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실은 사카가미 군을 좋아해."

  "응, 나도 알아. 그런데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

  "알고 있어."

 

  이런 대화를 주고 받는 나루세와 사카가미는 고등학교 동급생이다. 대체 이 두 사람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위의 대화만 보면, 애니메이션 영화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The Anthem of the Heart, 2015)'는 뻔한 청춘 학원물 같다.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은 도입부부터 뭔가 남다르다. 그냥 좀 다른 정도가 아니라 충격적이다. 어린 소녀 '나루세 준'이 동네의 산 정상에 위치한 러브호텔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어떤 여자와 차를 타고 나오는 것을 목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일을 엄마에게 말하게 된 나루세. 결국 부모는 이혼하게 되고, 그 모든 일을 나루세의 '말' 때문이라고 아빠가 말하자 나루세는 충격을 받고 '함묵증(mutism)'에 걸려서 말을 하지 못한다. 나루세는 자신의 입을 막아버린 것은 달걀 요괴(외양은 요정처럼 귀여우나, 쏟아내는 말은 괴물같으므로 '요괴'라는 명칭이 적절하다)의 짓이라고 생각한다. 왜 '달걀'일까? 나루세가 아빠의 불륜을 엄마에게 알릴 때, 나루세의 엄마는 남편의 도시락 반찬으로 만들고 있었던 계란 말이를 나루세의 입에 욱여넣으며 말을 막는다.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는 그렇게 말을 봉인하고 성장한 나루세의 마음의 행로를 따라간다. 학교에서 주관하는 '지역 주민 교류회(일종의 마을 잔치쯤으로 보면 된다)'에서 선보일 극의 실행 위원으로 나루세와 동급생 세 명이 선정된다. 사카가미 다쿠미, 니토 나쓰키, 다사키 다이키가 그들이다. 앞서 언급한 대화에 나온 사카가미는 나루세의 아픔을 이해하고 나루세가 말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들어서 선보이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나루세는 사카가미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아픔을 가진 여주인공 나루세가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고(오직 문자 메시지로만) 의지하게 되는 사카가미를 '왕자님'으로 여기고 연모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사카가미도 그렇게 완전무결한 왕자님은 아니다. 어릴 적 부모님은 불화로 이혼했고, 조부모와 살면서 그 자신도 마음의 말을 담아두기만 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사카가미에게는 그래도 '음악'이라는 유일한 통로가 있었는데, 그것이 나루세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드는 바탕이 된다. 나루세가 마음으로 외치고 싶어하는 말을 세상을 향해 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하여 나루세의 학급 동기들 모두가 뮤지컬에 합세하여 나루세를 응원한다(뭔가 현실은 나루세 같은 아이가 이지메의 대상이 될 것 같지만). 아, 정말이지 놀라운 사랑과 연대(solidarity)의 힘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써놓고 보면 나름 감동을 주는 작품 같지만, 사실 '마음이 외치고 싶어'는 서사의 빈 구멍이 여기저기 드러나고 결말까지 달려가는 과정이 엉성하기까지 하다. 영화를 평론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런 작품이 제일 애매하다. 아주 좋은 작품이나 못 만든 영화는 그에 대해 나름대로 할 말이 많지만, 이런 어중간한 작품들은 난감함을 느끼게 한다. 별점 5개 가운데 3개를 겨우 빠듯하게 채울 것 같은 영화들은 사실 그다지 언급할 뭔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애니메이션의 진가가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이 작품을 어린 시절에 정신적 외상을 갖게 된 나루세의 진정한 치유기로 보면,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는 아주 좋은 심리 서사극이 된다. 특히 후반부에 나루세의 이야기를 대본으로 공연되는 뮤지컬은 '사이코드라마(psychodrama, 연극적 방법을 통해 심리적 문제를 치유하는 정신치료의 방법)'로 보기에 손색이 없다. 또한 나루세가 사카가미에게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연애 감정'이 아니라, 심리 상담에서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느낄 수 있는 '전이(, Transference)'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사카가미는 나루세가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어하는 모든 감정과 말의 통로인 동시에, 나루세가 유일하게 의지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나루세는 사카가미를 좋아한다고 느끼지만, 사카가미에게는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 결국 실망한 나루세는 공연 직전에 어디론가 도망가 버린다. 사카가미는 나루세를 찾아나서는데, 이 뮤지컬 공연은 무사히 끝날 수 있을 것인가...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는 애니메이션의 흥행에 힘입어 동명의 실사 영화로 2017년에 제작되기도 했다. 사실 이걸 구태여 또 영화로 찍어서 따로 보여줄 것이 있는가는 의문이지만, 그만큼 이 작품 속 인물들의 이야기에 매력이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단순히 애니메이션 팬들만을 위해서 만들었다고 보기만은 어렵다. 고통스러운 과거의 상처를 가진 주인공이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 거기에 주변 사람들의 응원과 격려, 풋풋한 사랑의 감정, 이 모든 것은 관객의 시선을 끈다. 물론 서사적 완성도 면에서는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작품에 별점을 준다면 세 개에 더해 슬쩍 반 개를 더 얹어주고 싶은 기분이 든다. 어설프고, 때로는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었던 이 애니메이션에는 귀여운 구석이 있다. 특히 나중에 나루세가 사카가미에게 폭언을 쏟아내는 장면은 심각한 감정의 폭발이 이루어짐에도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이고, 어린 친구들이 참 재밌네, 하는 느낌이랄까...


  작품 속에서 공연되는 뮤지컬의 제목은 '청춘의 정강이'인데, 이 제목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 등장인물들 그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 어쩌면 별다른 개연성이 없는 뮤지컬 내용에 아무렇게나 붙인 제목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게는 어린 시절의 상처로 심리적으로 절뚝거리며 살아온 나루세가 온전한 정강이 뼈를 되찾고 잃어버린 말도 찾아 결국은 제대로 걸을 수 있는 것에 대한 은유로 느껴진다. 마음 속에 금이 간 정강이 뼈 하나쯤 있는 이들이라면,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의 나루세를 응원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림 출처: animearcad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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