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 - 어느 수집광의 집요한 자기 관찰기
윌리엄 데이비스 킹 지음, 김갑연 옮김 / 책세상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상품 라벨 1만 8천개, 시리얼 상자 1579개, 우편봉투 속지 패턴 800개, 신용 사기 편지 141통... 이런 걸 모으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의 저자 윌리엄 데이비스 킹은 그런 걸 모아온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을 부르는 명칭이 있다. '수집광'. 이 양반은 번듯한 직업도 갖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UC 연극 무용과 교수. 연극 전공 교수가 어쩌다가 그런 쓰잘데기 없는 것들을 어린 시절부터 모아온 것일까...


  저자는 자신의 수집 역사를 회고하며 책으로 펴냈다. 진짜 오만 자질구레한 것들에 집착하며 아주 어린 시절부터 모아온 그의 수집의 역사는 대단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대체 왜 그렇게 모은 거야?'라는 독자의 질문에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결국 자신의 인생이다. 자신이 모은 물건들과 긴밀하게 결부된 인생 이야기가 생각보다 꽤 재미있다. 단지 물건들에 미쳐서 그런 게 아니었다. 인생의 각 시기마다 얽힌 사연들이 있고, 물건들은 그가 겪은 마음의 흔들림과 파고(高)에 함께 따라왔다. 중간 중간 읽다 보면 웃음이 터질 때도 많다. 나름 두께가 있는 책인데도 술술 읽힌다.


  이렇게 글재주가 있는 사람은 물건 모아놓은 기록에서 삶의 다양한 모습을 헤아려 보게 만든다. 그의 수집의 역사에서 이혼과 재혼, 수집광인 그를 이해해주는 가족의 모습도 솔직하게 풀어내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시시하고 한심해 보이는 취미인지 몰라도, 그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결코 아닌' 물건들의 역사는 꽤나 진지하다. 저자의 수집품들을 보다 보면 독자들은 그 자신들의 수집의 역사도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나도 그랬다.


  이 책을 읽고나서 든 생각은 이랬다. 내가 아끼고 사랑했던 물건들이 있는 곳에 내 마음이, 그리고 이야기가 있었다는... 인생의 굽이치는 길목마다 어떤 물건들은 그 시기를 견딜 위안이 되어주기도 했다. 무언가에 아주 열심히 빠져서 모으고 애착을 가졌을 때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다 있었다. 그리고 그 시기가 지나면 시들해지고, 새로운 물건들을 발견하고 좋아하게 되고 그랬었다.


  이 책의 부제는 '어느 수집광의 집요한 자기 관찰기'이다. 자신이 모아온 오만 잡동사니들에서 그 물건들에 얽힌 마음의 허기와 불안을 읽어내며, 힘들었던 시절을 견뎌온 저자에게 물건들은 나름의 '심리 치료사' 역할을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꼭 물건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에게는 힘들고 지친 시기를 견디는 '무언가'가 다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소설이, 드라마가, 그리고 음악과 영화 같은 것들이 그러할 것이다. 나에게는 영화가 그러했다. 어쩌면 그런 것들과 함께 사람들은 부유하는 인생의 허무함과 괴로움을 견디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괴짜 수집광 교수의 인생 이야기를 읽고 나서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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