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그랍스키의 2009년작 다큐 '베토벤을 찾아서(In Search of Beethoven)'는 베토벤의 생애와 음악을 담아낸 작품이다. 러닝 타임이 2시간 20분에 이르는데, 생각보다 꽤 길게 느껴진다. 베토벤의 음악 세계를 충실하게 조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다. 문제는 지루하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 다큐는 클래식 음악 팬이나 서양 음악 전공자들에게만 나름의 매력이 있을지 모른다. 나처럼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도 이 다큐의 길고 지리한 여정을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았다. 2시간 20분이 마치 네다섯 시간은 걸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큐는 베토벤의 생애를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시간 순서대로 풀어낸다. 발음 좋은 여성 해설자가 생애와 작품에 대한 소개를 하고, 중간 중간에 세계적인 지휘자와 연주자들의 견해, 음악 평론가들의 부가 설명도 더해진다. 음반으로만 듣던 유명 음악인들의 실제 연주 모습과 그들이 생각하는 베토벤에 대한 개인적 감상을 듣는 기회가 흔치는 않을 것이다. 뭐랄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귀 호강, 눈 호강하는 다큐일 수도 있겠다.


  지휘자로서는 로저 노링턴의 설명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는 베토벤의 음악을 베토벤의 성격과 결부해서 해석한다. '폭풍같다'라는 노링턴의 설명대로 젊은 시절 베토벤의 성격은 불같이 급하고 참을성이 없었다. 그 시기에 만들어진 현악 4중주 '라주모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이 그러한 면을 보여준다. 특히 피아니스트들이 보는 베토벤의 내면에 대한 해석들도 신선하다. 감상자로서 만나는 베토벤의 음악과 그것을 직접 연주하는 이들이 들려주는 느낌과 생각들이 어떻게 다른지도 알 수 있게 된다.


  다큐는 베토벤의 생애에 등장하는 여성들에 대한 설명도 놓치지 않는다. 특히 '불멸의 연인'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도 들려주는데, 어디까지나 음악과 관련해서 짧게 언급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게리 올드만이 베토벤으로 나온 '불멸의 연인(1994)'을 보는 것을 추천할 수는 없다. 영화의 작품성이 상당히 떨어진다. 거기에 게리 올드만이 연기하는 베토벤은 견디기 힘들다. 그가 영화 속의 누군가를 연기하면 영화의 인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게리 올드만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롤랑 조페 감독의 '주홍글씨(1995)'에서 그가 연기한 딤즈데일도 그랬다. 그의 영화 보는 안목이 문제인 것인지 연기력이 문제인 것인지 늘 답답하게 느껴지는 연기자이다.


  '베토벤을 찾아서'는 베토벤의 생애와 음악을 조화롭고 균형있게 살펴볼 수 있는 다큐이기는 하다. 문제는 그 여정이 지루하고 맥아리가 없게 느껴진다는 데에 있다. 감독 필 그랍스키는 2006년에 '모짜르트를 찾아서(In Search of Mozart)'를 만들어서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회심작으로 '베토벤을 찾아서'를 뒤이어 만들었다. 음악가 전기 다큐로서 사실에 충실하고, 여러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담아낸 것은 좋다. 그런데 이 다큐에는 '상상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베토벤의 생애에 대한 무슨 새로운 사실을 발굴하라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관객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영화적 장치에 대한 고민이 없다. 하다못해 재연 배우라도 좀 써서 볼거리를 만들던가. 이런 고지식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다큐는 일반 관객들까지 아우르는 확장성을 갖기 어렵다.


  그런 미진한 부분이 있기는 해도 클래식 음악 팬들에게는 볼만한 다큐이기는 하다. 로날드 브라우티검이 포르테 피아노로 연주하며 설명해주는 베토벤 음악의 세계, 아름다운 외모와 재능이 함께 빛나는 피아니스트 엘렌 그뤼모, 이안 보스트리지가 부르는 아델라이데,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교향곡 9번 '합창'까지 놓칠 수 없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피아니스트들이 실황 연주에서 악보없이 암보로 연주하는데, 브라우티검은 악보를 놓고 연주하는 것이 내 눈길을 끌었다. 잘 정돈된 실황 연주와 함께 리허설 장면들을 비중있게 넣은 것도 생동감을 부여한다.


  이 다큐는 인터넷에서 무료로 볼 수 있는데, 영어 자막이 없다. 그런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베토벤을 좀 더 깊이있게 알고 싶은 이들이라면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다. 재미가 없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물 없이 고구마를 먹으려면 천천히 먹어야 하는 것처럼, 이 다큐도 참을성있게 보고 나면 나름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감독 필 그랍스키는 이 다큐에 이어 '하이든을 찾아서(In Search of Haydn. 2012)'도 만들었는데, 그다지 볼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사진 출처: laemm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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