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엔 당신이 일 그만두고 아버지를 모셨으면 좋겠어."

  남자는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 간호를 위해 아내가 직장을 그만 두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 말에 순순히 '그래요, 여보'라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손씨 부인(소방방 분)은 어림없는 소리라며 남편의 요구를 일축한다. 손 부인은 마흔 살 생일이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아 시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뜨고, 그 혼란스런 와중에 시아버지는 치매 진단을 받는다. 남편은 아버지 문제라면 손을 내젓는 자신의 동생들에게는 별 말을 하지도 못하면서, 아내에게 그 일을 미루고 싶어한다. 화장지 회사에서 잔뼈 굵은 실무자로, 집에서는 남편과 대학생 아들 뒤치다꺼리, 이제는 치매 시아버지 수발까지 해야한다. 손 부인은 그 일들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홍콩 출신의 허안화 감독의 1995년작 '여인 사십(女人四十, Summer Snow)'은 갑작스럽게 주어진 커다란 삶의 과제와 씨름하는 중년 여성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오늘날에도 나이든 부모의 병수발이 자식들에게 어려운 문제라는 점은 26년전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요새는 대부분 요양원과 요양 병원을 1차적인 선택지로 생각하고, 비용 분담이 자식들 사이의 갈등 요소가 되는 정도가 차이라고나 할까. 물론 '여인 사십'의 손 부인에게도 그 선택지가 있었고, 치매 증상이 심해진 시아버지를 어쩔 수 없이 시설에 맡긴다. 영화는 그 선택을 하기까지 손 부인이 겪는 일상의 힘듦을 마치 세밀화처럼 보여준다. 아무 데나 소변을 보고, 한밤중에 고래고래 지르는 시아버지를 어르고 달래는 일은 손 부인만이 할 수 있다. 남편도 아들도 별 도움이 안된다. 시아버지 수발도 힘든데, 직장에서는 컴퓨터를 잘 다루는 신입 여직원에게 밀려서 찬밥 신세가 되어가는 중이다. 어쩔 수 없이 주간 보호 센터에 시아버지를 보냈는데, 맘대로 밖으로 나가 길을 잃어버리는 일을 겪는다. 결국 요양 병원에서 지내게 된 시아버지는 며느리에게 집에 가고 싶다며 울먹인다.

  손 부인은 직장을 때려친다. 그 선택은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것이 아니다. 함께 늙어가고 고통받는 한 인간으로서의 시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이 해야할 중요한 의무라고 자각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영어 제목 'Summer Snow'는 시아버지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꽃비를 시아버지가 눈이 내린다고 좋아한 장면에서 따온 것이다(히로스에 료코가 주연한 같은 제목의 일본 드라마가 하도 유명해서 이 제목으로는 영화 검색이 잘 안된다). 가족이 모두 모여서 주말 농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시아버지가 손 부인을 불러서 조용히 말한다.

  "인생이란 건 말이다, 기쁨으로 가득차 있는 거란다."

  그 부분의 영어 자막이 아마 'Life is full of joy'였을 것이다. 그 말을 하려고 감독 허안화는 손 부인의 고단한 사십을 그려냈단 말인가? 갑자기 말문이 턱하고 막히는 느낌이었다. '여인 사십'은 분명 가부장제 질서에 여성을 순응시키거나,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여성이 치루어야 하는 일방적인 희생을 옹호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손씨 부인이 내리는 결정의 배경에 자신의 소망과 욕구 대신 '가족'과 '화합'이라는 전통적 가치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애써서 감추는 느낌을 준다. 맡은 일은 최선을 다해내는 책임감 있는 직장 여성, 좋은 아내와 엄마, 시아버지 병수발을 기꺼이 떠맡는 며느리, 이 모든 역할을 손 부인은 해낸다. 슈퍼우먼이 따로 없다. 손 부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슬리퍼는 여자가 신겨주어야 한다고 믿는 제왕적이고 독선적인 시아버지를 가장 잘 알고 챙겼던 시어머니, 치매 걸린 성질 고약한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한 여사,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묵묵히 성실하게 감당한다. 그렇다고 해서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위암에 걸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 한 여사는 남편에게 그렇게 말한다.

  "저 세상에서 만나면 난 당신 아내 노릇 안해요. 남편 역을 내가 할게요."

  섬김과 보살핌의 대상으로서의 '남성'. 이 전통적 가치관은 손 부인의 윗세대가 충실히 따른 것이다. 손 부인은 현대 여성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정신적으로는 가부장제의 영향력 하에 놓인 인물이다. 그러므로 손 부인에게 사십 인생의 위기 상황에서 무엇이 최선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가족의 안정'이다. 직장을 그만 둠으로써 남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인생 살이에 미숙한 아들에게는 조언자로, 시아버지에게는 좋은 간병인이 되고자 한다. 이 선택은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고 불편해 보인다. 그럼에도 손 부인의 결정은 시아버지의 유언과도 같은 마지막 말에 의해 보상받는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이야말로 기쁨 그 자체라는 말로 들린다.

  이 영화를 2021년에 다시 만든다면 손 부인은 어떤 선택을 할까? 동일한 선택을 한다면 이 영화를 보던 여성 관객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릴지도 모르겠다. 지금 시대의 손씨 부인은 자신의 직장을 그만 둘 일도 없으며, 치매 병증이 심한 시아버지는 가족과 상의하여 선택한 요양원에 보내며, 비용은 형제들 간에 공정히 분담하도록 할 것이다. 오래전 영화를 보는 일은 이렇게 시대와 가치관의 간극을 느끼게 만든다. '여인 사십'의 손씨 부인은 스스로 고달파짐으로써 가족의 문제를 떠안는 '해결사'의 면모를 보였지만, 2021년을 살아가는 어떤 손씨 부인에게는 삶의 '균형'과 책임의 '분담'이 중요한 가치이다. 허안화의 '여인 사십'은 그런 면에서 본다면, 가족주의로 그럴듯하게 포장된 구시대적이며 진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사진 출처: hkm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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