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알랭 드 보통.존 암스트롱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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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렝 드 보통은 꽤나 잘 나가는 작가인 모양이다. 이 사람 책이 많이 번역된 것은 잘 팔린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난 그가 쓴 책을 읽고 나서 좋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깊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가볍고 현학적인 문체로 포장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의 기술'의 그 경박스러움과 너절함,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자의식 과잉에 그냥 질려버렸다. 아, 이 사람 책은 그냥 걸러야겠네, 라고 생각한 것이 오래전이다. 이 사람의 가장 큰 문제는 소설도 잘 쓰지 못하면서, 오만가지 잡학 지식을 가지고 철학자 노릇까지 하려든다는 점이다. 이 책은 그가 미술사학을 전공한 이와 토론하고 쓴 미술사 책이다. 당연히 무슨 대단한 전문적 지식은 찾아볼 수 없다.

  겉만 번지르르한 수사와 깊이있게 보이려는 온갖 철학적 문구들을 갖다 붙였지만 그 얄팍스러움이 어디 갈까? 미술사학 전공자만이 미술 책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 평론 쓰는 사람들이 죄다 영화 전공한 것이 아닌 것처럼. 적어도 해당 분야에 대해 글을 쓰고 책을 내려면 좀 공부라도 제대로 하고, 자기 성찰이나 잘 한 다음에 쓰던가. 이 책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점은 알렝 드 보통이 자기가 미술사에 정통한 것처럼 군다는 사실이다. 뭐 얼마나 미술사 책을 들여다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현학적이고 장황하게 늘어지는 문장들 속에서 뭔가 건질만한 지식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다지 좋지 않은 투박한 번역도 가독성을 떨어뜨린다. 화려한 빈 껍데기. 이 책을 덮고나서 나에게 떠오른 이미지는 그랬다.

  이 책에서 그나마 건질만한 것은 괜찮은 도판들 보는 재미 정도나 될까? 책의 초반부에 나온 어떤 그림이 무척 반가웠다. '사이 톰블리(Cy Twombly)'의 그림으로, 화가 이름을 안보고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여기에서 반갑다는 것은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라, 과거의 추억을 되새겨주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벌써 20년도 훨씬 더 전의 일인데, 사이 톰블리의 그림 몇 점이 어느 갤러리에서 전시된 적이 있었다. 그걸 찾아가서 보았을 때의 그 당혹스러움과 난감함이란... '나는 누구, 여긴 어디'를 느끼게 만들었다고나 할까. 커다란 캔버스에 아무리 봐도 애들 낙서 같은 작은 글씨와 알 수 없는 문양들이 군데 군데 흩어져 있는 그림들이었다. 그런데 그가 현대 회화의 거장이란다. 내가 이해하기 힘든 현대 미술의 그 도저함에 발걸음을 돌리며 갤러리를 나왔던 기억이 난다. 사이 톰블리가 그렇게 뜬 데에는 잘 나가는 화상(畫商) 레오 카스텔리, 톰블리의 후예들인 바스키아와 낙서 미술가들이 한 몫을 했겠지만.

  책에 나온 현대 회화 도판들, 사진들, 설치 미술 작품들을 보다 보면 지금의 예술계가 돈과 상업성에 얼마나 깊숙히 발을 담그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떤 개념을 선점하고 그것을 얼마나 잘 포장하느냐가 잘 나가는 미술 작가가 되는 지름길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도무지 깊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책처럼, 예술이 지나치게 자본과 결탁하고 거기에 자신의 영혼을 팔아버릴 때, 어느 정도까지 추락할 수 있는가를 찬찬히 생각하게 된다. 그런 저런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만이 이 책의 유일한 장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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