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EBS '세계의 명화'에서는 '말할 수 없는 비밀(2007)'을 방영해 주었다. 이 영화에서 주걸륜이 피아노 배틀을 할 때 나왔던 곡들은 라디오의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에서 매우 인기있는 신청곡이다. 그동안 음악으로만 듣다가, 그걸 영화에서 직접 보았다. 이 영화를 만든 주걸륜은 자신이 주연 배우를 맡아서 피아노도 직접 친다. 아주 잘 친다. 그냥 그 뿐이다.


  이 영화의 만듦새는 나름대로 괜찮다. 로맨스 영화의 일반적 공식을 따라가는 듯하다가 중간 부분부터 확 틀어버린다. 시간대를 비틀어 버림으로써 영화는 긴장감과 활력을 띄게 된다. '비밀(Secret)'이라고 적혀진 마법의 악보가 매개체로 등장하는 것도 나름대로 설득력을 가진다. 배우들의 연기, 특히 샤오위 역을 맡은 계륜미의 다채로운 얼굴 표정과 청순한 매력도 빛난다. 예상륜 역의 주걸륜은 솔직히 복학생이 고등학생 교복입고 연기한다는 느낌이다. 뭔가 어색한 주걸륜의 대사 처리는 영화의 음악이 그럭저럭 메꿔준다. 클래식 음악과 함께 대만의 대중가요도 나오는데, 이 영화에서 음악은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예술 고등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주걸륜은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맘껏 펼쳐 보인다. 영화의 촬영 장소도 그의 모교를 택했다. 이 영화를 보고 감명을 받은 팬들은 그 고등학교를 직접 방문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보고 나서 든 생각은 그렇다. 과연 이 영화는 '명화()'인가? EBS에서 '세계의 명화'로 방영하는 영화를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괜찮은 줄거리, 적당한 감동이 있으면 '명화'의 요건을 갖추는 것인가? 그런 일련의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끊이질 않았다. 만약 다른 공중파 방송에서 '명화 극장'이란 프로그램으로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방영했다면 그다지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오래전의 EBS '세계의 명화'는 영화를 보는 눈을 열어 준 좋은 안내자였다. 친절하고 유능한 그 안내자를 따라 나는 명화의 세계를 탐험했다. 정말로 많은 명화들을 '세계의 명화'를 통해서 만났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1925)'를 영화 교과서에 제목으로만 볼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금지 목록에 올라 있었다. 조악한 화질의 복제 비디오테이프로 떠돌아 다니며, 알음알이로 보던 시절이었다. 그걸 EBS에서 1994년 3월에 방영하기로 결정했다. 당시의 신문과 방송에서는 공중파로 이 영화가 처음 방영된다며 대대적으로 보도할 정도로 화제였다. 그러나 '모종의 입김'에 의해 방영은 불발되었다. 좀 시간이 지난 후에 어쨌든 EBS는 그 약속을 지켰다. 그렇게 나는 '전함 포템킨'을 보았다.


  EBS에는 다양하고 깊이있는 세계의 명화들을 소개하는 '세계의 명화'와 함께 일요일 낮에 좀더 대중적인 영화를 방영하는 '일요 시네마' 프로그램도 있다. '한국 영화 특선'도 오래된 흑백 한국 영화들을 방영함으로써 한국 영화가 가진 역사성을 새롭게 부각시켰다. 나는 그 세 개의 영화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다. EBS는 나에게 진정한 영화의 보고였던 셈이다. 그러던 것이 어느 시점부터 EBS의 영화 프로그램들은 그 빛을 잃고 표류하기 시작했다. 방영되는 영화들의 목록에 나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 그 영화들의 목록은 비디오 테이프가 사라져 가던 시절, 폐업하는 비디오 가게에서 그나마 볼만한 테이프들을 골라서 담아놓은 것 같다. 그저 그런 영화들의 나열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무엇보다 좋은 영화를 가려내는 선구안의 부재가 심각하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은 그다지 큰 흠이 드러나지 않는 평범한 영화이지, 좋은 영화라고 볼 수는 없다. 한마디로 '명화'의 범주에 넣기에는 영화적 힘이 상당히 딸린다. 심심할 때 보기 좋은 영화 추천해 달라고 누가 묻는다면 주저없이 말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명화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 영화의 만들어진 시대적 의미와 함께 영화적 성취도 고려해 봐야 한다. 무조건 '예술 영화'를 틀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영화적 재미와 함께 영화의 내적 완성도가 높은 영화들, 예를 들어 스필버그의 '레이더스' 시리즈를 '세계의 명화'에서 방영한다면 나는 충분히 수긍할 것이다.


  지금의 EBS에서 방영하는 '세계의 명화' 라인업은 방영권을 사오는 배급사에서 그냥 떠넘긴 영화 목록들 같다. 한물간 1990년대와 2000년대 헐리우드 메이저 영화사들의 영화 목록들이다. 그렇다고 다른 유럽이나 제 3세계의 영화들을 열심히 소개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그런 면에서 국회방송(NATV)의 '명화 극장'은 더 나은 면모를 보인다. 마티유 카소비츠의 '크림슨 리버(2000)', 라세 할스트롬의 '개 같은 내 인생(1985)'이 '명화 극장'의 방영 목록에 들어 있다. 진정한 '세계의 명화'를 선정할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특정 감독 특집이나, 영화제 수상작들을 선별해서 방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코폴라의 '컨버세이션(Conversation, 1974)'와 데이비드 헤어의 '웨더비(Wetherby, 1985)'를 본 것도 EBS의 '세계의 명화'에서였다. 오로지 영화관, 공중파 방송, 비디오 테이프만이 영화를 보는 방식들이었던 시절에 EBS는 좋은 영화에 목마른 이들의 마르지 않는 샘물이었다. 물론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서 구태여 EBS가 예술 영화 소개의 첨단에 있을 필요가 없어지기도 했다.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EBS가 아니더라도 자신들이 다 알아서 영화를 찾아서 본다. 그럼에도 나는 영화라는 아름다운 세상에 처음으로 들어선 이들에게 EBS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의 명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지점이 있을 것이다. 그걸 찾아내는 것이 제작진의 몫이다.


  오늘 아침, 늘 듣던 라디오를 어떻게 하다가 떨어뜨렸다. 켜보니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럴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취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인터넷 검색에서 가전 제품이나 컴퓨터가 작동이 되지 않아요, 란 질문에 올라온 대답의 1위는 '우선 한 번 두드려 보세요'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방법을 시도한다. 나도 그렇게 했다. 몇 번을 가볍게,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두들겼다. 전원이 들어온다. 아마 내부 기판의 납땜이 떨어져 버린 것이라면 소용이 없는 방법이겠지만, 운좋게도 라디오는 다시 소생했다. 그러나 뭔가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면, 어디까지나 이 방법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EBS의 '세계의 명화'에는 그런 임시방편, 미봉책과 같은 대책이 아니라 이 프로그램에 대한 근본적인 숙고와 성찰이 필요하다. 너무나 오랫동안 그 프로그램을 아끼고 사랑한 시청자가 남기는 조언이다.



*사진 출처: cine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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