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수도원 피정에서 원장 신부님에게 들었던 일화가 생각난다. 하루는 수련 수사 두 명이 화장실 청소를 하다 말고 신부님을 찾아왔다고 했다. 서로 청소하는 방식이 다른데, 도저히 타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 좀 생각해 보다가, 화장실을 반으로 나눠서 각자의 방식으로 청소하라고 했어요.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공동체 생활을 한다는 게 그렇게 힘들어요."


  화장실 청소 같은 것은 그렇게 각자의 방식대로 나누어 할 수 있다지만, 만약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일이라면 어떨까? 나카하라 슌 감독의 '12명의 상냥한 일본인(The Gentle Twelve, 1991)'은 뜻하지 않게 배심원으로 위촉받은 평범한 시민 12명이 살인 피의자의 유무죄 여부를 가리는 재판 평결 과정을 담아낸다. 그들이 내리는 평결에 따라 남편을 죽인 혐의를 짊어진 젊은 여성의 남은 인생이 달라지게 된다. 단 1명이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평결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마 시드니 루멧 감독의 '12명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 1957)'을 본 이들이라면 쉽게 눈치를 챌 수 있을 것이다. 뛰어난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영화 '웰컴 투 미스터 맥도날드(1997)'의 각본을 쓴 미타니 코키는 '일본에도 배심원 제도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가정하에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 '12명의 성난 사람들'이 미국 사법 제도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12명의 상냥한 일본인'은 덜 무겁고 경쾌하다. 러닝 타임이 2시간 가까이 되는데도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대사의 향연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12명의 배심원들에게는 이름이 없고, 배심원 1호, 2호와 같이 번호가 부여된다. 영화는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배심원장을 맡은 1호의 제안에 따라 거수로 피의자의 유무죄를 평결하게 된다. 젊은 여성 피의자는 폭력으로 이혼한 남편의 재혼 요구를 거절하는 과정에서 남편을 밀쳐서 트럭에 치여 죽게 만들었다는 살인 혐의를 받고 있다. 배심원들은 재판 과정을 모두 보았고, 이제 평결을 내려야 한다. 미모에, 기구하고 가련한 인생사를 가진 여성 피의자에게 동정심을 느낀 배심원들은 별다른 토론도 하지 않고 전원 무죄 평결에 이른다. 그렇게 배심원들이 모두 방을 나서려는 순간, 배심원 2호가 갑자기 마음을 바꾸고 유죄를 주장한다. 그때부터 치열한 토론이 시작된다.


  '12명의 상냥한 일본인'에는 토론에서 볼 수 있는 온갖 종류의 행태들이 다 나온다. 큰 소리로 우기기, 비꼬기, 사실 왜곡, 끼어들기와 거짓말, 감성에의 호소... 각각의 배심원들은 서로 다른 성격과 직업, 살아온 이력에 따라 피의자의 유죄와 무죄를 주장한다. 그 과정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추론이나 판단에 따라 이루어지기 보다는 배심원들이 가진 개인적 편견과 경험에 기대고 있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과연 사람이 중립적이고 공정하게 가치 판단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나름의 논리와 증거를 들이대며 유죄를 강력히 주장하는 배심원 2호의 반대편에 배심원 6호가 있다. 한마디로 무지막지하게 자신의 뜻을 밀어붙이는 이 사람의 판단 근거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경험이다. 노총각으로 살면서 연애도 못해봤는데, 피의자의 남편은 별로 잘 생기지도 못했으면서 여자들에게 빌붙어서 편하게 살던 한심한 인간이므로 죽어 마땅하다고 말한다. 그가 그렇게 울분을 터뜨리면서 피의자의 무죄를 큰소리로 주장할 때 묘한 타당성이 느껴진다. 가치 판단에서 감성이 차지하는 비중을 그는 온몸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뭐랄까, 필링(feeling)이랄까..."


  토론이고 뭐고 다 귀찮고, 그냥 느낌상 그렇다고 말하는 배심원 4호도 있다. 그 어떤 합리적인 추론도 마다하며 그런 감정적 판단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배심원들이 여럿이다. 토론이 거듭되면서 고민하는 배심원들의 마음은 요동친다. 영화는 그렇게 최종 평결에 이르기까지 엎치락뒤치락하는 과정의 긴장감을 유지하며 나름의 유머 감각 또한 놓치지 않는다.


  이 영화의 제작년도가 1991년이니, 30년이나 묵은 영화이다. 그럼에도 '12명의 상냥한 일본인'에는 구식의 촌스런 감성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미타니 코키가 써낸 생생한 대사들은 시간의 흐름을 비껴가 있다. 평결이 이루어지는 방에서 여러 인물들이 보여주는 대립과 갈등은 다양한 인간 군상과 그 내면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그런 이유로 일본에서는 연극으로 상연되면서 더 많은 인기를 끌었다.


  물론 장점만 갖고 있지는 않다. 이 영화 속 3명의 여성 배심원 캐릭터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명은 중년 부인으로 피의자가 불쌍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다른 한 명은 그저 수첩에다 정리만 잘 하는 맹한 노처녀, 그리고 이랬다 저랬다 줏대없이 휩쓸리는 젊은 엄마가 그들이다. 어떻게 죄다 좀 덜 떨어진 캐릭터들로 묘사된다. 그것이 단순히 여성 캐릭터들에게 부여된 우연한 특질들인지, 아니면 일본 사회에서 바라보는 여성에 대한 여러 편견의 집합체로서 묘사된 것인지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건 여성 캐릭터들 가운데 똑똑하고 자기 주장이 강한 인물도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 우스꽝스럽고 한심한 남성 배심원 캐릭터들도 있다. 하지만 세 명의 여성 캐릭터가 하나같이 다 그렇다면 관객의 입장에서 마냥 웃을 수만도 없다. 거기에다 재판에서 나온 아줌마의 증언을 두고 남자 배심원들이 보여주는 지독한 편견과 비아냥은 어딘지 모르게 뒤틀려 있다. 어떤 면에서 그 점이 구시대의 가치관을 보여주는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의 우리말 제목은 '12명의 상냥한 일본인'과 '12명의 마음 약한 일본인'으로 통용되고 있다. 일본어 제목의 뜻대로라면 '상냥한'이 맞지만, '마음 약한'이라는 제목이 심정적으로는 더 맞지 않나 싶다. 이 영화 속의 배심원 캐릭터들은 모두 '약함(weakness)'을 지녔으며, 그것이 그들이 내리는 판단에 영향을 끼친다. 사실 그들만이 그런 약점을 가진 것이 아니다. 관객들은 자신의 내면에 자리한 약함과 함께, 평결이 이루어지는 영화 속의 그 방에서 자신은 과연 어떤 편에 설 것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사진 출처: asianwi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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