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decaphobia. 왜 이 단어의 뜻을 다큐의 제목으로 썼을까? 'The Fear of 13(2015)'은 사형 선고를 받고 22년 동안 복역하다 무죄가 입증되어 풀려난 닉 야리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그는 수감 기간 동안 우연히 접하게 된 책들로 인해 진정한 내적 계몽에 이르게 된다. 처음에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던 수많은 단어들을 독방에서 수십 번씩 이미지를 상상해가며 깨우쳐 간다. 'tridecaphobia' 같은 단어도 그랬다. 겨우 초등학생 수준의 문해력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1000권이 넘는 온갖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자아의 눈을 뜬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책에서 획득한 지식과 스토리텔러의 재능을 다큐 내내 입증해 보인다. 그는 명료한 발음과 적절한 단어 선택으로 다큐의 내레이션을 전적으로 지배한다. 그 뿐만 아니라 실감나는 묘사를 위해서 표정, 의성어, 손짓과 몸짓을 사용하는 재능까지 보여준다. 원맨쇼가 따로 없다.

  남자는 자신이 어떻게 사형 선고를 받고 감옥에 오게 되었는지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불우한 어린 시절, 마약과 비행으로 얼룩졌던 청소년 시절, 객기와 불운의 온갖 총합처럼 보이는 억울한 누명에 이르기까지 관객은 닉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다큐의 구성은 단순하다. 닉이 들려주는 과거가 재연된 화면으로 이어지는 식이다. 보다보면 그런 구성에 지루함마저 느끼는데, 그 지점에서 이 다큐의 감독 데이비드 싱턴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다큐에서 감독이 한 역할은 닉에게 판 깔아주며 발언의 기회를 전적으로 넘긴 것과, 그저 그런 재연 화면 구성한 것 밖에 없다. 'The Fear of 13'은 그런 면에서 다큐 감독의 작가적 관점에 대한 유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싱턴은 그만큼 닉 야리스를 신뢰한 것일까? 물론 닉 야리스가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 강간죄로 22년 동안 복역했고, 무죄로 풀려났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야리스 본인이 들려주는 인생의 고백은 모두 진실일까? 닉 야리스의 과거 사건에 대한 회상과 고백에 한치의 거짓도 들어가지 않았음을 입증할 방법은 없다. 무엇보다 데이비드 싱턴은 감독으로서 그에 대한 책임을 내던져 버렸다.

  이런 데이비드 싱턴과 대비되는 지점의 다큐 감독이 있다면 에롤 모리스일 것이다. '가늘고 푸른 선(The Thin Blue Line, 1988)'에서 에롤 모리스는 살인의 누명을 썼다고 주장하는 랜달 아담스의 이야기를 파고 들어간다. 그는 사건의 기록을 검토하고, 직접 관련 인물들을 인터뷰 했다. 에롤 모리스는 그 과정을 통해서 랜달 아담스에게 씌워진 살인 혐의는 잘못된 것임을 입증해 보인다. 이 놀라운 다큐는 랜달 아담스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다. 그는 누명을 벗고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 랜달 아담스가 무죄일 것이라는 가정을 에롤 모리스는 치밀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사실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그런데 'The Fear of 13'의 데이비드 싱턴은 닉 야리스의 발화에 처음부터 진실의 권위를 부여한다. 매우 무능하며 게으른 태도이다. 이 다큐에서 관객이 목격하는 것은 20세기 감옥의 음유시인이 들려주는 '사형수의 오딧세이아'이다. 이 음유시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진다. 그의 유창한 말솜씨는 관객의 이성적 사고와 합리성에 도전장을 던진다.

  수감 기간 중에 알게 되어서 옥중 결혼에 이르게 된 아내에 대해 닉 야리스는 온갖 미사여구를 쏟아낸다. 실제는 어땠을까? 그는 4번째 결혼한 여자와 살고 있다. 그는 방송에도 출연해서 나름 유명인사가 되었고 책도 여러 권 썼다. 주 검찰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서 3백만 달러의 보상금도 받아냈다. 이 다큐가 유명해졌다는 데에 자신의 지분을 주장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던 모양이다. 감독이 출연료를 주기로 했는데 주지 않았다는 말을 꺼냈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에롤 모리스가 겪은 기막힌 불운(랜달 아담스는 다큐 수익금을 내놓으라며 소송을 걸었다)이 데이비드 싱턴을 찾아가지는 않았다.

  사형수가 무죄가 입증되어 풀려나는 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The Fear of 13'은 감동보다는 쓰고 기이한 뒷맛을 남긴다. 아주 잘 연출된 한 편의 연극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큐는 그가 들려주는 놀라운 인생사로 가득차 있지만, 거기에는 관객들은 결코 알 수 없는 진실의 영역이 있다. 나는 새삼 미드 닥터 하우스의 명언을 떠올렸다. 'Everybody lies'. 우리는 다큐가 진실을 들려준다고 믿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분적인 것에 지나지 않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The Fear of 13'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그러하다. 닉 야리스는 다큐에서 그런 말을 한다.

  "나는 수많은 책 속의 이야기를 읽었어요.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인생 이야기죠."

  이 다큐의 관객들은 이야기꾼으로서의 그의 대단한 능력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가 들려주는 사형수의 오딧세이아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것은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사진 출처: 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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