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의 '다큐 잇it'은 우리 일상의 구석구석을 조금은 색다른 시선으로 보는 프로그램이다. 종영된 '다큐 시선'의 뒤를 잇는 프로그램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최근에 본 흥미있는 회차는 '청약 통장'과 '주식, 아직도 안하세요?'였다. 전자는 자기만의 방을 마련하기 위한 젊은 세대의 치열한 분투를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 담아냈고, 후자는 재테크 시대에 주식 열풍의 근원을 탐구하면서 주식을 하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내 눈길을 끈 것은 거기에 등장하는 이들의 일상에 등장하는 유튜브 화면이었다.
'청약 통장'편에서 부모님과 같이 살다가 독립한 20대 청년이 자신의 원룸을 소개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의 책상 모니터 화면에서는 유튜브의 '먹방'이 재생되고 있었다. 청년은 혼자 밥먹을 때는 그 먹방을 틀어놓는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내게는 뭔가 신박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아, 요즘 젊은 친구들은 혼자 밥먹을 때는 저렇게 먹방을 틀어놓는구나... 그런가 하면 '주식, 아직도 안하세요?'편에서는 기러기 아빠로 집에서 주식 투자를 하는 이가 나오는데, 그가 점심 먹을 때 모니터 화면에 틀어놓는 유튜브는 명상, 종교 관련 주제의 영상이었다. 목탁 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불교경전이 나름 인상적이었다. 그가 그걸 틀어놓는 이유는 주식 투자로 매순간 긴장하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라고 했다. 혼자 밥 먹는 이들에게 유튜브는 그렇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있었다.
동영상 플랫폼이 대세인 시대에 다양한 주제와 소재로 이제는 돈벌이 전장터가 된 유튜브에서 그래도 오랫동안 선전하고 있는 분야가 아마도 '먹방' 같다. 자주 가는 커뮤니티 게시판에, 뒷광고 논란으로 활동을 중단한 먹방 유튜버가 새로 올린 영상이 올라왔다. 댓글들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것은, 그 유튜버에 대한 악플이 하나도 없었고, 다시 활동을 재개해주면 좋겠다는 의견이 대세였다는 점이다. 대체 이 유튜버는 어떤 차별점이 있길래 이렇게 사람들이 열렬히 활동 재개를 원하는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 먹방을 보았는데, 정말 새로운 세계였다. 엄청난 양의 음식을 아주, 잘, 깨끗하게 먹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불편한 그 과도함(excessivenss)이 지배하는 화면에 대체 무슨 매력이 있는 것일까...
먹방, 음식만 전문적으로 먹는 것을 보여주는 방송. 아예 이제는 영어로 'Mukbang'이라는 공인된 명칭으로 자리잡았다. 내가 알고 있는 먹방이라고 해봐야, 이제는 종영된 'VJ 특공대', '6시 내고향' 같은 것이다. 그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먹방 영상들은 대개가 맛집, 지역 토속음식들이어서 그걸 본 시청자들은 그곳을 '탐방'을 하기 위한 참고 영상으로 여겼다. 그것 말고도 아주 고전적인 '한국인의 밥상'이 있기는 하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음식을 소재로 한 이런저런 프로그램들이 늘어나면서 공중파는 물론이고 케이블 채널까지 화면에는 음식과 먹는 장면이 넘쳐난다. 지금은 트롯 열풍이 방송을 평정해서 트롯 관련 프로그램이 대세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음식 관련 프로그램은 인기를 끌고 있다.
기성 세대에게 기존 TV 프로그램의 먹방은 맛집 탐방으로 이어지는 것에 비해, 젊은 세대에게 유튜브 먹방은 그 자체로 소비되는 일종의 치유 프로그램처럼 보인다. 혼자 밥 먹을 때 외롭지 않을 수 있고, 외모 강박에 시달리느라 살찌는 음식도 맘껏 못먹는데 그걸 대신해주는 먹방 유투버도 있고, 쪼들리는 형편에 사먹기 힘든 비싼 식재료를 맘껏 포식하는 것을 보며 대리 만족도 느끼고, 이런 요인들이 먹방의 인기를 견인하고 있다. 워낙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어서, 이걸 바라보는 시선들도 다양했다. 심리학에서는 불안장애와 섭식장애 쪽으로 파고 있고, 사회학에서는 1인 가구 증가로 인한 사회 현상으로 보고, 매체와 문화 연구 쪽에서는 먹방 시청자 행동 분석으로 밀고 있다. 먹방 연구는 마치 각종 학문들의 각축장 같다.
내게는 먹방의 그 과도함이 그것을 보는 이들이 가진 현실적 '고통'과 '외로움'의 크기처럼 보인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게 보여서 안보는 것을, 어떤 이들은 먹방을 보면서 편안함과 위로를 느낀다.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도 그런 효과를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건, 먹방의 기저에 흐르는 그 정서의 층위가 단지 '누군가 먹는 것을 즐겁게 본다'에서 괴로운 현실에서 '나를 숨쉴 수 있게 만드는 그 무언가'에까지 닿아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10대에서 먹방과 쿡방의 월(月)시청 시간이 평균 12시간, 매일 시청하는 비율도 15%에 달한다는 최근의 연구결과(이화여대 융합보건학과 김혜경 교수팀 연구 참고)는 꽤나 무겁게 다가온다. 대부분 심야시간대에 혼자 먹방을 시청한다는 청소년들에게 먹방은 학업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소비재인 것이다. 계속되는 경기침체 속에서 구직과 진로에 대한 압박감이 심한 젊은 세대에게도 먹방이 먹히는 이유도 그 지점에 있을 거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먹방은 어떤 면에서는 음식과 먹는 행위 그 자체에 집착하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뒤틀린 폐쇄성을 보여준다는 생각도 든다. 맛집 탐방을 하거나 직접 요리를 해서 누군가와 같이 식사하는 대신에, 방에서 그 모든 것을 대신해주는 먹방을 시청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들이 지닌 고통과 외로움의 총량도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먹방은 그것이 시작된 한국을 넘어 세계로 국경을 계속 확장해가고 있는데, 이 확장성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에 의문을 남긴다.
소통과 온기에 대한 요구. 그것이 범람하는 먹방의 함의일 수도 있다. 누군가와 같이 따뜻한 밥을 먹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렇게 나누는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 이러저런 삶의 괴로움을 위로받을 수 있다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모니터와 스마트폰 화면에 먹방이 띄워져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전염병이 창궐하는 이 시대에 인간관계는 더 단절될 수 밖에 없고, 악화되는 각종 경제 지표 속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힘든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떠났던 먹방 유튜버들은 다시 돌아오고, 새로운 먹방의 영역을 개척하는 이들도 나타날 것이다. 먹방의 전성시대는 이렇게 계속 이어지고 있다.