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쉬운 건 하나도 없어. 이 큰 도시에서 우리 같은 건 아무 것도 아니지."


  흐느껴 우는 난펑(판빙빙 분)을 위로하며 친구가 하는 말이다. 난펑은 재혼한 엄마에게 생활비를 보낸다. 술집에서 노래부르고 웃음 팔며 버는 돈이다. 술주정뱅이에 폭력까지 휘두르는 남자를 떠나지 못하는 엄마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술병이 나서 입원한 남자를 찾아온 난펑은 술 마시고 죽어버리겠다고 난동을 부린다. 이렇게 마음 둘 데가 없기는 난펑의 남자 친구 딩보(진백림 분)도 마찬가지. 병으로 죽은 엄마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여자 생겨서 재혼하는 아버지가 밉다. 페이저우라는 이름 대신 뚱보로 불리우는 친구는 부모와 불화로 집을 나왔다. 이들 셋은 버려진 빈집에 거주하고 있다. 그러다 집이 철거를 하게 되자, 셋집을 알아 보다 경극을 가르치는 창 여사의 집에 방을 얻는다. 뭔가 잘 어울리지 않을 이 네 사람들은 별 문제 없이 같이 살 수 있을까...


  '둑길(2005)', '로스트 인 베이징(2007)', 이 두 작품에 이은 리위 감독의 '관음산(2010)'은 방황하는 젊은이들과 인생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한다. 만듦새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야기를 좀 편하고 쉽게 끌어가려다 보니, 인물들 간의 관계는 헐겁고 내적인 유기성은 떨어진다. 이 영화는 리위 감독에게 중국 내 흥행으로 큰 성공을 가져다 주었고, 주연 배우인 판빙빙의 연기도 꽤 좋은 편이어서 이 영화로 동경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대중성을 위해 자신만의 개성을 죽이고 적당히 타협한 결과인지도 모르지만, 영화는 다소 진부하게까지 느껴진다.


  영화 속 난펑과 딩보, 뚱보가 직면한 현실의 괴로움은 그들만이 겪는 특출난 것이 아니다. 부모와의 갈등, 진로에 대한 고민, 연애와 생계의 문제, 이런 고민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이 어디 한둘인가? '관음산'의 세 친구들이 좀 다르게 보일 수 있다면 대지진의 상흔을 가진 도시의 풍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도피하듯이 도시 근처에 자리한 장대한 관음산을 자주 찾는다. 기차에 몰래 타고, 하염없이 걸으며, 관음산과 도시를 왕복한다. 길 위에서 그들은 자유로워 보이고 맘껏 웃으며 떠드는 것 같지만, 그곳에서 살 수는 없다. 그들이 결국 찾는 것은 편히 살 수 있는 자신만의 '집'이다. 이전의 가족과 집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세 친구의 관계는 마치 진짜 가족 같다. 영화 초반부에 뚱보가 동네 불량배 무리에게 돈을 뜯기고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자 난펑은 뚱보를 데리고 무리를 찾아가서 자신의 기세를 보여준다. 병을 깨서 자해를 하고 피가 줄줄 흐르는 채로 무리의 여자애와 강제로 입을 맞추는데, 그 장면을 본 패거리들은 놀라서 당황한다. 여성인 난펑이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가면서까지 뚱보 친구를 보호하고 지켜내려고 하는 모습은 마치 가족을 지키는 모성의 발현 같기도 하다. 어쩌면 난펑에게 두 친구가 진정한 가족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난펑의 유사 가족에 지진으로 아들을 잃은 창 여사가 합류하면서 가족 구성원은 넷이 된다. 그렇게 집과 가족이 생겼고, 소소하지만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행복이 이어진다.


  세 명의 젊은이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면서 아들을 잃은 슬픔에서 조금씩 벗어나던 창 여사는 왠지 자신이 다시 찾은 일상의 행복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결국 창 여사는 새로운 가족에서 이탈하게 되고, 난펑과 딩보, 뚱보는 다시 길 위에 선다. 영화의 결말은 그들이 진정한 가족과 안정된 집을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흔들리는 화물차의 뒷편에서 허탈한 표정으로 울어버릴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세 친구의 젊은 날에서 확실한 것은 삶은 여전히 쉽지 않을 거라는 점 뿐이다. 재건되고 있는 거대한 도시의 한 켠에서 그들은 앞으로도 주변인으로 살아갈 것이며, 그런 그들이 정착할 집은 어쩌면 영영 없을지도 모른다. 청춘의 어두운 그늘이 그들이 관음산을 나올 때 지나는 터널처럼 끝이 있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리위 감독의 '관음산'은 집을 찾아가는 여정의 청춘들을 도시와 거대한 자연 풍광 속에 녹여내서 보여준다.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주었던 밀도 있는 연출과 이야기의 핍진성은 떨어진다. 재능에도 '총량의 법칙'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처음에는 마법 구두를 신고 마치 날아다니는 것 같은 이들의 재능은 시간이 지나면 닳아버린 구두 뒷굽처럼 직직 끌리는 소리를 낸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관음산'을 만든 리위를 보며 새삼 느꼈다.



*사진 출처: sinethetamagazine.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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