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멜리사 레오 분)에게는 꿈이 있다. 지금 살고 있는 거지같은 트레일러 집에서 벗어나 크고 멋진 새 트레일러 집을 장만하는 것. 어느 날 아침, 레이가 어렵게 모은 목돈을 들고 도박 중독자 남편은 집을 나가 버린다. 동네 천냥마트에서 파트 타이머로 일하며 아들 둘을 키우는 레이에게는 새 집이고 뭐고 당장 하루벌이가 급하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된 원주민 릴라(미스티 업햄 분)가 밀입국자를 캐나다 국경 근방에서 데려오는 일에 동참하게 된다. 명백한 범죄행위이지만 한번에 1200달러를 받는 일에 대한 유혹은 레이를 혹한의 얼음강으로 내몬다. 차 트렁크에 밀입국자 2명을 싣고 얼음강을 가로질러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돌아오는 여정이 결코 쉬울 리가 없다. 릴라가 국경 수비대의 요주의 인물로 찍혀서 릴라도 일을 그만두려는데, 레이는 마지막 한탕을 제안한다. 그러나 악덕 중개업자의 농간으로 일은 틀어지고, 국경 수비대의 추격을 받는다. 레이와 릴라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코트니 헌트 감독의 2008년작 '프로즌 리버(Frozen River)'는 삶의 어려움과 맞닥뜨리게 된 두 여성간의 연대를 그려낸다. 레이와 릴라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들은 '엄마'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레이 얼굴의 주글주글거리고 깊게 패인 주름은 지난한 삶의 여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도박 중독자인 남편과의 지긋지긋한 전쟁과도 같은 삶. 레이는 먹을 것 살 돈마저 도박에 가서 탕진한 남편을 향해 총까지 쏜 적이 있다. 릴라의 남편은 강물에 빠져 죽었는데 시체도 찾지 못했다. 하나뿐인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시어머니가 빼앗아서 키우고 있다. 릴라의 꿈은 아이를 데려올 돈을 모으는 것이다. 그렇게 돈에 절박한 두 엄마는 동업자가 된다.


  두 명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모성성'과 '연대'의 이야기를 그려낸 '프로즌 리버'는 나름대로 괜찮은 영화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서사는 빈약한 뼈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을 메꾸는 것은 레이와 릴라를 연기한 두 배우의 열연이다. 멜리사 레오는 자식을 위해 목숨을 걸고 얼음강으로 나서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 강인함을 보여준다. 원주민 출신의 배우 미스티 업햄은 아이를 빼앗긴 엄마의 슬픔과 어떻게든 혼자서 삶과 직면하려는 용기있는 모습을 잘 표현했다. 두 여성이 처음의 적대적 만남에서부터 동업자,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은 영화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룬다.

  코트니 헌트 감독은 모호크족 원주민들이 캐나다 국경을 오가며 담배 밀수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편 영화로 구상했던 것이 살을 붙여가며 장편 영화 제작에 이르렀다. 문제는 영화 제작비를 어떻게 조달하는가였다. 헌트는 투자자들을 설득하려고 영화의 시나리오를 긴장감있게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어떻게든 관객을 영화가 끝날때까지 붙잡아두는가에 촛점을 맞춘 것이다(출처 2008년 huffpost.com과의 인터뷰). 밀입국 과정의 몇몇 장면, 수비대의 검문 검색이라던가 파키스탄 밀입국자 부부와 아기의 사연 같은 장면이 그래서 덧붙여졌을 것이다. 백만 달러라는 초저예산의 독립 영화는 그렇게 만들어졌고,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비롯해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덕분에 6백만 달러라는 흥행 수익도 낼 수 있었다.

  영화의 현실 후일담은 이렇다. 첫 영화의 성공이 오히려 독이 되었던 것일까? 코트니 헌트는 2016년에 'The Whole Truth'를 찍었으나, 말그대로 쫄딱 망한 영화가 되고 말았다. 무려 키아누 리브스와 르네 젤위거를 내세운 영화였다. 내 생각에 헌트가 감독으로서의 경력을 더 이어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레이 역의 멜리사 레오는 TV와 독립 영화를 비롯해 워낙 다작에 출연하는 배우로 자신의 경력을 충실히 쌓아가고 있다. 그리고 미스티 업햄이 남았다.


  이 영화로 촉망받는 배우가 된 업햄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을 이어갔지만, 서른 둘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다. '프로즌 리버'를 찍은지 6년이란 시간이 흐른 후였다. 원주민 보호 구역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업햄의 사인은 부검으로도 밝혀지지 못했다. 하비 와인스틴 프로덕션 소속 직원들에게 성적 괴롭힘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나중에 흘러나왔다. 신인 여배우가 영화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치뤄야할 댓가 치고는 너무나 잔혹한 결말이었다. 그 누구도 삼키지 않았던 영화 속의 얼음강과는 달리 업햄은 인생의 얼음강에 빠지는 불운을 겪었다. '프로즌 리버'에서 릴라를 연기했던 미스티 업햄은 그 강에서 다시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아마도 나는 이 영화를 비극으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사진 출처: nziff.co.nz  릴라 역의 미스티 업햄과 레이 역의 멜리사 레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