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소금통이 엎어진 것을 치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일이 얼마나 곤혹스럽고 귀찮은 일인지. 여기 저기 흩어진 소금들을 깨끗이 치웠다고 생각해도 며칠 동안 그 근방에서는 자잘한 소금 알갱이들이 밟히곤 한다. 소피 피엔스의 2006년 다큐 '지젝의 기묘한 영화 강의'를 보는 일은 마치 그 소금통 치우는 일 같다. 난감하고 번잡스럽다.


  우선 이 다큐를 보기 위해서는 지젝이 예시로 드는 영화들을 대부분 다 알고 있어야 한다. 무려 40개에 달하는 영화들은 할리우드 고전 영화부터 2000년대의 영화까지 아우른다. 그걸 다 보았다는 전제하에 지젝이 하는 영화 강의를 듣는다 하더라도 결코 쉽지가 않다. 영화들을 분석하기 위해 지젝이 쓰는 이론적 틀은 정신분석학이다. 이드(Id), 에고(Ego), 수퍼에고(Superego), 리비도(Libido), 이런 용어들은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대한 대강의 이해를 갖고 있는 이들에게는 익숙한 용어일 것이다. 지젝은 그 용어들을 자주 사용해서 설명하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낯선 느낌이 든다. 어, 이건 내가 알던 정신분석학적 개념이 아닌데.... 그렇다. 지젝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아닌 라캉의 프로이트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 라캉 철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대략적인 이해가 있어야 이 다큐를 온전히 이해할 수가 있다.


  내가 영화를 공부하던 때에는 이제 막 라캉의 인기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당시에는 국내에 소개된 라캉 저작이 한권도 없었을 때였다. 그러니까 라캉의 원전 번역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지젝의 책들은 정신없는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고, 여기저기서 라캉 이론 갖다 설명하고 뭐 그런 혼돈의 세계가 연출되고 있었다. 말하자면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라고나 할까. 나에게 라캉은 너무 난해했고, 그의 이론이 가지는 학문적 유용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그때에도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은 이미 한물갔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했다.


  아무튼 열렬한 라캉 주의자인 지젝의 영화 강의를 듣기 위해서는 그렇게 40개의 영화들, 라캉 철학에 대한 개요 정도의 이해가 필요하다. 자, 그럼 다큐를 보기로 하자. 나는 다큐의 초반부 대략 10분 동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지젝의 영어 발음이 너무 독특해서 관객이 그것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좀 시간이 걸린다. 사실 다큐 내내 귀에 거슬리기는 하는데, 중간 부분에는 그의 강의에 집중하느라 잘 모르다가, 마지막에 끝날 때쯤 그 억양이 심하게 튀는 느낌이 든다. 아무튼 그의 진짜 특이한 영어 발음과 억양을 다큐 내내 인내해야 한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충분히 있다고 말하겠다. 그의 기묘한 영화 강의는 재미있고, 요모조모 신기한 구석이 참 많다.


  막스 브라더스(Marx Brothers)의 '스파이 대소동(Duck Soup, 1933)'을 한번 보자. 지젝은 막스 브라더스 3형제, 그루초, 치코, 하포가 연기하는 캐릭터를 초자아, 자아, 원초아로 설명한다. 그런가 하면, 정신적 에너지의 발현으로서의 '목소리'라는 개념을 가지고 '엑소시스트(1973)', '위대한 독재자(1940)'를 설명할 때는 무릎을 치게 된다. 저렇게도 영화를 볼 수도 있구나, 하면서 어느새 지젝의 '팬'이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지젝이 다큐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영화는 데이비드 린치의 작품이다. 아마도 린치의 영화들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라면 좀 심드렁하게 볼 수도 있는데, 이해하기 어렵다는 린치의 영화도 지젝이 명쾌하게 설명하는 것을 보는 자체로도 재미있다. '블루 벨벳(1986)', '로스트 하이웨이(1997)',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 그 세 편 보는 것도 오랜전의 나에게는 버거웠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그때 봤으니 지젝 강의 들을 때 써먹는구나 싶기도 하다. 아, '광란의 사랑(1990)'도 나오는데, 그건 못봤다. 아마 앞으로도 볼 일이 없을 것 같다.


  지젝의 히치콕 사랑도 빼놓을 수가 없다. 주로 언급한 '현기증(1958)', '싸이코(1960)', '새(1963)', 이외에도 히치콕의 4개 작품이 더 나온다. 이쯤되면 '히치콕 빠돌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 다큐는 흥미있는 점이 하나 더 있는데, 지젝이 설명하는 영화들의 촬영 장소들을 대부분 다 가본다는 것이다. '새'의 배경이 되는 보데가 만을 수상 보트를 타고 설명하고, 코폴라의 '컨버세이션(1974)'은 진 해크만이 투숙했던 호텔에 가서 방과 욕실을 둘러 보며 설명한다. 그런 깨알같은 디테일과 설정들이 이 다큐가 가진 매력을 배가시킨다.


  그렇게 무려 2시간 반 동안 지젝은 아주 열정적인 영화 강의를 들려준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결국 이런 것이다. 영화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욕망'을 구현해낸 효과적인 도구였으므로, 영화를 본다는 것은 동시대 사람들의 내면과 그 넘쳐나는 욕망을 읽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 물론 지젝이 보는 방식대로 영화를 볼 필요는 없지만, 그가 제시하는 '기묘한' 영화 보기가 신선했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요즘 만들어지는 영화 가운데, 그렇게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과 욕망을 잘 드러낸 영화가 있었던가? 솔직히 딱히 떠오르는 영화가 없다. 동시대의 사람들이 직면한 사회적 현실과 그 뒤에 가려진 이야기들에 대해 치열하게 탐구하고 보여주는 예술 작품으로서의 영화가 있는가? '작가'로서의 감독은 가고, '흥행사'로서의 감독이 더 열렬한 박수를 받는 시대에 영화가 가진 예술적 위상은 이제 낡은 개념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젝의 말마따나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가 너무나도 필요하기 때문에 영화는 이제까지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질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사진 출처: thepervertsgui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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