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밍량의 '데이즈(子, 2020)'를 보고나서 나는 그의 '애정만세(1994)'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주인공 메이는 홀로 공원을 걷다가 갑자기 처철하게 목놓아 운다. 그 영화를 본 지가 꽤 오래되었는데도 나는 아직도 그 장면을 잊지 못한다. 메이의 울음은 소통에 대한 갈망과 결코 해소할 수 없을 것 같은 외로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데이즈'를 보고 메이의 울음을 떠올린 것은 그와는 다른 의미에서이다. 나는 차이밍량의 창작자로서의 마지막을 보았다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슬픔을 느꼈다. 이 영화는 그의 영화에 대한 종언()이나 다름없다.


  강(이강생 분)은 지독한 목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통증 때문에 꽤 견디기 힘든 침술 시술을 받기도 한다. 방콕에 사는 젊은 청년 논은 옷 장사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지만, 마사지 일도 부업으로 하고 있다. 강은 방콕의 호텔에서 논에게 마사지를 받는다. 둘은 거리의 음식점에서 같이 식사를 하고 헤어진다. 이것이 '데이즈'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러닝 타임 2시간 6분을 어떻게 채운 것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지루하고 진부하며 보잘 것 없는 롱 테이크(long take)들의 연속이라고. 적게는 1~2분, 길게는 6~7분에 이르는 쇼트들이 계속 이어진다. 내가 각각의 쇼트들을 세어본 것이 아니라서, 추측하건대 이 영화 전체의 쇼트들은 50개 미만일 것이다.


  이 영화의 비극은 영화를 본 관객이 '게이 포르노'라고 쏟아놓는 독설을 듣는 것에 있지 않다. 이것은 창작자의 종말과도 같다. 한때 눈부신 재능으로 빛났던 영화 감독이 이렇게나 망가질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참담한 기분이 들게 한다. 나는 '흔들리는 구름(2005)' 이후로 차이밍량의 영화를 끊었다. 뭔가 그의 영화 세계가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데이즈'를 본 것은 그의 현재를 한 번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롱 테이크는 낡아빠진 구닥다리 유물의 반복적 재현이며, 극도로 절제된 대사로 의도적으로 무성 영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시도는 자기 기만일 뿐이다. 차이밍량은 베를린 영화제 상영 때에 자막 없이 상영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영화의 대사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부수적인 것이며, 영화의 시원(原)인 무성 영화로 돌아갈 필요성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강은 논과 관계를 마치고 호텔에서 선물로 오르골을 건네는데,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채플린의 '라임라이트(Limelight, 1952)' 주제곡이다. 물론 '라임라이트'는 유성 영화다. 그러나 '채플린'이란 인물은 무성 영화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차이밍량은 '데이즈'를 통해 지금 시대 영화의 모든 것을 조소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그런 비웃음은 공허하게 울리며 흩어진다.


  차이밍량의 초기 영화들, '애정만세(1994'), '하류(1997)', '구멍(1998)'이 그토록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던 것은 그 영화들이 가진 보편성에 있었다. 현대인의 고독, 상실감, 소통에 대한 갈망을 자신만의 영화 언어로 그려낸 그에게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영화적 영감을 소실한 것 같다. 창작자는 작품으로 관객, 또는 독자와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겪은 고통과 슬픔을 일방적으로 늘어놓으며, 공감과 연민을 '구걸'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길가의 걸인을 떠올리게 만든다. 차이밍량은 '데이즈'로 자신의 고통을 위무받고 싶어하며, 더 나아가서 걸인처럼 관객에게 그것에 대한 동의와 연민을 구걸하고 있다. 참담한 일이다.


  이 영화를 좋은 영화이며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하려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그건 그 사람들의 말이고, 해야할 일일 것이다. 나는 내 글을 쓰며, 나의 일을 할 뿐이다. '데이즈'는 결코 좋은 영화가 아니다. 마치 아마추어가 어설프게 찍은 퀴어 영화 같은 인상을 준다. 이 영화의 간단한 요약은 '늙은 게이의 그저 그런 나날들'이 될 것이다. 이강생이 분한 '강'은 젊은 게이 '논'의 미래이다. 늙고 아픈 육체와 젊고 매끈한 육체는 같은 시간대, 공간 속에 위치하고, 그 둘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차이밍량이 보여주는 이런 대비는 영화적으로 하등 새로울 것이 없다. 나는 이것을 비평적으로 포장할 그 어떤 의지도 갖고 있지 않다.


  어쩌면 차이밍량은 더이상 영화를 찍고 싶어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좋은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흘러갔다. '데이즈'는 그의 나태함과 영화적 상상력의 부재를 여실히 입증한다. 차이밍량은 이제 은퇴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창작자로서의 그의 진정한 종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끝을 보는 것은 그의 영화를 아끼고 사랑했던 이들에게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다. 나는 '애정만세'의 메이처럼 목놓아 울고 싶은 기분마저 들었다. 



*사진 출처: hollywoodrepor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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