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이었던 것 같다. TV를 틀었는데,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유태인들이 막 독일군에게 끌려가는 혼란과 공포가 가득한 장면이 이어지고 있었다. 영화는 이제 막 초반부를 좀 넘어서고 있었다. 그 영화에는 무언가 사람을 잡아끄는 마력이 있었다. 아무튼 그때부터 영화를 보기 시작해서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보았다. 영화가 끝났을 때에는 먹먹함마저 느꼈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다.


  "정말 저주받은 재능이네. 영화를 저렇게 기깔나게 뽑아내다니..."


  '기깔나다'는 사전에도 없는 비속어이다. 보통 '기가 막히게 대단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때깔'이 그 어원이라는 말도 있는데, 아무튼 그런 표현을 써서 말할 수 밖에 없는 영화였다. 그 영화는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2002)'였다. 나는 그 영화를 오랫동안 외면해 왔었다.


  '물속의 칼(1962)'을 처음 보았을 때가 생각난다. 흑백 화면 속에서 펼쳐지던 그 팽팽한 긴장감과 물 위의 '요트'라는 좁은 공간을 다루는 폴란스키의 탁월한 감각에 감탄했었다. 그 영화는 그의 첫 장편 영화였다. 한마디로 뛰어난 신인 감독의 세상을 향한 포효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어지는 영화 작업들을 통해 자신의 천재성을 입증해 나갔다. '악마의 씨(1968)', '차이나 타운(1974)'을 보았을 때의 전율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새겨져 있다. 그런가 하면 '진실(Death and the Maiden, 1994)'은 또 어떠한가? 우리나라에서는 '시고니 위버의 진실'로 알려진 그 영화에는 두 명의 주인공, 시고니 위버와 벤 킹슬리가 나온다. 그 두 사람의 진실을 향한 치열한 대결의 여정은 관객으로 하여금 극도의 몰입감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폴란스키는 그런 대단한, 엄청난 영화를 만들어 낸 사람이었다.


  내가 그 모든 영화들을 보았던 때는, 아직 폴란스키의 아동 성범죄 사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이었다. 나중에 그의 추악한 범죄 행위가 드러났을 때, 나는 한편으로는 이미 그의 영화들을 다 봐두었다는 사실에 안도했었다. 더이상 그의 영화들을 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피아니스트'를 작년에서야, 그것도 우연히 틀었던 TV에서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감탄하면서 약간의 거리낌도 느꼈다. 그의 영화를 보면서 감동을 받는 것은 괜찮은 것일까, 하고...


  클래식 음악계의 거장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자신의 음악 경력을 피아니스트로 시작했다. 그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였지만, 그의 아내는 더 유명했다. 천재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였다. 이십대 후반에 다발성 경화증으로 더이상 연주 경력을 이어갈 수 없었던 아내를 외면한 바렌보임은 러시아 피아니스트와 딴살림을 차렸다. 그리고 아들 둘을 두었다. 자클린이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후에 그가 세간의 비난을 받기는 했지만, 지휘자로서의 경력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나는 바렌보임의 연주를 듣지 않는다. 라디오에서 그의 피아노 연주나 지휘곡이 나오면 그냥 꺼버린다. 싫기도 하지만, 듣는 자체가 괴롭기 때문이다. 어쩌다 그의 음악인 줄 모르고 듣는 때가 있는데, 듣고 나서 그렇게 말하기는 한다. 연주는 괜찮네...


  바렌보임의 경우는 그것이 도덕적인 흠결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그의 경력에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그것이 직업 윤리를 어기거나 명백한 범죄 사실에 해당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는 동료 여성 성악가들에 대한 성추행으로,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은 미성년자 성추행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서 그것이 그들의 경력과 명성에 먹칠을 했다. 폴란스키는 그런 면에서 본다면 궁지에 몰릴 정도의 박한 대우를 영화계에서 받고 있지는 않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그의 천재적인 영화적 재능에 대해 영화계와 동료 영화인들이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프랑스 세자르 영화제에서 그에게 감독상을 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피아니스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고도 미국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직접 수상하지도 못했다. 아마 죽을 때까지 미국을 갈 수 없는 불편이야 좀 겪겠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영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개인의 사생활과 예술 작품은 별개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과연 타당한가? 오래전 시나리오 수업을 들을 때의 일이다. 그 강의를 맡은 백발이 성성한 칠순의 소설가 선생님(수강생들끼리는 '영감님'이란 별칭으로 불렀었다)이 어느 날, 분노에 차서 성토한 일이 있었다. 당시에 시인 서정주의 문학 작품에 대한 학계와 문단계의 비판과 함께 문학사적 '삭제'에 대한 논의들이 많이 있었다. 영감님은 그런 일련의 일들에 대해 모두들 '정신나간 짓'을 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근본도 모르는 것들 같으니..."


