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엘머 갠트리(Elmer Gantry, 1960)'의 주연을 맡은 버트 랭커스터는 영화가 개봉된 후,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졌던 친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친구는 영화 속 랭커스터가 연기한 엘머 갠트리가 랭커스터 자신과 많이 닮았다고 썼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기꾼'이다. 엄청난 입담을 자랑하는 세일즈맨 엘머는 이 도시 저 도시를 떠돌아다니며 가전제품을 팔아먹으며 살아간다.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부흥회 전단지가 이 사기꾼 남자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전단지에는 어여쁜 부흥회 전도사 샤론의 얼굴이 인쇄되어 있었다. 샤론 팔코너(진 시몬스 분)도 떠돌이 삶을 산다는 점에서는 남자와 마찬가지. 작은 도시들을 전전하며 천막 부흥회로 헌금을 끌어모은다. 둘의 차이가 있다면 파는 품목의 차이이다. 엘머는 물건을, 샤론은 종교를 판다. 엘머는 샤론의 부흥회에 합류해서 자신의 진가를 입증해 보인다. 엘머는 샤론에게 큰 도시 제니스로 가서 더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한다고 설득하고, 샤론의 부흥회 팀은 제니스로 간다. 과연 엘머와 샤론의 천막 부흥회는 제니스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엘머 갠트리'의 원작은 미국의 작가 싱클레어 루이스가 1927년에 쓴 동명의 소설이다.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의 감독 리처드 브룩스는 원작의 내용을 상당 부분 바꾸었다. 무엇보다 '엘머 갠트리'는 기독교에 비판적인 색채를 띄고 있는 내용이라서, 제작사로서도 민감하고 골치아픈 부분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영화의 배경은 1920년대, 싱클레어 루이스는 그 당시에 불붙듯이 일어난 기독교 영성 운동을 취재하고 이 소설을 썼다. 이른바 '오순절 주의(Pentecostalism)'에서 유래된 초교파적 성령운동이다. 미국에서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이 종교적 움직임은 20세기에 들어서 개신교 내부의 쇄신과 교파의 분화를 촉진시켰다(이에 대해 참고할만한 책은 하버드대 종교학과 교수 하비 콕스의 '영성 음악 여성'이다. 정말 좋은 책인데 절판된 점이 아쉽다). 그 시절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사기꾼 엘머 갠트리가 겪은 어느 천막 부흥회의 흥망성쇠를 보여준다.

  신문기자 짐 레퍼츠는 의심과 비판의 눈초리로 엘머와 샤론을 바라보며 부흥회를 취재한다. 짐은 샤론에게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설교를 하고 신의 이름을 파느냐고 묻는다. 짐이 보기에 샤론의 부흥회는 사람들의 죄의식과 불안함을 부추겨서 돈을 뜯어내는 사기극과 다름없다. 그의 확신을 분명하게 만드는 엘머의 허황되고 도발적인 연설은 마치 서커스 공연(버트 랭커스터는 이십대에 서커스 단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처럼 보인다. 버트 랭커스터는 그야말로 신들린듯한 연기를 보여주는데, 그의 입담과 퍼포먼스는 정말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든다. 영화를 내내 지배하는 그의 존재감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이 사기꾼에게 종교적 열정으로만 살아온 샤론도 빠져든다. 둘은 사랑하게 되지만, 엘머의 과거가 그들의 장밋빛 미래에 그늘을 드리운다.

  '엘머 갠트리'가 보여주는 종교는 사기꾼들의 수작이 판치는 공허하고 추악한 복마전이다. 신에 대한 순수한 믿음만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샤론은 자신의 진짜 성전을 짓기 위해 떠돌이 전도사 생활을 하며 돈을 모았노라고 엘머에게 털어놓는다. 영화는 번지르르한 말과 화려한 퍼포먼스로 변질된 설교가 사람들을 홀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당시 미국에서 TV와 대중 설교로 교세를 확장해가고 있었던 인기 목사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작가 싱클레어 루이스가 목격했던 1920년대의 부흥회 설교꾼들의 모습은 시간차를 두고 그렇게 기묘하게 겹친다. 감독 리처드 브룩스는 부담스러운 종교 비판적인 메시지를 엘머와 샤론의 러브스토리로 적절하게 치환시키는 기지를 발휘한다.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고, 그것은 브룩스 본인뿐만 아니라 당시 그의 부인이었던 진 시몬스에게도 좋은 영화 경력으로 남았다.

  이 영화로 버트 랭커스터는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진 시몬스도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어디까지나 랭커스터의 연기를 잘 받쳐주는 데에 그쳤다. 의외로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 조연 셜리 존스가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을 차지했다. 엘머의 과거 연인이었다 매춘부가 된 룰루를 연기한 셜리 존스는 강렬하고 도발적인 모습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엘머 갠트리'에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함께 종교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묵직한 물음이 담겨있다. 그 질문은 오늘날의 관객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진 출처: silverscreening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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