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기 동안 연기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무슨 특별한 뜻이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고, 그냥 맨날 영화나 파고 있으니 답답도 하고 그래서 이런 저런 잡다한 강의들을 들었더랬다. 예를 들면 선무도나 택견, 도예 수업 같은 것들. 아무튼 연기 수업이라고 해서 막 연기하는 거 배우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 몸의 움직임과 관련된 여러 동작들을 해보는 것이라, 어떻게 보면 스트레칭과 요가 수업 같다고 보면 된다.


  나는 워낙 몸치에 가까운 사람이라 연기과 사람들이 하는 동작을 따라가기는 커녕 그 근처에 가기도 힘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이삼일은 근육통에 시달렸다. 참, 수업을 듣기 위해 처음으로 쫄쫄이 타이즈도 샀다. 당시에는 인터넷 쇼핑의 초창기라 그런 옷은 인터넷으로 살 수도 없어서, 동대문 평화시장까지 갔었다. 무슨 스판덱스 쪼가리가 그렇게 비싼지, 내 기억에 3만원인가 했던 것 같다. 뭔가 무용이나 예능과 관련된 그런 특수 의상에는 특별한 가격이 책정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 쫄쫄이 타이즈를 입고 한 학기 동안 연기 수업을 들었다. 내가 그 수업을 들으면서 느낀 것은 그랬다. 아, 연기를 하는 사람들은 몸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소통하는구나... 흔히 '연기'라고 하면 얼굴 표정을 짓거나 대사를 하는 것을 떠올리지만, 그건 겉으로 드러난 부분일 뿐이다. 좋은 연기를 하려면 자신의 몸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며, 몸을 어떻게 쓰느냐가 가장 기초적인 것이다. 그 수업은 마치 연기의 세계를 아주 짧게, 잠깐 동안 들여다 본 느낌이었다.


  그런데 내게도 연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국민학교 때, 다니던 동네 교회의 크리스마스 연극 공연에서였다. 그 교회는 아주 단촐한 개척 교회였는데, 당시에 나를 가르치던 피아노 선생님이 집사로 있었다. 피아노 선생님이 억지로 다니게 했던 것은 아니고, 어떻게 하다 보니 다니게 되었는데 분위기가 나름 좋았다. 교회는 침례교파에 속했는데 목사님은 40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교회의 벽면에는 목사님이 수영장인지 아무튼 허리까지 몸을 담그고 목사 안수를 받는 커다란 사진이 있었다. 신자 수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따뜻한 느낌으로 나는 기억한다. 아파트 상가 2층에 자리한 그 작은 교회를 나는 1년 가까이 다니다가 이사가면서 그곳을 떠났다.


  1980년대 한국 교회는 '부흥의 시대'였다. 여기저기 교회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었다. 경제 개발과 호황에 맞물린 개신교의 확장세는 거침이 없었다. 내가 느끼기엔 사람들이 뭔가 대단한 신앙심으로 교회를 다녔다기 보다는, 서양의 새로운 신이 자신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해줄 것 같다는 희망과 기대를 가졌던 것 같다.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조차도 전도 열풍에 휩쓸렸다. 특히 크리스마스는 그 정점이었다. 아, 여름 성경 학교도 그러기는 했다. 애들은 그런 특별한 시기에 또래 친구들을 따라 교회를 순례하면서 설교 듣고 과자와 여러가지 선물을 받아왔다.


  아무튼, 크리스마스에 교회에서 공연하기로 한 연극은 요셉과 마리아 부부가 성탄 전날에 머물게 된 여관에서 일어난 일을 담아낸 것이었다. 주일학교 아이들이 공연했는데, 나는 여관 주인을 맡았다. 여관 주인은 아주 속물적이고 못된 사람으로 돈이 없는 요셉과 마리아 부부에게 방이 없다며 거짓말로 내쫓는 역이었다. 나는 그 역할이 싫었다. 요셉과 마리아 역도 있고, 천사 역도 있었다. 아, 여관 주인 마누라 역도 있었구나. 아무튼 주일학교 선생님은 나에게 여관 주인 역을 하게 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 연극에서 가장 대사가 많았다. 그렇게 대본을 받고나서는 진짜 열심히 외웠다. 의상도 있었다. 선생님이 가져온 흰색 보자기인지 이불 커버인지 그걸 머리에 쓰고 검은 색 띠를 둘렀다. 중동 지방의 남자 의상을 어설프게 흉내낸 의상이었다. 상연 당일에는 선생님이 분장도 해주었는데, 수염도 붙였다.


  마침내, 성탄절 저녁에 공연이 시작되었다. 무대라고 해봐야, 설교가 이루어지는 빨강색 카펫이 깔린 강단이었지만 오직 그곳만이 불이 켜졌다. 주일 학교 애들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공연을 했다. 나도 그 어떤 막힘 없이 대사를 해냈고, 특히 요셉과 마리아 부부를 구박하는 밉살스런 연기를 아주 잘 해냈다. 연극이 끝났을 때, 우리는 모두 손을 잡고 객석을 향해 인사를 했으며 아주 큰 박수를 받았다. 나는 그때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뭔가를 완벽하게 해냈다는 느낌은 매우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아마도 배우들이 하나의 작품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해냈을 때의 느낌도 그러하리라 생각해 본다.


  어쩌면 내가 연기 수업을 들었던 것도 그 성탄절 공연에 대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몸에 붙는 타이즈는 움직이기에는 편했지만, 내게는 꽤나 민망하게 느껴지는 의상이었다. 그렇게 어색함을 느끼면서도 수업은 열심히 들었다. 한 학기 수업을 들었다고 해서 몸치였던 내가 좀 더 유연해졌다거나 하는 것은 없었다. 나는 예술의 어떤 분야든 재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을 뿐이다. 그 타이즈는 택견복과 함께 창고의 박스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것이다. 문득, 성탄절을 앞두고 그 타이즈와 연기 수업과 어린 시절의 성탄절 연극 공연이 떠올라서 이렇게 글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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