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EBS 세계의 명화에서 틀어준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2011)'를 보았다. 보고나서 든 생각은 이랬다. '아니, 도대체, 왜 이런 영화를 만든 거지? 우디 앨런은 이런 영화도 쉽게 만들만큼 제작비도 잘 끌어다 썼던 모양이네', 싶었다. 한마디로 허세 가득한, 교양인들을 위한 문학, 음악, 미술 지식 테스트를 위한 리트머스 용지쯤 되는 영화로 보였다. 앨런은 마치 이렇게 묻는 것 같다.
"여러분,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들을 몇 명이나 아는지요?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그 사람들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다면, 이 영화를 볼 자격이 되는 거에요."
그래, 나는 '주나 반스'만 빼놓고 다 안다. 그 인물들을 다 아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지독한 지적 속물주의(snobbism)가 이 영화의 핵심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 대한 자료를 찾다보면, '미리 공부를 하고 보라'는 충고도 나온다. 기가 막힌다. 미리 공부를 하고 봐야할 만큼 이 영화는 대단한 영화인가? 절대 아니다. 이 영화는 우디 앨런이 자기 멋에 겨워 파리에서 노닥거리며 대충 만든 영화 같다. 그런데도 우디 앨런 영화 가운데 가장 높은 흥행 수입을 기록했다니, 이 영화를 만들었던 때가 우디 앨런에게는 '황금 시대'였는지 모르겠다. 비평도 꽤 좋았다. 이 영화에 대한 리뷰들을 찾아보면 혹평을 찾아보기 어렵다. 죄다 미사여구 일색, 거장 감독에 대한 예우 치고는 과하다.
영화 줄거리, 등장 인물이 궁금한 이들은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아주 잘 나오니 참고하면 된다. 사진과 인물 해설까지 곁들여 백과사전처럼 편집해 놓은 블로그도 있다. 파리 덕후들에게도 이 영화는 인기가 있다. 유럽 쪽에서 평가가 좋았던 것도 이해가 간다. 1920년대, 예술의 중심지였던 파리의 자긍심을 한껏 고취시키는 이 영화를 유럽인들이 싫어할 이유가 없다.
우디 앨런이 그토록 열광해 마지않는 시대가 1920년대라는 것은 영화를 보니 잘 알겠다. 헐리우드 시나리오 작가로 나오는 길 펜더(오언 윌슨 분)가 우디 앨런의 분신이라는 것도 명확하다. 자신의 작품을 거트루드 스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도 알아주겠다. 길 펜더가 진정한 자신의 소설을 쓰고 싶다는 고민은 결코 진지한 것이 아니며, 약혼녀 이네즈와 피카소의 애인으로 나오는 가상의 여인 아드리아나와의 관계도 피상적이다. 도대체 이 영화에는 '진정성'같은 것이 없다. 길 펜더가 '마법 자동차(?)'를 타고 2010년에서 1920년대로 매일밤 여행을 떠나는 그 황당한 설정도 관객들은 용인해 주어야 한다. "Oh, my god!" 나는 점잖은 사람이므로 욕은 쓰지 않는다.
오언 윌슨의 연기는 대단하다. 앨런의 연기 지도를 아주 충실히 잘 이해했으며, 앨런의 분신 역을 훌륭히 해냈다. 막장 연애사로 유명한 카를라 브루니는 몇 장면 등장하지도 않은 여행 가이드 역인데 확실히 화면을 잡아먹는다. 대단한 여자(배우라고 생각하지 않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에이드리언 브로디가 연기한 살바도르 달리가 참 웃겼다. 달리의 그 독특한 억양과 외모를 브로디만큼 재현해낼 수 있는 배우도 없을 것이다.
그냥 그 뿐이다. 이 영화에 내가 별점을 주어야 한다면, 5개 만점에 1개에서 2개 사이를 고민할 것이다. 그래, 1개 반을 주기로 하자. 나는 우디 앨런의 몇몇 영화들은 아주 좋아했다. '젤리그(1983)', '카이로의 붉은 장미(1985)', '뉴욕스토리(1989)', 그리고 '브로드웨이를 쏴라(1994)'같은 영화들. 그리고 최근작으로는 2017년작 '원더 휠(Wonder Wheel)'이 정말 좋았다. 그 영화는 참 괜찮은 영화였는데, 그해 미국 주요 언론에서 꼽은 올해의 영화 20편에는 들어가지도 못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4년, 미아 패로의 양딸 딜런 패로가 우디 앨런이 어린시절부터 자신을 성추행했다며 뉴욕타임즈에 폭탄같은 서한을 보냈다. 그때부터 앨런의 황금시대는 끝나고, 악몽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앨런의 평판은 급전직하했다. 앨런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미아 패로의 입양 아들 모지즈 패로는 앨런의 편에 서서, 정작 애들을 학대한 것은 미아 패로였다고 주장했다(2018년 미국 허프포스트 참조). 미아 패로의 친자 로넌은 어머니 미아 패로와 여동생 딜런을 강력하게 옹호했다.
우디 앨런은 부인이 된 순이 프레빈과의 엄청난 과거를 지루한 법정 공방 끝에 무마하고 자신의 경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딜런 패로가 터뜨린 폭탄의 파편들은 막지 못했다. 그 유탄들은 사방으로 튀었다. 미투 운동이 더해지면서 많은 여배우들이 앨런의 영화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급기야 2019년에는 자신과 계약한 아마존이 더이상의 제작을 거부하자 법정 소송을 내기에 이르렀다. 결국 돈으로 합의를 보기는 했으나, 거장 감독으로 추앙받던 앨런의 영화 경력은 완전히 끝장난 것이나 다름없다.
얼마전에 라디오를 듣는데, 아주 구슬픈 노래가 흘러나왔다.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의 렌스키의 아리아, '어디로 갔는가, 내 황금같은 청춘의 날들이여'였다. 우디 앨런이 듣는다면 정말 울어버릴 것 같은 노래다. 말년의 그가 내놓은 자서전은 출판사마다 출판을 거부했고, 겨우 어렵게 출판한 자서전은 동네북처럼 비난으로 얻어맞았다. 이제 그에게는 황금같은 날들은 가고 오욕과 모멸감이 가득한 노년의 날들만 남았을 뿐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어떤 면에서 보면, 앨런의 황금시대 영화 같다. 그는 맘껏 자신의 영화적 환상을 펼쳐보인다. 사람들은 그가 보여준 꿈같은 시대의 재현에 열광했고, 그에게는 찬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모든 황금같은 시간들에는 끝이 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사진 출처: sonyclassic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