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2017)'는 잔교(橋), 바다, 하늘, 이 세 군데에서 서사가 나누어 진행된다. 시간대도 각각이다. 잔교에서의 1주일, 바다에서의 1일, 하늘에서의 1시간의 이야기가 나중에 하나의 시점과 공간에서 만난다. 이렇게 조각난 서사에 관객이 집중하기란 그렇게 쉽지가 않다. 이런 방식이 그럼 유기적으로 잘 조화되어 있는가, 이 질문에 나는 '아니다'라고 말하겠다. 이 영화의 서사는 마치 덜컹거리는 기차 바퀴처럼 어설프고 한심하게 굴러간다. 보는 내내 도대체 이런 영화를 왜 만들었을까 되뇌이게 된다.

 

  놀란은 분명 영화적 재능이 출중한 감독이다. 그가 '인셉션(Inception, 2010)'에서 보여준 재기 넘치는 구성과 연출은 이 감독의 이름을 다시 한 번 기억하게 만든다. 그런데 '덩케르크(이 발음도 정말 이상하다. 됭케르크로 하던가 차라리 영어식으로 '던커크'라고 하는 편이 낫다)'는 정말이지 실망스럽다. 그는 이 영화에서 무엇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일까? 전쟁의 참혹함도 역경을 이겨낸 인간 승리의 감동도, 그 무엇도 발견하기 어렵다. 모든 것이 다 어중간한 수준에서 이야기가 더 나아가질 못한다. 리얼리티의 측면에서는 이미 앞서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가 그 극한의 지점을 보여주었다. 스필버그는 거기에다 자신의 장기인 휴머니즘까지 버무려서 정말이지 자신의 역작을 만들어 냈다. 어쩌면 앞으로 나오는 전쟁 영화들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경쟁해야만 할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영화에서 보여지는 바다 위의 무수한 시신들처럼 부유하고 있다. 그 정점에 있는 배우는 킬리언 머피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이번에 전쟁 영화를 찍으려고 해. 배역 하나를 맡아서 해주면 하는데."

  "어떤 배역인데요?"

  "음, 그냥 일단 와서 해보자구."


  아마 내 생각에는 놀란이 그렇게 머피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정말 자기 경력 생각하는 배우라면 이런 영화에 이름도 없는 '떨고 있는 병사(Shivering Solider)'로 나올 이유가 없다. 배역이 무슨 큰 의미가 있지도 않다. 한마디로 겁에 질린 병사로 별로 중요한 역할도 아니다. 킬리언 머피는 놀란과의 인간적 '의리' 때문에 놀란의 요청을 수락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떨고 있는, 뭔가 좀 덜떨어진 병사를 연기하는 킬리언 머피를 보는 것은 참담하기 짝이 없다. 대체 저 배우가 영화에서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만 든다.

 

  이 영화에서 오직 찬사받을 만한 것은 한스 짐머가 맡은 '음악'이다. 영화 시작부터 관객의 신경을 미세하게 긁는 음악은 영화 내내 관객의 마음을 전쟁터로 옮겨놓는다. 뭔가 터질 것 같은 불안과 공포는 '영상'이 아니라 '음악'으로 전달된다. 한스 짐머가 '덩케르크'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는 영화가 좀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더라도, 자신이 만드는 음악만큼은 최고를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이 영화의 음악은 한스 짐머가 현 시점에서 최고의 영화 음악가라는 점을 입증한다.

 

  놀란의 '덩케르크'는 영화적 성취도 볼 수 없고, 그렇다고 덩케르크에서 있었던 역사적 철수 작전과 관련해 뭔가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 것도 아니다. 전쟁 다큐멘터리가 성취할 수 있는 것을 영화가 따라가기에는 버겁다. 스필버그는 그 지점에서 자신의 탁월함을 보여주었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사실성과 함께 이야기를 엮어내는 스토리텔러로서 감독의 역량이었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놀란의 이 전쟁 영화는 어설픈 시도였고 실패작이라고 할 수 있다. 관객은 조각난 서사의 보잘 것 없는 말로를 영화 내내 목도한다. 


  '덩케르크'를 보느니, 차라리 앙리 베르누이의 '쥐트코트의 주말(Weekend at Dunkirk, 1964)'을 한 번 더 보는 것이 낫다. 던커크 철수 작전을 다룬 이 영화는 철수하는 과정에서 병사들이 겪는 혼란과 두려움을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낸 뛰어난 작품이다. 나는 놀란의 영화적 재능에 대해서는 그다지 의심하지는 않지만, 그의 '덩케르크'는 매우 실망스럽다. 디지털이 아닌 아직도 필름으로 찍는 것을 고수하는 놀란이 왜 아깝게 필름과 제작비를 낭비해가며 이런 영화를 찍었는지 궁금할 뿐이다.


  어쩌면 놀란은 자신이 전쟁 영화도 잘 찍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는지 모른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카데미 상에 대한 갈망도 있을 수 있었겠다 싶은 생각도 든다. 전쟁이라는 거대 서사,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보여줄 것이 많다. 그런데 놀란은 '덩케르크'에서 그 어떤 영화적 성취도 보여주지 못한다. 전쟁의 잔혹함은 절제되어 있고, 인물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은 피상적이며, 궁극적으로는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한다.  


  영국군을 구하러 가는 작은 고깃배의 선실에서 어이없이 죽음에 이르는 조지(배리 키오건 분)처럼, '덩케르크'의 서사는 황급히 닫히면서 아쉬움을 남긴다. 영화적 상상력의 부재가 가져오는 허망함과 부박함이 어떤 것인가를 크리스토퍼 놀란의 전쟁 영화 '덩케르크'는 아주 잘 보여준다.



*사진 출처:(ourculturema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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