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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 부두로 가는 길 ㅣ 부클래식 Boo Classics 43
조지 오웰 지음, 김설자 옮김 / 부북스 / 2013년 6월
평점 :
탄광의 막장에 진짜 내려가본 작가가 있다.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 그는 1936년 1월부터 3월까지 영국 북부의 탄광촌에 머물면서 그곳 광부들의 삶을 취재했다. 그 기록을 바탕으로 쓴 책이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다. 이 책은 실질적인 탄광촌 취재기인 1부와 사회주의에 대한 오웰의 생각을 담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 오웰이 보여주는 피폐하고 비참한 탄광 노동자들의 삶과 열악한 노동 현장은 말그대로 뼈를 가르는 치열한 문장들로 열거되어 있다. 막장에 내려가 보고 나서 그는 이렇게 쓴다.
"나는 육체 노동자가 아니다. 그리고 사정이 허락하면 결코 육체 노동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꼭 그래야 한다면 내가 해낼 수 있는 육체 노동이 있다. 나는 어느 정도 쓸만한 도로 청소부나 비효율적인 정원사나, 형편없는 농장 노동자는 될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낼 수 있는 온갖 노력을 하고 훈련을 받는다 해도 나는 석탄 광부는 될 수 없다. 그 일은 나를 몇 주 안에 죽게 할 것이다."
그토록 엄청난 강도의 일을 매일매일 해내는 탄광 노동자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고된 노동 여건을 견뎌낸다. 오웰은 최하층 노동자들이 그 모든 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질병과 가난에 길들여지는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그는 그들을 돕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자세하고 사실적인 기록을 남겨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글로써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고자 했던 작가의 실천적 신념에서 나온 결과물인 셈이다.
1부가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하층 노동 계급의 삶의 단면이라면, 2부는 오웰이 가진 사회주의에 대한 여러 생각들이 펼쳐진다. 왜 사회주의인가? 그는 그 사상이 가난과 불평등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나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사회주의에 맹목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웰은 '사회주의는 믿지만, 사회주의자는 믿지 않는다'는 약간의 냉소주의와 거리감도 갖고 있었다.
그는 사회주의가 가진 이상이 제대로 실현된다면 최선의 것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실제적으로 이끌어가는 이들의 무모함과 결함이 가져올 수 있는 파국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예측했던 것 같다. 이는 프랑스의 실존주의 문인 샤르트르가 공산주의의 이상에 극도로 매몰된 나머지, 스탈린 집권기의 강제 수용소와 무장 혁명의 폭력성을 옹호한 것과는 대비된다. 1950년부터 1956년 사이에 소련의 편에 섰던 샤르트르는 소련이 1956년에 헝가리의 반소 자유화 운동을 무력 진압하는 것을 보고서야 돌아선다. 공산주의를 맹목적으로 지지했던 그 시기는 샤르트르의 인생에서 오점으로 남았다.
진정한 사회주의의 실현을 위해서 오웰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계급간에 존재하는 편견을 없애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서로 다른 계급이 하나로 뭉치고, 그들을 이끌어갈 사회주의 정당이 정치적 세력을 얻어서 가난의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오웰이 진심으로 원하는 일이었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자신이 사는 시대의 '자유'와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 글로써 투쟁했던 오웰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중산층의 출신 배경을 가지고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오웰의 젊은 시절은 가난과 노동의 일상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파리와 런던에서의 밑바닥 생활'은 그것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동물 농장'을 비롯해 독재권력이 감시하는 어두운 미래를 그린 '1984'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작품들은 인간과 시대를 꿰뚫어 보는 뛰어난 통찰력이 돋보인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닮고 싶어하는 작가가 쓴 책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 아낌없이 별점 5개를 매긴다. 문학성과 시대정신이 온전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 무엇인지 작가 조지 오웰은 자신의 삶과 작품으로 입증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