  영감님은 서정주의 후배였다. 문단의 그 누구도 서정주의 그늘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자들은 없었다. 서정주의 후배, 제자들이 한국 문학을 이제까지 이끌어 왔기 때문이다. 그가 말한 '근본()'은 생물학적 근본이 아니라, 문학적 근본의 의미였다. 서정주를 부인하는 것은 문인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이며, 한국 문학의 '호로자식'이 됨을 자처하는 일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서정주는 명백한 친일 행각 이외에도, 5공화국 시절의 전두환 찬양시까지 만들어 바쳤던 이로 평생을 권력에 영합하면서 살아온 인물이다. 그런 그의 생애와 별개로 '시'만큼은 문학적으로 인정받고 칭송받아야 마땅한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뛰어난 감성의 시들을 만드는 '시인 서정주'와 시대의 권력에 순응하고 영합하는 '인간 서정주'는 전혀 다른 개체인가? 예술가의 작품을 예술가의 생애와 별개로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논리는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떠올리게 만든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하나의 육체에 깃든 한 명의 사람일 뿐이고, 결국 그것의 분리는 정신 장애와 파멸을 의미할 뿐이다. 예전에는 다중 인격 장애로 알려졌지만, 그 질병의 정의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는 '해리성 정체성 장애(Dissociatvie Identity Disorder)'가 바로 그것이다. 


  무엇보다 '예술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건 어떠한가? 어느 연쇄 살인범이 있었다. 그는 감옥에서 복역 중에 자신의 살인 행각에 대한 책을 써냈다. 그 책은 나름의 문학성을 인정받았고, 문단에서 그를 문인으로 인정하는 이들까지 생겼다. 그가 쓴 소설은 '문학상'까지 수상했다. 그는 정식으로 문예가 협회에 입회를 신청했지만, 당연히 그 신청은 거부당했다. 그러자 협회의 문인들이 탈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문학성만 뛰어나다면 그의 소설은 그가 저지른 살인들과 달리 평가할 수 있는가? 그 소설을 여러분은 읽을 수 있겠는가?


  실제로 일본의 연쇄 살인범 '나가야마 노리오'의 이야기다. 가리타니 고진과 같은 유명한 문예 평론가,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작가 츠츠이 야스타가가 그의 편에 서서 협회를 탈퇴했다. 살인범이 쓴 책은 도저히 읽을 수 없다면, 사기범이나 절도범이 쓴 뛰어난 소설은 읽을 수 있다고 용인할 수 있겠는가? '예술성'이 그렇게 만능의 '투명 망토'내지는 '마법 탄환'으로 기능하는 것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논쟁의 주제이기도 하다.


  아마도 예술이 인간 세계의 그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그 가치를 잘 보여주는 소설은 김동인의 단편 '광화사()'와 '광염(炎) 소나타'일 것이다. 두 작품 모두 예술의 궁극성에 도달하기 위해 미쳐버린 예술가의 이야기이다.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결국은 사람을 죽이는 화가, 영감이 떠오르지 않자 불을 지르는 방화범이 된 작곡가가 주인공이다. 낭만주의 시대의 예술가의 초상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오래전, 학교에서 있었던 연극 세미나에 갔었다. 어느 미국 연극 연출가가 자신의 연극과 연출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세미나가 끝날 무렵에 질문을 받는 시간이 있었다. 한 학생이 질문을 했다.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저의 삶, 그리고 함께 하는 가족입니다."


  나는 좀 놀랐다. 그의 입에서 '연극'이라는 말이 나올 줄 알았던 것이다. 그것이 아닌, '삶과 가족'이라는 답을 듣게 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대답은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내 마음 속에 남았다. '예술'을 최우선으로 하는 삶은 때론 그것을 하는 이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파괴하기까지 한다는 것을 나이들수록 인정하게 된다. 예술은 삶에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며, 온전한 삶을 살아가는 이가 만드는 예술이 더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폴란스키의 나이가 올해 87세이다. 그가 죽기 전에 어떤 걸작 영화를 만들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 영화를 구태여 보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다 '피아니스트'처럼 우연히 TV에서 보게 될 수도 있겠지. 또 다시 감동을 받고, 불편한 마음을 알아챌 것이며, 그렇게 말할 것 같기도 하다. 저주받은 재능, 이라고. 그것이 영화를 좋아하는, 그리고 '예술'이라는 이름에 매혹된 많은 이들의 괴로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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