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궁금한 건 말이죠, 출판이 될지 확신도 없는 글을 왜 그렇게 쓰는 거에요?"

  25살의 대학원생은 생의 마지막 소설을 쓰느라 사투를 벌이고 있는 노작가에게 당돌하게 묻는다. 한때는 주목받았으나, 이제는 대중들과 평단의 뇌리에서 잊혀진 작가 레너드(프랭크 랜젤라 분)는 10년 넘게 자신의 소설과 씨름하고 있다. 자신의 소설로 박사논문을 쓰겠다며 찾아온 젊고 매력적인 헤더(로렌 앰브로즈 분)는 레너드의 마음을 점점 흔들어 놓는다. 헤더는 전직 교수였던 레너드를 처음에는 '교수님'이라고 부르다가, 나중에는 '레너드'로 부르게 된다.


  앤드류 와그너 감독의 2007년작 'Starting Out in the Evening'은 브라이언 모튼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영화는 일견 늙은 작가와 젊은 여성의 어울리지 않는 로맨스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레너드와 헤더의 관계는 단순한 연애 감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물론 레너드는 헤더의 젊음과 과단성에 매혹된다. 그 두 사람 사이에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감이 명백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레너드는 매우 진중하고 신사적인 인물로 헤더의 접근을 거부하고 둘 사이의 거리를 지키려 애를 쓴다.


  그런 레너드에게 과감히 돌진하는 헤더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헤더가 직업적 성공을 위한 징검다리로만 레너드에게 접근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헤더에게는 야망이 있다. 자신의 논문으로 비평계의 주목을 받겠다는 야망. 그런 헤더에게 레너드의 글들은 문학을 전공하게 만든, 인생의 변화를 만든 소중한 작품이었다. 처음 레너드의 집에 방문한 날, 헤더는 레너드의 서재에서 젊은 시절 레너드의 사진 한장을 몰래 빼온다. 자신이 존경하는 우상에 대한 맹목적인 열망이 헤더의 마음 속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남자와 여자, 작가와 열성팬, 권위자와 입문자, 이런 다양한 속성들이 뒤섞인 두 사람의 관계는 헤더의 논문이 완성되어감에 따라 끝이 보이는 여정에 접어든다. 그러는 와중에 레너드의 심장 발작은 관계의 종말을 앞당긴다. 어렵게 회복된 레너드는 전보다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인데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는 도대체 왜 글쓰기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레너드가 소설을 완성한다고 해도 이미 존재감을 잃어버린 작가가 된 레너드의 소설은 출판될 가능성도 없다. 그럼에도 그는 홀로, 늦은 밤까지, 타자기 앞에서 시간을 보낸다.

  창작이란 결국은 생산성의 문제다. 이 세상에 영속적인 무언가를 남기려고 하는 열망.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위해 택하는 방식은 결혼으로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이다. 그러나 예술가에게 그 생산성의 열망은 예술 작품으로 귀결된다. 자손을 남기는 것은 예술가에게 자신의 예술 작품 보다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레너드에게도 딸 에리얼이 있지만, 그 딸이 레너드의 영속성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에리얼은 아이 갖기를 거부하는 애인들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동안 어느새 마흔 문턱에 이르렀다. 레너드는 에리얼에게 아이를 원하는 다른 남자를 만나라고 말하지만 에리얼은 아버지의 조언을 듣지 않는다. 10년 넘게 매달리고 있는 소설, 아이를 갖지 못하는 딸, 레너드가 이 세상에 남긴 것은 모두 불임의 상태이다. 어쩌면 그가 그토록 마지막 소설에 매달리는 것은 영속성에 대한 열망인지도 모른다.  

  다시 처음의 헤더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레너드는 헤더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그건 예술의 광기(madness of art) 같은 거겠지."

  퇴원 후 회복기의 성치 않은 몸으로도 글을 쓴다는 이야기를 듣고, 병문안을 온 헤더는 레너드에게 칭찬과 경외의 말을 쏟아낸다. 레너드는 그런 헤더의 뺨을 때린다. 이 장면은 얼핏 보면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레너드는 헤더의 같잖은 아첨을 보며, 둘 사이의 관계가 거래였음을 깨닫는다. 헤더는 논문을 얻었고, 레너드는 젊음의 기운을 잠시 느꼈을 뿐이다. 젊은 여자와의 관계가 자신의 영속성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님을 레너드는 뼛속 깊이 자각한다. 결국 그는 자신의 글쓰기로 돌아온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그는 밤의 서재에서 턱을 괴고 타자기 앞에 앉아있다. 늘 그래왔듯, 자신의 글쓰기를 그렇게 이어가려는 것이다. 매일 밤에 새롭게 시작하는(starting out in the evening) 글쓰기의 일상, 그것이 작가의 숙명이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소설이 출판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저 쓸 따름이다. 고요한, 그러나 열정적인 내면의 광기에 따르는 삶. 그것이 예술가의 숙명이다. 'Starting Out in the Evening'은 그러한 예술가의 고독한 숙명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사진 출처: 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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