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일본은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면서 화족(華族)제도를 폐지한다. 메이지 시대부터 이어진 귀족 제도의 폐지는 전후 일본의 새로운 체제 정비의 차원에서도 당연한 일이었다. 요시무라 코사부로 감독의 '안조가의 무도회(安城家の舞踏會, The Ball at the Anjo House)'는 바로 그 해, 화족 제도가 폐지된 1947년에 개봉되었다. 영화는 귀족의 지위에서 평민으로 살아야하는 안조 가문의 시련을 담아냈다. 시나리오는 신도 카네토가 맡았는데, 그는 안톤 체홉의 희곡 '벚꽃 동산'을 참조해서 각본을 완성했다. '벚꽃 동산'은 제정 러시아 말기 몰락하는 귀족 가문을 그려낸 작품이다.

  안조가의 대저택은 빚으로 넘어가기 직전이다. 사업가 신카와는 안조 저택의 새주인이 되려는 참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 안조 가문의 막내딸 아츠코(하라 세츠코 분)은 이제는 운수업체 사장이 된 전직 운전기사 토야마에게 저택을 넘기려고 한다. 토야마는 아츠코의 큰언니 아키코를 오랫동안 연모해 왔다. 그러나 아키코는 토야마를 천한 신분이라며 멸시하고, 토야마는 그런 아키코에게 실망한다. 아키코의 오빠 마사히코는 탕자로 집안의 몰락을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안조가의 마지막 무도회가 열리는 날, 신카와는 딸 요코와 마사히코의 약혼을 파기하며 안조 저택을 삼키려는 야욕을 드러낸다. 과연 안조 가문의 사람들은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 것인가...

  안조가의 저택을 장식하고 있는 것들은 모두 시대착오적인 장식품들이다. 파리 유학 시절 미술을 배운 안조 백작의 방은 온통 서양화로 가득차 있다. 아들 마사히코의 방에는 고야의 '옷을 벗은 마야' 그림이 걸려있다. 대부분 서양풍인 장식물들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물건이 하나 있다. 사무라이의 갑옷이 그것이다. 토야마는 아츠코의 설득으로 저택을 사들이고 새로운 주인이 되지만 자신이 멸시받는 것을 잘 안다. 술에 취해 무도회장을 빠져나가는 그가 갑옷 장식품을 쓰러뜨린다. 이 장면이 상징하는 것은 너무나 명백해서 다른 설명이 필요없다. 귀족 집안의 운전기사였던 그는 오직 자신의 힘으로 부를 축적했다. 몰락해가는 귀족을 대체하는 새로운 신분으로 등장한 신흥 사업가가 안조가의 주인이 되는 것은 타당해 보인다.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안조 백작이다. 그는 자신의 하인이 안조 저택의 새주인이 되는 것도, 귀족이 아닌 평민으로 살아나가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래서 그가 택하려는 방식은 '죽음'이다. 그는 마치 주군에 충성을 맹세하기 위해 할복하는 사무라이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한다. 칼 대신에 총으로 죽으려는 그를 막내딸 아츠코가 막는다. 아츠코는 새로운 시대에 희망을 갖고 살자며 아버지를 설득한다. 하라 세츠코는 안조가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현명한 사람인 아츠코를 연기한다. 세츠코가 영화의 마지막에 발코니에서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보여주는 환상적인 미소는 새로운 시대의 희망을 상징한다. 그 장면은 전후 일본의 패배감을 위로하는 메시지처럼 보인다.

  '안조가의 무도회'를 만든 요시무라 코사부로 감독은 전쟁 시기, 일본의 국책 선전 영화를 꽤나 열심히 찍었던 감독이다. 단순히 의무감으로 찍은 것이 아니라, 전쟁에 찬동하는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담은 영화들을 찍었다. 종전 후, 그도 생존을 위해 변해야만 했다. '안조가의 무도회'는 그런 그에게 변화의 발판이 되어준 영화이다. 그는 이후 1950년대에 주로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을 찍으며 호평을 받는다. '안조가의 무도회'는 몰락한 귀족의 생존기에 대한 영화임에도 어떤 면에서는 요시무라 코사부로 감독 자신의 이야기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새로운 시대에 변화를 받아들이며 발빠르게 적응했던 그는 감독으로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하라 세츠코가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보여준 미소에는 기이한 낙관주의가 엿보인다. 아츠코는 죽으려는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거실 정면에 걸려있는 할아버지의 초상화를 언급한다. 서양식 군복을 입고 온갖 훈장으로 장식한 초대 백작 할아버지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한다. 안조가는 생존을 위해 자수성가한 하인의 돈에 기대야 했지만, 그들의 정체성은 과거의 황실과 제국에 있음을 보여준다. 안조가는 과거와 결별한 것이 아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종전 후, 일본의 내셔널리즘이 수면아래에 가라앉았다가 1950년대의 냉전 시기를 거치며 서서히 다시 부상하게 됨을 암시하는 장면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패전국의 국민으로서의 열패감은 미 군정에 대한 반발심으로 이어졌다. 일본의 전후의 현실 인식은 '책임'보다는 '자존감 회복'에 있었다. 전쟁에서 패배한 후 어떻게든 생존해 나가야 한다는 절박감, 일본은 비참한 현실을 이겨내려고 절치부심하고 있었다. '안조가의 무도회'가 보여주는 것은 당시 일본인들의 내면 풍경인 셈이다.

  '안조가의 무도회'는 그런 면에서 결코 편하게 볼 수 있는 가족 드라마는 아니다. 안조가는 비록 자신들의 저택을 신흥 자본가에게 넘겼지만, 그들의 정신과 정체성까지 포기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전후 일본의 역사적 여정과 맞닿아 있다. 일본의 내셔널리즘의 재부상, 우익들의 세력 확장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아츠코로 분한 하라 세츠코가 영화 속에서 보여준 마지막의 그 환한 미소에는 어쩌면 그 서늘한 미래가 담겨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amebl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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