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상류층 출신의 젊은이가 있다. '마리오'란 이름을 지닌 그는 20대 초반에 파리에 들렀다가 우연히 사진 한 장을 보게 된다. 여자의 목을 감싼 수갑을 찬 두 손의 이미지였다. 헝가리 사진 작가 André Kertész의 그 사진은 청년 마리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로부터 2년 뒤,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 남아있던 그 사진의 인상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영화를 찍을 카메라를 샀고, 배우와 스태프로 친구와 지인들을 총동원한다. 자기 자신도 배우로 한 장면 출연했다. 그렇게 찍은 2시간짜리 영화에 그는 큰 기대를 건다. 그러나 영화는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영화는 그의 첫번째이자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영화의 진가를 알아봐 주는 이들이 조금씩 생겼다. 그러다 1966년에 브라질 정부에 의해 필름이 몰수되는 수모를 겪는다. 그의 영화가 에이젠슈테인과 푸도브킨 같은 러시아 영화 감독들의 영향을 받은, 말하자면 사회주의에 물든 '빨간색'의 영화라는 이유였다. 1964년에 집권한 군부 독재 정권하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필름은 어느 대학생의 손에 들어가게 되고, 그는 필름 복원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그렇게 영화는 다시 세상에 나와 관객들을 만난다. 영화의 제목은 'Limite(Limit)', 마리오 페이소토(Mário Peixoto)의 1931년 작품이다.


  영화는 당시 유행하던 온갖 종류의 영화 기법을 제멋대로 섞어 놓은 것 같다. 루이스 브뉴엘의 '안달루시아의 개(1929)'에 나오는 그 유명한 눈동자 장면도 비슷하게 나온다. 러시아의 감독들, 에이젠슈테인과 푸도브킨의 몽타주 기법을 따라한 장면들도 있다. 연관성 없는 사물들의 극도의 클로즈업 쇼트들이 정신없이 이어지기도 한다. 실험 영화 같은데도, 나름의 서사는 갖추고 있다. 다만 매우 불친절하다.


  초반부에 등장하는 보트에는 두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가 타고 있다. 그들은 마치 조난당한 것처럼 보인다. 여자 한 명은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데, 관객들은 여자의 생사 여부도 알 수 없다. 지치고 절망한 표정의 남자는 미동도 하지 않고 누워있는 여자를 바라본다. 남자와 거리를 두고 앉아있는 또 다른 여자도 기진맥진한 상태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떤 사이이며, 무슨 사연을 가진 걸까? 러닝 타임 2시간 동안 세 사람이 배에 타기 전의 행적에 대한 단서들이 차례대로 조금씩 주어진다. 마치 추리물 같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사물과 풍경의 이미지들이 관객들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무슨 영화가 이렇단 말인가, 난해함과 지루함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이 영화를 본 이들의 반응은 양극단으로 나뉜다. 잊혀진 걸작이라는 찬사가 있는가 하면, 과대평가된 졸작이라는 혹평도 있다. 브라질 영화사에서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명작으로 손꼽는다. 그렇다고 해서 세계 영화사적 의미도 동등하게 획득했다고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이 영화를 오늘날의 영화과 학생이 찍었다면 온갖 비아냥과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제작된 1931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그 모든 냉소와 조롱을 방탄복처럼 막아준다. 사실이 그러하다.


  이 2시간짜리 무성 영화가 펼쳐 보이는 기이한 이미지의 세계를 인내하기란 결코 쉽지않다. 그나마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다채롭게 사용된 클래식 음악들이다.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모음곡,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세자르 프랑크, 프로코피에프, 보로딘의 음악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그렇게 귀는 호강하지만, 눈은 파편화된 이미지에 혹사당한다. 보는 동안 쉬었다 다시 보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이 영화를 보려고 모인 사람들이 있다면 그곳에 가서 외칠지도 모른다.


  "모두 나가주세요. 이 영화는 진정한 영화광을 위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많은, 보통 사람들은 이런 영화를 보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다만, 영화광()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 그것도 뼛속 깊이 영화로 채워진 진정한 영화광들만이 이 영화의 시간을 견딜 수 있다. 보고 나서 이 영화에 열광하느냐 또는 실망하고 분노하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마음의 준비가 된 사람이라면 영상의 재생 버튼을 누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하는 이들에게 '진정한 영화광'이라는 호칭은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제목 'Limite'처럼 일반 관객과 영화광의 한계(limit), 그 경계(border)를 가늠할 수 있는 작품이다.  



*사진 출처: scielo.br 사진의 첫번째 이미지가 마리오 페이소토에게 영감을 주었던 사진 이미지다. 영화의 맨 첫 부분을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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