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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파리 ㅣ 영화로 만나는 도시
마르셀린 블록 지음, 서윤정 옮김 / 낭만북스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오래전에 사놓고 책장 한구석에 처박아 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엊그제 꺼내어 읽어보았다. 책의 제목처럼 파리를 배경으로 한 46편의 영화들에 대한 소고이다. 무려 31명의 다양한 필자들이 참여했다. 영화 관련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비교 문학, 미디어 연구자, 언어 전공자 등 여러 지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 자신들이 본 영화들에 대해 짧은 리뷰를 썼다. 대개는 줄거리 요약에 그치고, 더러는 장면 분석이 심도있게 들어간 부분도 있다. 어떤 이는 자기가 연구한 프랑스 초기 영화 감독 알리스 기 블라쉐에 대한 장문의 글도 실었다. 솔직히 별다른 느낌은 없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므로 프랑스 영화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 책을 보고나서야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2010)'에서 주인공 코브와 에이드리언이 대화를 나누었던 거리의 배경이 파리라는 것을 알았다. 키에슬로프스의 '세 가지 색: 블루(1993)'도 파리에서 찍었다는 사실도 함께. 도시가 가진 오랜 역사와 전통이 어느 곳에 카메라를 들이대더라도 그냥 '그림'이 되어버리게 만든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번역은 별다른 흠은 없지만, 좋다고 말할 수도 없다. 31명의 필자가 쓴 글이 각기 다른 결의 문체로 느껴져야 할 텐데 번역자 자신의 문체로 죄다 통일되었다. 저자 한 명이 다 쓴 리뷰라고 읽다가 필자들이 여러 명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다양한 필자들의 고유한 문체를 살려내지 못한 이 책의 번역은 상당히 아쉽다.
이 책에 나온 영화 속의 파리를 구경하고자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에 대해 나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는 못한다. 그냥 이 영화 속에 나온 장소는 파리의 어디구나, 라고 새롭게 알게 된 것에 그칠 뿐이다. 그러고 보니, 대체 이런 책의 기획은 왜 했을까 싶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미국에서 기획된 이 책은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대도시 시리즈로 기획된 모양이다. 같은 출판사의 '필름, 뉴욕'도 있다. 책 뒷부분에 나온 필자들 소개를 들여다 보다 문득 어느 국적인가 궁금해져서 국적별로 분류해 보았다. 호주 1명, 프랑스 1명, 이탈리아 1명, 영국 8명, 그리고 미국이 20명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미국의 연구자들이 바라본 파리 배경 영화들 분석인 셈이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기는 한가...
연구자들의 이력은 무척 화려한데, 특히 미국 필자들은 여러 대학의 영화 관련 학과에 소속되어 있었다. 내가 느낀 것은 그렇다. 세계 영화 산업을 이끌어가는 것이 주류 헐리우드 영화이므로 그것을 뒷받침하는 학문적 영역도 넓게 구축되어 있구나 하는. 어쨌든 영화와 매체 관련 글을 써서 많은 이들이 먹고 살 수 있는 '판'이 있다는 건 한편으로는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다 보고 났더니 눈이 피로하다. 이 책의 활자는 무지 작다. 정말 깨알처럼 작다. 아직 노안이 오지 않는 젊은 친구들, 그리고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오래전 영화부터 최신 영화가 궁금한 이들은 한 번 읽어볼 법하다. 영화들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