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라디오 방송을 듣다가 청취자 사연을 하나 들었다. 아마 20대 청취자였던 것 같다. 자신이 도전하던 일이 있었는데, 거듭 실패하자 포기하려 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라라랜드'의 미아가 마지막 오디션을 치루는 장면을 보고 다시 도전할 용기를 얻었다는 사연이었다. 그런데 그 사연을 들으면서 나는 좀 그랬다. 만약 그렇다면 저 영화는 뭔가 좀 위험한 영화인 걸...


  작년에 이 영화를 케이블 채널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그 유명한 언덕의 탭 댄스 장면이었다. 이상하게 주인공들의 연기나 그 밖의 다른 것들에 몰입이 되지 않았고, 별 재미도 없어서 한 10분을 보다 채널을 돌렸다. 그리고 엊그제, 설 연휴 특선으로 공중파에 나온 '라라랜드(2016)'를 다시 만났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내 느낌은 일종의 분노와 허탈감이었다. 이건, 청춘 관객들 털어먹으려고 만든 포장 그럴듯한 영화이지 싶었다. 


  데미언 셔젤의 '위플래시(Whiplash, 2014)'를 보았을 때가 생각난다. 아마도 내가 근래 10년 동안 본 영화 가운데 베스트를 꼽으라면 그 영화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예술의 본질, 그 안에 숨겨진 광기와 고통에 대해 그토록 심오한 성찰을 감각적 영상으로 보여준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때 그 영화가 주었던 전율과 감동이 아직도 기억난다. 내가 제작자였다면 돈다발 싸 들고 셔젤을 찾아갔을 것이다. 아마도 헐리우드 제작자들도 당연히 그랬겠지. '라라랜드'는 말 그대로 돈을 여기저기 바른 티가 줄줄 흐른다. 주연을 맡은 엠마 스톤과 라이언 고슬링은 노래, 피아노, 탭 댄스 배우느라 죽을 고생을 했겠다 싶기도 하다. 하긴, 배우는 아무나 하나? 헐리우드 정상급의 배우가 저 정도 역량 아니면 버텨낼 수 없는 치열한 세계이기도 하고.


  이 영화를 인생 영화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으므로, 구태여 줄거리를 읊을 필요는 느끼지 못한다. 이 영화에 대한 해외 평론도 찾아보면 죄다 호평 일색이다. 그렇다면 '라라랜드'는 그런 찬사와 박수에 걸맞는 영화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감독 데미언 셔젤은 겉만 번지르르하고 내용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뮤지컬 영화 한 편을 찍었을 뿐이다. 내가 특히 더 분노하고 우려스럽게 생각했던 점은 따로 있다. 그가 '라라랜드'에서 보여주는 예술과 예술가의 모습은 상업적으로 왜곡되어 있다. 말하자면 셔젤은 자신의 경력을 위해, 자신이 보고 알고 느끼는 예술과 창작자의 관점을 돈 되는 영화를 만드는 데에 팔아넘겼다.


  내가 라디오에서 들은 청취자 사연에 나온 미아의 마지막 오디션 장면을 한 번 보자. 미아는 거듭된 오디션 탈락에 좌절한다. 세바스찬의 권유에 따라 글쓰기에 새롭게 도전한 미아는 '볼더 시티여, 안녕'이란 1인극 희곡을 쓰고, 마침내 첫 공연을 하게 된다. 그러나 결과는 대실패. 그야말로 모든 걸 때려치우고 고향집으로 돌아간 미아에게 세바스찬이 희소식을 갖고 온다. 미아는 행운의 오디션을 보게 되고, 결국 그 오디션은 미아의 마지막 오디션이 된다. 자신의 삶의 경험을 연기로 엮어서 보여주라는 주문에 미아는 그동안 겪었던 좌절과 슬픔을 노래로 표현한다.


  "이 곳에 있는 꿈꾸는 사람들을 위하여, 바보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그리고 가슴 아픈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진흙탕 속에 갇혀 있지만

  (중략)...

