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쓰기 - 김훈 산문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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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김훈은 이 책의 '꼰대는 말한다'에서 스스로를 '꼰대'로 칭한다. 그가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그의 결혼식 주례사를 들은 젊은 하객들이 했던 불평 때문이다. 이른바 '꼰대의 주례사'가 되어 버린 자신의 말들을 돌아보는 김훈의 자기반성은 정말 포복절도할 정도로 유머러스하다. '신혼부부는 집밥을 꼭 해먹어야 한다'든가, '양가 부모는 공평하게 잘 찾아뵈어야 한다'든지 하는 말들은 정말 하객들이 '꼰대' 소리 나오는 게 당연하겠구나 싶다.


  '꼰대'라는 단어를 찾아보니,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 이라고 되어있다. 언제부터인가 이 말은 무언가 시대착오적인 모든 것을 대변하는 말이 되었다. 이 단어를 들으면, 지금 시대의 세대간 감정과 생각의 골이 얼마나 깊은 것인가를 새삼 느끼곤 한다. 어쨌든 이 꼰대 노작가의 책을 읽어내려가는 것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일산에 거주하는 작가가 호수공원을 늘 다니며 느꼈던 소회 같은 것들,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들은 그나마 읽기가 수월하다. 그러나 자신이 거쳐온 시대를 회고할 때는 나 또한 거리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시대와 세대를 이해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책에는 그의 대표작 소설 '칼의 노래'의 주인공인 이순신 장군에 대해 덧붙이는 글들도 있고, 그의 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이런저런 일들이 보여주는 생활 사회사적인 글도 있다. 그러나 역시 세대 차이는 어쩔 수 없다. 나는 이 책에서 그가 말하고자 했던 정서와 생각들을 절반 정도, 많이 잡아 보아야 60% 정도나 이해한 것 같다. 여전히 멀게 느껴진다.


  문득 이 책의 출판사 마케팅 팀에서 구매 독자 연령을 어느 정도로 잡은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작가의 아래 세대인 내가 이해하는 정도가 이러한데, 젊은 세대들이 이 책을 구매했다 하더라도 그 정서를 공감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의 판형과 활자는 노안이 오기 시작하는 40대 이후의 세대에게 친절하지 않다. 짜증스럽게도 작다. 이 책을 그나마 잘 이해할 수 있는 세대를 위한 배려가 없다. 한참 동안 이 책의 활자를 보고 나서 피로가 몰려왔다. 아마 마케팅 팀에서 이런 걸 결정한 사람은 '꼰대'의 나이에 있는 사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으면서 나도 모르게 서글퍼졌다. 이 꼰대 노작가는 언제까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며, 나는 그 글을 언제까지 읽을 수 있을 것인가... 작은 활자를 보느라 피곤해진 눈을 부비며, 내가 젊은 시절에 그토록 많은 책을 읽어두었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나이가 들수록 책을 읽는 것이 버겁게 느껴진다. 늙는다는 것은 이토록 귀찮고 괴로운 일이다.


  이 책을 읽고 '꼰대'가 무시나 조롱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와 소통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칠순에 접어든 그의 세대를 이해하려면 그들의 살아온 시대를 돌아보고 알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결정적 요인이 있었을 것이다. '꼰대'들의 생각과 행동이 오늘날의 젊은 세대에게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진다면, 역으로 젊은 세대가 보여주는 모든 것들이 기성 세대에게는 '문화 충격'으로 다가온다.

 

  EBS '클래스 e' 강의를 보면서 내가 받은 약간의 '문화 충격'이 있었다. 젊은 강연자들 대부분이 시작과 끝에 인사를 안한다. 말로는 인사를 하는데,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유일하게 '기획의 세계'를 강연한 최장순 씨만 아주 정중하게 인사를 했는데, 그건 그가 만나는 대부분의 이들이 '고객'이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인사를 잘 하는 것은 기본에 속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는 이들은 TV 시청자들을 학생으로 생각하는지 고개를 숙여서 인사하지 않는다. 인사를 제대로 하는 강연자는 '꼰대'의 나이에 접어든 이들이었다. 그들은 기성 세대로 '인사'의 예의를 차릴 줄 알았다.


  노작가의 글은 그가 스스로를 지칭하듯 '꼰대'스럽지만은 않다. 거기에는 그가 살아온 삶과 시대, 사람과 정신이 들어있다. 때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그 조차도 끌어안을 수 있다면 우리 시대를 가르고 있는 세대간 갈등은 다채로운 사회의 바탕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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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3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별 2021-01-25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 잘 읽었습니다. 그렇죠. 저도 일산 호수 공원에서 작가가 들은 이야기가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작가는 늘 타인의 삶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죠. 재밋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통해 삶을 성찰하고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소재를 찾을 수가 있으니까요. EBS Class e 강의는 좋은 것이 많아요. 최근에는 법의학자 유성호 씨 강의가 좋더군요.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