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지인의 선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선배는 젊은 시절에 점을 본 적이 있는데, 마흔 넘어서 크게 잘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했다. 그 말은 좋은 예언이었지만, 정작 그 선배는 그 말을 믿고 뭔가를 하지 않고 지낸다고 했다. 인생에 큰 한 방이 터질 거라는 그 말에 의지하며 마흔을 훌쩍 넘기는 것을 옆에서 보는 것이 참 답답하다고 했다. 그 선배라는 이에게 결국 '한 방'이 터졌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것도 정말 오래된 이야기다.


  'Searching for Sugar Man(2012)'을 보고 나서 문득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젊은 시절에 냈던 음반 두 장이 자신의 나라 미국에서는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한 무명가수가 이 다큐로 인해 칠순이 다된 나이에 새로운 음악 인생을 열어가게 된다. 그야말로 '인생 한 방'이란 말의 참뜻을 보여준다. 다큐의 주인공 식스토 로드리게즈의 이야기다. 그의 노래는 인종차별이 횡행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저항의 노래로 받아들여졌다. 미국에서는 음반 프로듀서와 그 가족이 단지 6장만을 구매했다는 로드리게즈의 음반은 남아공에서 수백만 장이 팔렸다. 그렇게 그는 남아공 민주화 운동의 음악적 아이콘이 되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로드리게즈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른 채, 그저 매일매일의 생계를 이어가려고 온갖 일을 전전하며 살아간다. 대부분 몸을 쓰는 일, 우리가 막노동이라고 하는 일이었다. 그런 삶을 오랫동안 이어가던 그에게 누군가 찾아와서, 남아공에서 당신과 당신의 노래는 엄청난 인기가 있으니 와서 공연을 해달라고 한다. 아니, 이럴 수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결국 현실이 된다.


  사실 이 다큐에서처럼 로드리게즈에게 해외공연은 남아공이 처음은 아니었다. 1979년과 1981년에 호주에서 이미 성공적인 공연의 경험이 있었지만, 다큐에서 그 부분은 언급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이 다큐는 의도적으로 그 부분을 알리지 않음으로써, 일종의 '영웅 만들기'에 더 촛점을 맞춘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남아공에서 열린 공연 장면에서 의외로 로드리게즈가 차분하고 평온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과거의 그런 공연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는 막노동꾼으로 사는 동안 음악 경력이 단절되기는 했어도, 어느 날 갑자기 꿈같은 콘서트장에 불려나온 초짜배기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아무튼 이 다큐는 로드리게즈의 인생 역전을 가져오게 만든 소중한 선물과도 같았을 것이다. 노년에 접어든 나이이기는 했어도, 결국 그의 인생에 '한 방'이 크게 터졌고, 그는 여러곳에서 초청받는 유명 가수의 반열에 오른다. 뮤지션(musician)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위키피디아를 찾아 보니 2018년까지 공연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남아공에서 수백만 장이 팔렸다는 음반 수익금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로드리게즈와 계약한 서섹스 레코드사의 클래런스 아반트는 이에 대해 묻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어이, 이봐. 대체 로드리게즈의 행방이 궁금한 거야, 아니면 그 음반 수익금이 어디로 샜나가 궁금한 거야? 난 그 일 그만 둔 지가 꽤 되었다고. 이제와서 그런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


  그렇게 말하는 아반트의 면상을 보면, 정말 노련하고 영악한 음악 장사꾼이 어떤지 잘 알 수 있다. 그는 무수히 많은 인기 가수들을 길러내어서, 일명 'The Black Godfather'라고 불리우는 인물이다. 나중에 이 다큐의 인기로 로드리게즈의 음반이 재발매되는 과정에서 과거의 그 수익금을 놓고 법적 다툼이 있었다고는 하는데, 제대로 정산되지는 못한 듯하다. 어쨌든 로드리게즈는 지난 시절에는 막노동으로 연명을 했을지언정, 이 다큐가 소위 '대박'을 터뜨리고 나서는 음반과 공연 수입이 막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화려하게 살기 보다는 이전의 소박한 삶의 방식을 그대로 이어갔다. 그런 것을 보면 그가 나름의 삶의 철학을 가진 인물임을 짐작케 한다.

 

  이렇게 무명가수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사한 감독 말릭 벤젤룰의 그 뒤의 이야기는 참 슬프다. 이 다큐로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상을 비롯해 여러 영화제를 휩쓸었지만, 그는 2014년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서른 여섯, 참으로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이걸 보고 나니 새삼 느끼는 것이 있다. '인생 한 방'이란 것이 저렇게 있기는 있는데,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 많은 이들이 그것을 꿈꾸지만, 그건 복권 당첨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 중요한 것은 로드리게즈의 경우에는 그가 젊은 시절에 만들었던 음반 2장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가 만들었던 노래를 알아주는 먼 나라의 많은 이들이 노래의 생명을 이어가게 만들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이 세상의 누가 재능을 알아봐 줄 것이며 인정을 해주겠는가. 언젠가 쓸 평론, 언젠가 쓸 시나리오, 언젠가 쓸 소설... '언젠가'라는 말이 있는 한, 그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지금, 여기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창작하는 이들을 가장 힘들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언젠가'라는 무시무시한 미래 부사이다. 물론, 뭔가를 지금 쓰고 만든다고 해서 그것이 '대박'이 된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인생이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인생 한 방'의 행운을 가져다 주는 여신은 결코 공평하지 않으며, 때로 그렇게 찾아온 행운이 어느 순간에는 불행이 되기도 하는 예를 심심치 않게 보기도 한다. 언제 올지 모르는 '고도'를 무작정 기다리는 디디와 고고처럼, 우리 모두는 '대박'을 기다리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Searching for Sugar Man'의 관객들은 어쩌면 주인공 식스토 로드리게즈의 그 대박 행운의 결말 보다는, 그가 젊은 시절에 낸 음반 2장의 실패 이후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묵묵히 살아낸 힘든 노동의 시간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로드리게즈는 어쨌든 자신만의 삶을 성실히 살아냈다. 비록 그가 원하던 음악의 삶은 아니었지만, 그는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나에게는 그 점이 노년의 그에게 찾아온 행운 보다 더 인상적이었다. 그런 그였기에 로드리게즈는 엄청난 행운 앞에서도 담담하고 고요하게 자신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인생 한 방'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터지지 않을 수도 있다. 대개는 그러하다. 다만,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면, 그리고 매일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조금씩이라도 만들어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은 가치가 있다. 우리에게 매일 주어지는, 아주 평범한 하루가 선물이며 신비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이 다큐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진실인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telegraph.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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