  조금은 미칠 필요도 있어, 새로운 무언가를 보려면 말이지

  그런 게 우릴 어디로 데려갈지는 아무도 몰라

  바로 세상이 우릴 필요로 하는 이유지

  (중략)...

  마침내 그녀는 말해요

  한 번 더 해보겠다구요." (번역: 푸른별)


  이 노래를 부르고 미아는 대스타의 길에 들어서는 열쇠를 얻는다. 아마 그 라디오 청취자는 그 다시 한 번 더 해보겠다는 말에 대단한 감동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그 청취자가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데미언 셔젤이 '라라랜드'에서 보여주는 이러한 겉멋 든 선동(정말로 선동이라고 생각한다)에 어떤 면에서는 욕지기가 나왔다. '야, 너 될 때까지 해봤어? 그렇게 열정적으로 모든 걸 내던진 적 있냐구? 미아를 봐봐. 결국 해냈잖아. 너도 할 수 있다니까!'


  셔젤은 분명 예술이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그 파괴적인 이면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위플래시'는 정신나간 음악가의 미친 교육방식에 대해 토론을 요구하는 영화가 아니다. 창작의 세계에 들어선 이들의 부서지기 쉬운 내면과 예술이란 세계의 무자비한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셔젤은 관객에게 묻는다. '과연 예술은 도덕적이며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가치를 얼마나 가졌는가'에 대해서.


  그런 그가 '라라랜드'에서는 광대가 되기를 꿈꾸는 이들(우리가 딴따라라고 부르는 모든 총칭의 직업군에 해당하는)에게 당신들이 실패하는 것은 열정과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대놓고 말한다. 적어도 미아처럼 스스로 희곡 쓰고, 돈 들여 공연장 대관해서 1인극이라도 해야할 판이다(미아는 그 공연을 본 캐스팅 디렉터에게 연락을 받았다). 그렇다. 이건 영화니까, 영화적으로 뭔들 못하겠는가? 그렇다고 미아와 세바스찬이 구질구질한 도시의 셋방에서 평생 인생 망가지며 사는 꼴을 보여준다면 '라라랜드'의 흥행은 대참패를 면치 못했겠지. 그렇다고 해도 이 영화의 현실감각은 영에 수렴한다. 미아와 세바스찬이 사는 집도 그렇다. 아니, 변변찮은 직업으로 먹고 사는 배우지망생과 재즈 피아니스트의 셋방은 왜 그리 반짝거리고 널찍한가? 도대체 이 영화의 캐릭터들 가운데 궁기가 흐르는 이들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유명 뮤지컬 영화에서 차용한 것이 명백한 장면들, '사랑은 비를 타고(1952)'와 '쉘부르의 우산(1967)'을 비롯해 초반부 도로에서 벌어지는 공연 장면은 마치 '그리스(Grease, 1971)'의 군무를 연상케 하는데, 이 또한 영화적 상상력의 밑천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셔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예술 세계의 본질에 적당히 예전 뮤지컬 영화 섞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연애담을 엮어서 '라라랜드'를 내놨다. 마치 마케팅에서 타겟 설정하고, 그들이 원하는 니즈(needs)가 무엇인가를 연구해서 상품 내놓는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 결과, 나에게 이 영화는 작품이 아니라 '영화적 상품'으로 보인다.


