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해당 영화의 스포일러가 '약간' 들어있습니다.


 

  20분. 그것은 내가 영화를 볼 것인가를 결정하는 최소 감상 시간이다. 대개 괜찮은 영화들은 그 시간 기준에 그럭저럭 들어온다. 아주 좋은 어떤 영화들은 그 시간을 넘기는 인내심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흔하지는 않다. 그런데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One Cut of the Dead, 2018)'는 그 20분을 넘겨서 무려 37분을 인내할 것을 요구한다. 이 영화의 시작은 그저 그런 좀비 영화의 어느 장면에서부터이다. 도무지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이 조잡한 좀비 영화에는 한가지 특색이 있다. 원 테이크(single take)로 끊김없이 이어진다는 것. 좀 지루하다, 라고 생각할 즈음에 제목과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One Cut of the Dead'는 이 영화 속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영화 속의 영화. 이런 액자 구조 형식은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구조를 택해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느냐이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엄청나게 긴 '한 컷'의 영화 뒤에 숨겨진 세상을 보여주고자 그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효과적인 성공을 거둔다. 이 영화를 보려는 이들은 우선 초반의 37분을 견뎌야만 한다. 그리고 그 인내는 충분히 보답받는다.


  빠르게 찍고, 저렴한 비용으로 그럭저럭 괜찮은 영화를 뽑아내는 것을 신조로 삼고 사는 삼류 감독 히구라시는 어느 방송국으로부터 황당한 제안을 받는다. 요새 유행하는 좀비 영화를 원 테이크로 찍어서 생방송으로 내보낸다는 것. 쉽지 않을 것 같은 이 좀비 영화는 준비 단계에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쥐뿔도 없는 주조연 배우들의 오만가지 요구를 들어주는 것도 골치 아픈데, 급기야 촬영 당일 두 명의 배우가 약속 장소에 오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생방송은 곧 예정되어 있고 당장 배우 둘을 구하기도 어렵다. 삼류 감독 히구라시는 자신의 '원 컷' 좀비 영화를 무사히 찍을 수 있을까...


  마침내 시작된 'One Cut of the Dead'의 촬영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오로지 '원 컷'을 이어가기 위해 온갖 임기응변을 쏟아내는 스탭들과 배우들에게 그것은 악몽과도 같지만 그 광경을 보는 이들은 폭소를 참을 수가 없다. '삶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채플린의 명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감독 우에다 신이치로는 하나의 영화 뒤에 숨겨진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들을 이 장르를 타파한 요절복통의 영화 속에 담아낸다. 'ENBU 세미나' 영화 학교의 장편 영화 워크숍의 결과물인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빛난다. 이 재미난 영화에 할리우드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2020년에 리메이크 판권이 팔려서 제작이 예정되어 있다(Variety지 기사 참조).


  이 영화에서 삼류 감독 히구라시에게 닥친 난관을 극복하게 돕는 가장 큰 조력자는 그의 가족이다. 아내는 극중 영화의 분장사 배우 역으로, 딸은 제작 스탭으로 뛰면서 전심전력을 다해 돕는다. 시련과 역경 속에서 무엇보다 빛나는 가족애와 더불어 영화 촬영 현장의 모든 사람이 하나로 뭉치는 동료애는 뭔가 소박하지만 뭉클한 감동도 준다. 하나의 완성된 결과물을 위해 협력하고 그 어떤 희생도 감내하는 이러한 정서는 어쩌면 지극히 일본적인 것과도 맞닿아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와 비슷한 정서를 미타니 코키 감독의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1997)'에서도 볼 수 있다. 생방송 라디오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다루는 이 영화에서 PD는 제멋대로인 성우들을 달래가며 어떻게든 끌어가려고 한다. 그러다 가장 예기치 못한 어려움에 직면하는데, 그런 그에게 구원의 손길이 되어준 것은 방송국에서 오래 일한 나이든 소품 담당 직원이었다. 연장자가 가진 지혜와 오래된 것에 대한 존중, 그것이야말로 엉망이 될 뻔한 라디오 방송을 구한다. 이 코미디 영화는 관객에게 보편적 웃음을 선사하지만, 그 근저에 흐르는 정서는 매우 일본적이다. 집단주의, 그 집단의 소속원으로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역할을 해내며 연장자와 지도자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일본의 드라마와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변주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한 컷 뒤에 숨겨진 세상의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준다. 비록 누군가에게는 우스꽝스럽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영화일지라도 그것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애를 쓰는지 관객은 새삼 깨닫게 된다. 즐거운 코미디 영화이지만,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작동하는 가족주의와 집단주의, 그 견고한 정서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정서가 미국에서 제작되는 리메이크 영화에서는 어떻게 재현될 것인가도 궁금해진다.



*사진 출처: empireonl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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