쓴 동명의 희곡을 각색해서 만든 이 영화는 개봉 당시에 비평가들의 외면을 받았다. 피터 보그다노비치는 '라스트 픽처 쇼(The Last Picture Show, 1971)', '페이퍼 문(Paper Moon, 1973)'으로 1970년대 미국 영화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가 만든 영화들은 흥행에 연달아 실패하면서 서서히 잊혀져 갔다. 이 영화 '막을 올려라'도 그 쓸쓸한 영화 경력의 후반기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렇다면 '막을 올려라'는 정말 별 볼 일 없는 영화인가?

  연극 연출가 로이드(마이클 케인 분)는 'Nothing On'이라는 연극 상연을 준비하는 중이다. 촉박한 시한 때문에 테크니컬 리허설(음향과 조명, 배우들의 동선을 점검하는 리허설)을 생략하고 곧바로 드레스 리허설(공연 전 최종 리허설)에 들어간 배우들의 공연 준비는 삐걱거린다. 여배우 도티는 중요한 소품인 정어리(sardine,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읊어지는 단어다)와 신문을 자꾸 빼놓고 연기하는 문제로 로이드의 지적을 받는다. 도티가 맡은 역은 가정부로 주인 내외가 여행으로 집을 비운 사이에 혼자 시간을 보내려고 주인집에 와있다. 여기에 부동산 업자가 자신의 여자 친구와 들어오는데, 여행을 떠났다던 주인 내외도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이 와중에 도둑까지 든다. 이들 극중극의 인물들은 서로가 집에 있는지 모르고 있는 상태이다. 그들은 여러 방을 드나들면서 절묘하게 만남을 피하다가 결국에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유발되는 웃음이 'Nothing On'의 핵심이다.

  어렵사리 리허설을 마치고 마침내 오프닝 나이트 날, 로이드의 우려와는 달리 연극은 성공적인 초연을 한다. 이것이 1막이다. 2막의 배경은 순회 공연이 펼쳐지는 플로리다로 배우들의 극심한 갈등 때문에 혼란스러운 무대 뒷편을 보여준다. 3막의 클리블렌드에서는 꼬일대로 꼬여버린 배우들의 관계 속에 각자 제멋대로 대사를 하고 연기하는 엉망진창의 무대 공연 장면이다. 연극이 이렇게 되어버린 데에는 배우들이 서로 연애하는 과정에서 사랑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연상의 여배우 도티와 연인 사이였던 게리는 도티가 프레데릭(크리스토퍼 리브 분)과 사귀는 것을 알게 되면서 연극을 하는 도중에 골탕을 먹인다. 그런가 하면 연출가 로이드는 조연출 포피와 출연 배우 브룩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도둑 역으로 나오는 알콜 중독자인 노배우 셀스던은 소품으로 쓰이는 술에 눈독을 들이느라 동선과 대사를 까먹는다. 이들의 갈등은 연극을 진창 속에 빠져들게 만들지만, 영화의 관객에게는 포복절도할 슬랩스틱을 선사한다.

  '막을 올려라'를 보는 것은 꽤나 즐겁다. 보그다노비치가 '니켈로데온(Nickelodeon, 1976)'에서 보여주었던 독창적인 유머감각을 이 영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정교하게 짜여진 슬랩스틱, 그것이 유발하는 웃음을 담아내기 위해 잘 활용된 롱테이크, 적절한 편집, 배우들의 재치있고 뛰어난 연기, 그 모든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비평가들에게 혹평을 받았던 이유는 토니상을 여러 번 수상했던 원작 연극의 성공에 원인이 있었다. 연극을 본 이들은 영화가 원작의 본질을 되살리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거기에다 원작자 마이클 프레인은 희곡을 영화화 하는 과정에서 수정되고 덧붙여진 시나리오에 극심한 반감을 표현했다. 또 다른 비판으로는 원작 희곡이 영국식 영어와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데, 그 모든 것이 '미국식'으로 '미국 배우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불평이었다. 연출가 역의 마이클 케인과 술꾼 배우 역으로 나온 덴홀름 엘리엇, 이 두 명의 영국 배우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처럼 연극을 못 본 관객의 입장에서는 정말 재미있는 영화이지만, 연극팬들에게는 '막을 올려라'가 연극에 비해 수준미달로 여겨졌던 것 같다. 원작 희곡이 어떤가 싶어서 영문 대본을 찾아봤는데, 무려 150쪽이 넘는 꽤 긴 분량이었다. 무척 길고 복잡한 내용의 희곡을 이 영화보다 얼마나 더 잘만들어야 한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영화는 '웃음'에만 촛점을 둔 나머지, 캐릭터들간의 관계 설정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단점을 갖고 있기는 하다. 거기에다 저속한 '화장실 유머(toilet humor)'가 나온다는 점도 이 영화의 평판에 좋지않은 영향을 끼쳤다. '막을 올려라'는 경박스럽고, 연극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혹평을 받으면서 흥행에서도 실패했다. 보그다노비치에게는 이후 영화 경력의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영어 제목 'Noises Off'는 연극 용어에서 따온 것이다. 연극 상연시 필요한 효과음을 무대 밖 offstage에서 틀어주는데, 그것을 지시하는 용어가 'noises off'이다. '막을 올려라'의 극중극의 배우들은 원래 정해진 대사와 연출, 효과음은 죄다 무시하고 자신들 멋대로 공연하게 된다. 그 제멋대로의 공연은 결국 관객에게 큰 박수를 받는다. 나는 그 배우들처럼 보그다노비치의 유쾌한 일탈을 보여주는 이 영화의 유통기한이 좀 더 길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토록 재미있는 영화가 잊혀지기 보다는, 좀 더 오래 관객의 곁에 머무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사진 출처: movieforum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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