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르파 푸르바(Phurba)는 이제 22번째 에베레스트 등정을 앞두고 있다. 2014년 4월, 그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는 에베레스트 최다 등정 기록을 세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스러운 산, 에베레스트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제니퍼 피돔의 2015년 다큐 'Sherpa'는 2014년에 있었던 쿰부 아이스폴(Khumbu Icafall) 사고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다. 이 작품은 2017년작 'Mountain'으로 산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보여주었던 피돔의 전작이다.


  푸르바와 오랫동안 사업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는 러셀 브라이스. 그는 1994년부터 에베레스트 등정을 원하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등반 에이전시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회사는 비슷한 일을 하는 38개의 에이전시 가운데 하나이다. 이제 전문 산악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4000명이 넘는 일반인들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돈만 지불한다면 그 꿈을 이루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대략 10만 달러의 비용이 소요된다. 그 돈 가운데 셰르파에게 지불되는 돈은 5천 달러, 보통의 네팔인들 연봉 10배에 해당하는 돈이다.


  다큐의 도입부는 2014년 4월, 셰르파 선발대가 베이스 캠프 구축을 위해 길을 떠나는 장면이다.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는 악명 높은 쿰부 아이스폴이 자리하고 있다. 아이스폴은 절벽을 흐르는 거대한 얼음강으로 곳곳에 크레바스(crevasse)가 자리하고 있어서, 굉장히 위험한 코스로 꼽힌다.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 선발대의 카메라에 엄청난 눈사태가 찍힌다. 그리고 화면이 끊긴다. 아이스폴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 사고로 16명의 셰르파들이 목숨을 잃었다. 300명에 가까운 셰르파들이 네팔 정부 당국에 사고의 재발 방지와 피해자들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요구하며 '파업'한다. 네팔 정부에게 에베레스트 등반 사업은 매력적이고 거대한 돈벌이이다. 어쩔 수 없이 셰르파들과 대면한 장관은 '계속 일을 하든지 여기서 그만 접든지 알아서 하라'며 떠넘긴다. 일이 이렇게 되자 난감해진 것은 러셀과 그 고객들이다. 러셀은 어떻게든 셰르파들을 설득하려고 하지만, 동료들의 죽음을 본 셰르파들은 요지부동이다.


  이 국면에서 갈등이 표출되는 것은 당연하다. 러셀의 고객 중 한 명은 셰르파들이 테러리스트처럼 자신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러셀은 일을 하고 싶은 셰르파들이 있음에도 동료들의 협박 때문에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푸르바는 그런 협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박지만, 셰르파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피돔은 자세히 보여주지 않는다. 이 모든 사태에서 카메라는 매우 피상적으로 인물들의 대화만을 담아낼 뿐이다. 언뜻 보면 꽤나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제작자로서 감독이 갈등의 본질 속으로 들어가기 보다는 회피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결국 셰르파들의 파업에 러셀의 고객들은 등정을 포기하고 철수한다. 고객들 가운데에는 처음 실패하고 두 번째 도전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이듬해 다시 러셀을 찾았을까? 아마 찾지 않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그 이듬해인 2015년에는 네팔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에베레스트에서도 등반 중에 19명이 사망했다. 이 가운데 10명이 셰르파였다.


  다큐의 엔딩 자막에는 후일담이 나온다. 2014년의 쿰부 아이스폴 사고 이후 네팔 정부가 셰르파들의 요구를 모두 수용했으며, 또한 푸르바도 가족들의 소원대로 위험한 셰르파 일을 그만 두었다고 알려준다. 그런데 사실은 그와는 달랐다. 등반가이며 저술가인 Mark Horrell의 블로그에서 다큐에 가려진 뒷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네팔 정부가 셰르파들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일부 수용했던 요구들은 결국 철회되었다. 또한 푸르바의 근황에도 변화가 있었다. 2015년의 대지진으로 그의 집이 모두 부서졌으며, 삶의 기반을 잃은 그는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다시 셰르파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Sherpa'는 표면적으로는 비극적 사고를 기록한 다큐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으로는 에베레스트를 둘러싼 거대한 사업과 인간의 욕망을 다루고 있다. 다큐에서 그 사업의 상업성을 비판하는 에드 더글라스는 이렇게 되묻는다.


  "도대체 (일반인이) 위험을 감수하고 거기 오른다는 게 의미있어요?"


  그런데 그 말을 하는 더글라스가 인터뷰 내내 입고 있는 다운 재킷의 상표가 내 눈에 들어왔다. 등산복의 세계적 브랜드 N사와 더불어 비싸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R사의 옷이다. 저 사람은 그 회사의 후원을 받는 모양이네... 돈은 얼마가 들어도 괜찮으니 인생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으려는 사람, 그들을 상대로 하는 에이전시, 거기에 고용되어 일하는 셰르파들, 등반객들에게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로 먹고 사는 셰르파 마을, 그리고 에베레스트 입장료로 엄청난 수입을 챙기고 있는 네팔 정부 당국... 네팔 사람들에게 성스러운 산으로 여겨지는 에베레스트는 돈으로 칠갑한 거대한 돈통이 되었으며, 거기에 연관된 이들은 모두가 돈의 부하들처럼 보인다.


  셰르파의 신화가 되었던 텐징 노르가이는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고, 유순하고 온화한 성품으로 서양 등반가들에게 환호를 받았다. 그러나 지금 시대의 셰르파들은 대부분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기초적인 영어 구사능력도 갖추고 있다. 결코 서양 등반객들에게 하인처럼 굴종적인 자세로 일하지 않는다. 2013년에 이탈리아 등반객이 셰르파에게 욕설을 했다가 폭력사태로까지 번지는 일이 있었는데, 러셀은 그것을 젊은 셰르파들의 참지 못하는 성미 탓으로 돌린다. 이처럼 이 다큐는 서로 다른 문화적, 인종적 관점의 차이도 담아낸다. 비록 'Sherpa'의 세계에 깊이있는 접근은 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산 에베레스트를 둘러싼 복마전과 같은 돈의 세계를 관객들은 잠깐이나마 엿볼 수 있다.



*사진 출처: markhorrell.com (사진 가운데 부분이 'Khumbu Icefal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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