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라(Lola)'는 필리핀의 공용어인 타갈로그어로 '할머니'란 뜻이다. 브리얀테 멘도자 감독의 2009년작 'Lola'에는 두 명의 할머니가 나온다. 롤라 세파의 손자는 휴대폰을 노린 노상강도에게 죽임을 당했다. 롤라 푸링의 손자는 그 살인범이다. 영화는 롤라 세파의 가슴아픈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향과 초를 사들고 손주가 죽은 장소를 찾은 할머니는 비바람 속에서 초에 불을 붙이는 데에 애를 먹는다. 애도의 순간도 잠시, 할머니는 손주의 장례식 준비를 해야한다. 장례업자를 찾아가 관을 맞추는데 돈이 없어서 제일 싼 것으로 계약한다. 손주가 가입한 생명보험회사에서 나온 돈은 너무 적어서 별 도움도 안된다. 롤라 세파는 그렇지 않아도 가난한 살림에 빚까지 내서 손주 장례를 치러야 할 판이다. 경찰에 사건을 신고하러 갔더니 벌써 용의자가 잡혔다고 한다. 경찰서에는 살인범 손자의 끼니가 걱정되어서 밥을 챙겨서 온 롤라 푸링이 있다.

  브리얀테 멘도자는 두 할머니가 사는 도시 마닐라의 그늘진 곳을 보여준다. 롤라 세파가 사는 수로변에 위치한 수상 가옥은 낮은 천장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집안을 다녀야 하는 빈민층의 주거지다. 롤라 푸링은 손주와 노점상으로 먹고 사는데, 집에 누워있는 병든 아들 수발까지 하고 있다. 겨우 잠만 자고 밥만 먹는 공간으로서의 집은 마치 닭장 같다. 변변한 집안 살림살이는 죄다 전당포에 맡기고 남아있는 것은 손자가 좋아하는 TV 뿐이다. 그런데 살인을 저지른 큰손주의 석방을 위해 합의금까지 마련해야하니, 롤라 푸링의 머릿속은 온통 돈 생각 뿐이다. 돈에 찌들리기는 롤라 세파도 마찬가지. 장례식에 돈을 다 써버려서 빚까지 졌다. 같이 살고 있는 딸은 합의금을 받고 고소를 취하하자고 롤라 세파를 설득한다. 죽은 손자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지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필리핀의 사법제도는 상당히 특이하다. 살인 사건이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와 달리 자동적으로 기소가 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고소인의 고발이 있어야 하고, 그것은 지방 검사의 기소 여부에 따라 재판으로 넘겨진다. 필리핀은 오랜 스페인 식민 지배와 미 군정을 거치면서 독특한 사법 체계를 발전시켜왔다(이 부분에 대해서 궁금한 이가 있다면 '동남아시아 국가의 형사법 연구(Ⅰ)(강석구 저, 2011)'의 필리핀 형법을 살펴보길 바란다). 롤라 푸링이 롤라 세파와 합의를 해서 고소를 취하하게 할 수만 있다면, 푸링의 손자는 석방된다. 그러니까 살인죄를 저질러도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고 풀려날 수 있다. 그래서 롤라 푸링은 돈을 모으려고 갖은 애를 쓴다. 손님의 거스름돈을 속여서 건네는가 하면, 시골사는 딸에게서 받은 오리알과 채소까지 팔아 푼돈이라도 그러모은다. 나중에는 사채업자에게까지 돈을 빌린다. 그렇게 모든 5만 페소를 합의금으로 건네고 손주는 풀려난다. 5만 페소를 한화로 환산해 보니 100만원이 좀 넘는 돈이다.

  'Lola'에는 우기의 마닐라 풍경이 담겨있다. 비바람이 부는 칙칙하고 습한 날씨는 가난한 이들의 내면 풍경 같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삶. 정의 구현 따위는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다. 롤라 세파는 검사에게 살인범의 목을 매달아 달라며 고발의 뜻을 밝혔지만, 마지막에 합의금을 주고 받는 자리에서 두 할머니는 자신들의 병고와 죽은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게 된다. 롤라 세파에게는 거둬야할 자손들이 있다. 가난한 이들에게 생존은 정의 보다 앞자리에 위치한다.

  브리얀테 멘도자는 시종일관 핸드 헬드로 찍은 화면 속에 가난한 이들의 일상을 마치 다큐처럼 보여준다. 영상 미학 따위는 저 멀리 던져버린 것 같은 촬영, 거기에다 온갖 소음이 섞여들어간 사운드는 관객들에게 꽤나 인내심을 요구한다. 언제부터인가 핸드 헬드는 저예산의, 마구잡이식으로 영화찍는 이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인상을 받는다. 시네마 베리떼(Cinema verite)와 다이렉트 시네마(Direct cinema)의 끔찍한 혼종을 보는 것 같다. 이것이 브리얀테 멘도자의 스타일인 듯하다. 2009년에 그에게 깐느 감독상을 안겨준 말많은 피칠갑 영화 'Kinatay'도 그렇게 찍은 모양이다(나는 도저히 볼 엄두가 나질 않는다). 어쨌든 'Lola'는 센 주제의 이야기만 찍는 이 감독의 영화 가운데 '순한맛'쯤 되는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만듦새는 상당히 떨어진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서사에는 힘이 있다. 필리핀의 가난한 이들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점과 더불어 미디어와 필리핀의 빈부 격차에 대한 감독 나름의 성찰도 돋보인다. 롤라 푸링의 손자는 집에서 TV만 보는데, 그 TV속의 화면에는 하층민들의 삶과는 전혀 동떨어진 멋진 쇼와 정치 뉴스가 흘러나온다. 가난한 이들의 삶은 비웃음의 대상으로서 존재한다. 롤라 푸링이 시골의 딸에게 가는 기차 안에서 창밖으로 촬영을 하는 젊은 남자 둘은 기차 밖의 빈민가의 삶을 어떻게 하면 더 너절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를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인상적이다. 고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마무리짓고 나오는 두 할머니의 가족들은 법원 정문에서 멈춰선다. 고위 관료의 행차로 도로가 통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계속 이어지는 검은색 관용차의 행렬이 끝난 다음에 두 롤라는 각자의 길을 간다. 빈자들의 삶과 명확히 경계선이 그어진, 권력을 가진 지배계급의 존재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그렇게 영화 'Lola'는 두 할머니의 예기치 않은 만남과 헤어짐 속에 가난한 이들의 처절한 삶의 속내를 살펴보게 만든다. 영화 속의 두 롤라, 필리핀의 원로 배우 아니타 린다와 러스티카 카르피오의 놀라운 연기가 영화의 사실성을 더한다.



*사진 출처: cineuro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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