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선인장'은 특이하게도 겨울에 꽃을 피우는 식물이다. 나는 원래 식물을 키우는 데에는 별다른 소질이 없는 사람이다. 어쩌다가 키우게 된 이 선인장은 해마다 겨울, 특히 크리스마스 무렵에 화려한 꽃을 피워서 참 보기가 좋았다. 물론 내가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10년 동안 분갈이라는 것은 해준 적도 없고, 천 원짜리 작은 원예 영양제 하나 사서는 어쩌다 한 번 뿌려준 것이 전부였다. 영어로 식물을 키우는 재주가 있는 사람을 'green thumb'이라고 한다. 'You have a green thumb.'이란 말은, 당신은 원예에 재능이 있군요, 라는 뜻이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그런 말을 들을 일은 없을 것이다.


  추운 겨울에, 자신이 꽃 피워야 할 때를 기가 막히게도 지키는 크리스마스 선인장을 보고 있노라면 뭔가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남미가 원산지인 이 식물의 유전자에는 추워지는 시기에 꽃을 피우게끔 유전적 설계가 되어있는 것이고, 그에 따라 북반구에서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꽃을 피우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해마다 겨울에 이 선인장의 꽃을 보는 것은 단순한 기쁨을 넘어선 어떤 감동을 준다. 올해는 15개의 꽃봉오리가 올라왔는데, 화분을 옮기다가 실수로 하나가 떨어졌다. 나머지 14개가 성탄절을 앞두고 피어나기 시작해서, 이제는 다 졌다.


  꽃이 피어나기로 되어 있는 꽃나무라면 반드시 필 것이다. 다만 꽃나무마다 처한 환경에 따라 피는 시기가 조금씩 다를 뿐이다. 봄에 피는 목련을 보다 보면, 양지 바른 곳의 목련은 아주 일찍 꽃망울을 터뜨려서 눈길을 끈다. 그러나 응달진 곳의 목련은 다른 목련들이 다 진 다음에 아주 늦게 꽃을 피우기도 한다. 어떤 때에는 그 차이가 한달 가까이 나기도 하는 것을 본다. 그렇게 늦게 피우는 목련을 보면서 사람의 인생도 저러할까, 하는 생각을 해마다 하게 되기도 한다. 햇빛도 거의 들지 않는 아파트 구석진 화단에서도 기어코, 어떻게든 꽃을 피워내는 목련의 의지랄까, 나는 그런 것을 볼 때마다 어떤 경외심을 느끼기도 했다.


  성경의 전도서에서 계속 반복되는 구절 가운데 하나는 '무엇이든 때가 있다'라는 말이다. 불교에서도 비슷한 말로 '시절인연(緣)'이란 표현을 쓴다. 중국 명말의 승려가 편찬한 '선관책진(禪關策進)'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시절인연이 도래(來)하면 자연히 부딪혀 깨쳐서 소리가 나듯 척척 들어맞으며 곧장 깨어나 나가게 된다."


  모든 사물의 현상은 어떤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뜻이다. 사람이 아무리 마음과 뜻을 다해도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일은 인생에서 그다지 많지 않다. 가끔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어쩌면 그 '때'야말로 그 일이 이루어지기에 가장 알맞은 때인지도 모른다.


  올해 내가 계획했던 것들 가운데, 이룬 것은 '글을 쓰기 시작한 것' 밖에 없다. 원래는 소설을 쓰려고 했으나, 어떻게 하다 보니 쓰게 된 글들은 영화 평론이었다. 지금의 나에게는 영화에 대한 글을 쓰도록 '시절인연'이 도래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년에는 소설도 쓸 것이다. 내 마음 속의 이야기들이 말문을 조금씩 열어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과일 '후숙()'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청과 회사에 다녔던 경험담을 썼던 글쓴이가 후숙을 담당했던 과일은 바나나였다. 그 일을 배우고 한 1년쯤 되었을 때, 다니던 회사에서 미국의 유명한 과일 유통업체의 후숙 전문가를 초빙해서 강의를 듣게 되었다고 했다. 그 전문가는 수십년의 경력이 있는 이였는데, 강의 말미에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후숙의 시기는 과일이 결정하는 것이다."


  그 말은 글쓴이에게 나름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후숙에 대한 정해진 매뉴얼과 경험에 의해 후숙은 전적으로 사람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어느 정도의 온도에, 에틸렌 가스는 어느 정도로 주고 하는 정량적인 매뉴얼만 있으면 후숙은 누구든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다고 했다. 그런데 과일과 오랫동안 함께 해온 '후숙 장인'은 과일이 그 후숙의 시기를 결정하는 주체임을 알려줌으로써 글쓴이에게 겸손에 대한 가르침을 주었다. 


  후숙에 대한 그 말은 나에게도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인생의 어떤 일은 그것이 이루어질 만한 때에 이르러서야만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급한 마음을 가지기 보다는, 천천히 가더라도 자신이 해야할 것을 잊지 않고 매일 조금씩 해나가는 것. 그렇게 가다 보면 결국에는 그것이 '시절인연'과 만나 꽃을 피우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한 해를 보내며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새해부터는 월요일과 목요일, 그렇게 일주일에 두 번 글을 올리려고 합니다. 물론 그 사이에 글을 더 쓸 수도 있습니다만, 좀 더 여유를 가지고 글을 쓰려고 해요. 독자 여러분들에게 복된 한 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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