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지 마, 불결해!"


  미카(히로스에 료코 분)는 남편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 분)에게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뜬다. 도대체 이 부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다키타 요지로 감독의 '굿바이(영문 제목 Departures, 2008)'는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 첼리스트에서 졸지에 납관사(우리나라의 장례지도사에 해당함)가 된 다이고의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다. 아내 미카는 이제 막 남편이 새로 얻은 직업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직업을 바꾸지 않으면 떠나겠다고 하면서 그렇게 소리친다.


  자신이 단원으로 있던 교향악단이 해산되자 다이고는 첼로를 팔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새 직업을 찾던 다이고는 여행 가이드 모집 공고를 보고 찾아간 사무실에서 엉겁결에 채용된다. 그곳은 장의사들에게 일감을 받아 납관일을 하는 곳이다. 다이고의 새 직장 'NK에이전트'는 어떤 의미에서 여행사가 맞기는 맞다. 사장 이쿠에이(야마자키 츠토무 분)는 '영원으로 향하는 여행'을 안내하는 가이드라고 말한다.  


  다이고는 납관사 일을 하면서 자신이 모르는 세상을 배워나간다. 물론 그가 맞부닥치는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기껏해야 시체 닦아주는 천한 일이라는 세간의 편견은 아내를 비롯해 그의 고향 친구의 말에서도 드러난다. 일하러 간 상갓집에서도 다이고와 사장은 때로 대놓고 하대를 받기도 한다. 


  "당신들 말야, 죽은 사람이나 팔아먹고 살면서."


  약속 시간이 5분이나 늦었다는 이유로 상주는 대놓고 성질을 부린다. 일본 사회의 큰 문제로 자리잡은 '고독사' 이야기도 나온다. 다이고는 여러 죽음을 접하면서, 자신이 하는 일의 소중한 의미와 보람을 찾아가지만 결국 아내는 그를 떠난다. 과연 다이고는 납관사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굿바이'는 일견 무거워 보이는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다. 그러한 균형 감각이말로 이 영화가 가진 장점이다. 다이고 역을 맡은 모토키 마사히로의 연기는 아주 자연스럽고 지나침이 없다. 그는 이 영화를 위해 첼로는 물론 납관사 일도 열심히 배웠다. 특히 그가 영화 속에서 직접 연주하는 첼로는 색다른 감동을 준다. 영화의 음악을 담당한 히사이시 조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그렇게 관객의 마음을 가득 채운다.


  다이고의 아내 역으로 나온 히로스에 료코의 연기도 좋다. 사생활로 이런 저런 말이 끊이질 않는 배우이지만, 료코는 카메라만 돌아가면 배역 그 자체가 되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히로스에 료코가 나온 영화와 드라마에서 연기에 불만을 가져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영화 '비밀(1999)', 드라마 '썸머 스노우(2000)', '사랑 따윈 필요없어, 여름(2002)'의 눈부신 연기를 기억한다. 사장으로 나온 야마자키 츠토무의 연기는 이 영화의 무게 중심을 잘 잡아 준다. 이 영화는 시신으로 나오는 단역 배우들까지도 눈길을 끌게 만든다. 결코 움직여서는 안되는 '시신 역할'을 위해서 제작사는 오디션까지 보고 뽑았다. 무려 200대 1의 경쟁률이었다고 한다.


  이 영화의 원제 'おくりびと'는 '보내주는 사람'을 뜻한다. 영화 속의 납관사를 뜻한다. 영어 제목은 'Departures', 죽음은 새로운 세계로의 떠남을 의미한다. 한글 제목은 좀 뭔가 뜬금없기는 하다. 굿'바이, 안녕이란 뜻 자체 보다는 'Good and Bye'로 산자와 망자 사이의 좋은 이별을 뜻하는 의미로 지은듯 하다. 각각의 다른 언어의 제목들은 결국 죽음이 가리키는 것들에 대해서 성찰하게 만든다. 그것은 마냥 비통해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라기 보다는 인생의 자연스러운 마지막 과정이며 언젠가 우리 모두 마주해야할 미래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나는 영어 제목의 '떠남'이란 의미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곳으로의 새로운 여행일런지도 모른다. 왜 단수가 아닌 복수 형태의 'Departures'가 된 것일까? 그건 영화 속에서 다이고가 마주한 여러 죽음들을 뜻하기도 하고, 모든 죽음의 모습은 각각이 가진 사연과 그 죽음을 둘러싼 많은 이야기들이 있음을 보여주기에 그리 된 것이리라.


  영화의 마지막에 다이고는 어릴 때 자신을 버리고 간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과 조우한다.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다이고는 자신이 직접 납관 의식을 하면서 비로소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망자는 산자의 기억 속에 남는다. '납관사'라는 직업을 통해 죽음의 의미뿐만 아니라, 살아있음의 의미까지 되새겨 보게 만드는 '굿바이'는 꽤 괜찮은 영화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지금의 나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의 모습을 다시 한번 찬찬히, 고요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사진 출처: asianwi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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