  아니, 영화라는 게 결국 다 그런 거잖아요. 관객들 영화관으로 오게끔 환상과 꿈을 잘 포장하고, 달달한 설탕 가루도 좀 뿌리고, 뭐 그런 거 아니에요? 사람들이 현실의 시궁창 보려고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는 건 당신도 잘 알고 있잖소?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그렇게 반문할 것이다. 아마 이 영화가 그냥 청춘 로맨스 영화였다면 나는 그렇게 마음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혐오의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셔젤이 예술과 창작자의 세계에 있는 이들의 모습을 교묘하게 왜곡해서 보여주며, 결국은 그것이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것에 분노를 느낀다. 미아와 세바스찬처럼 성공하는 경우는 현실에서는 아주 아주 드물다.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그 세계의 많은 이들은 가난과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말 그대로 '망가지는' 경우가 많다. 아주 운이 나쁘면 여러가지 이유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는 경우도 있다. 운이 좋게 배우로 성공한 미아와 자신만의 재즈바를 갖게 된 세바스찬이 잃은 것은 결국 젊은 날의 사랑 뿐이다. 그런 걸 '상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내가 그나마 뭔가를 하나 건져야 한다면, 언덕 탭 댄스 장면의 포스터 정도일 것이다. 이 포스터는 젊은 청춘들의 방 전면을 도배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딱 그 뿐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는 아주 씁쓸함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서 이 영화로 쓸 리뷰 제목을 떠올렸다. '본격 청춘 관객 털어먹는 영화'. 아마도 이 블로그에 오는 이들은 내가 이런 비문(文)의 문장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뭔가 웹소설 제목같은 그걸 어떻게든 좋게 바꿀 수 있을지 이틀을 고민했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어서 그냥 썼다. 언젠가 웹소설 작가가 자신이 만든 제목에 얽힌 이야기를 게시판에 올려서 읽은 적이 있다. 진짜 말도 안되게 긴, 문법에도 맞지 않는 제목(예를 들면 '마틸다는 몇 번이고 전화를 걸고 울다 지쳐서 3일째')이었는데 그게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게 되었다는 후일담이었다. 뭐, 일 방문자수 100명 미만의 이 블로그에서 내가 인기를 끌 일도 없고, 내 진정성 담은 이 리뷰의 제목은 그렇다는 것을 독자들만은 알아줄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미아와 세바스찬의 상상 장면에서 파리의 거리에 빨간 풍선을 든 아이가 스쳐 지나간다. 그건 1956년 알베르 라모리스의 '빨간 풍선'에 나오는 장면을 따온 것이다. 30여분이 좀 넘는 이 단편 영화는 아주 간결하고 재미있으니, 감상할 기회가 있다면 보는 것도 좋겠다.


**사진 출처: thoughtcatalo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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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7267hdkem 2021-03-08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렇기에 이 영화가 더욱 슬프고 와닿았어요...

영화자체는 픽션이고 허구고 현실감각이 없지만...

예술을하려고 하는 사람들 꿈을 쫒는사람들은 그런 허구를 믿고 달리는 거잖아요 ?

오히려 현실적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면
이 영화가 위선적이게 보였겠지만
너무 현실감각이 없게 꾸며낸게 보여서
더욱 슬프고 찬란해 보였습니다.

꿈꾸는 모습이니까요.

그렇기에 이영화에 응원받는 사람들이 많았던게 아닐까요?

영화를 보고 내 꿈을 공감받고 응원받았다는 느낌을 전 가졌거든요.

y7267hdkem 2021-03-08 19:54   좋아요 0 | URL
그저 뻔한 러브스토리가 아니여서, 인생의 가치관이 절벽 끝자락에 걸친 현실성없는 가치관일지라도
그걸 현실적이고 참담하게 다뤄주지않아서 저는 고마웠습니다.

이미 현실적이게 힘든 길이고 말이 안되는 꿈인걸 다들 잘 알고있으니까요.



물론, 라라랜드를 보고 다시한번 이라는 용기를 얻었다는 내용과 전 반대입니다.

전 ‘상업적인 일‘을 무서워하지않아도...
시기상 당장 눈앞에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 현실화되지않아도
천천히, 서서히 갈수있구나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거야 라는 용기를 받았어요.



푸른별 2021-03-09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영화가 각 사람에게 주는 의미는 다를 수 있으니까요. 댓글 잘 읽었습니다. y7267hdkem님, 이 영화에서 받은 희망의 느낌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